이슬람의 세계관 - 창조와 인생관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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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슬람의 세계관 - 창조와 인생관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이슬람의 창조론
1) 창조 목적과 피조세계
2)천사들의 창조
3)진(JINN)의 창조
4)까리나의 창조
5)동물들의 창조
6)인간의 창조

3. 이슬람의 인생관
1)이슬람의 인간관
2)이슬람의 내세관(천국과 지옥)
3)이슬람의 부활사상
4)이슬람의 정명(定名)관

4.결론

본문내용

들을 위한 공간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하늘의 7층위, 8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악담이나 거짓말은 전혀 없고 다만 축하의 말만 있다. 그리고 천국의 맨 위에는 알라의 보좌가 있다. 정수일, 이슬람 문명, p127
이러한 일련의 이슬람의 천국관은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하는 기독교의 천국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 많다. 기독교의 천국은 인간의 쾌락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곳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곳이다.
꾸란에는 천국뿐만 아니라 지옥에 대한 구절도 나온다. 최후 심판 날에 모든 죽은 사람은 부활하여 알라의 심문을 받는데, 심문 후 지옥위의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칼날처럼 예리한 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생전에 선행을 한자는 무사히 통과하나 악행을 범한 자는 통과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지옥은 7층의 7개문을 거쳐 들어가게 되는데 암흑 속에서 독풍이 불고 끓는 불이 흐른다. 불 옷에 불 이불을 쓰고 자니 살이 타들어가고 마시는 것은 끓는 물과 고름이고 먹는 음식은 가시 돋친 독열매이다. surah 14:17
끓는 물을 머리에 붓고 쇠로 만든 채찍으로 얻어맞는 형벌이 가해진다. 정수일, 이슬람 문명, p127
이와 같이 이슬람에서 지옥은 항상 불과 연관이 있다. 마치 천국이 시원한 물과 연관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무함마드가 있던 사막 기후 때문일 것이다.
3)이슬람의 부활사상
이슬람의 부활사상은 기독교와는 사뭇 다르다. 기독교의 부활은 원래 인간이 가졌던 형상과는 다른 실체로 부활하는 것인데(고린도 전서 15:35~44) 이슬람은 죽은 사람의 원래 모습 그대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육체의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광호, 이슬람의 창조론과 종말론, 숭실대 105주년 기념 논문
무슬림들에게 부활하는 시기는 심판의 날이다. 그 전까지는 죽은 사람은 무덤에서 심판의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슬림들에게는 무덤은 평화와 안식의 장소이다. 하지만 비무슬림들에게는 무덤이 고통스런 징벌의 장소가 된다. 마크 A 가브리엘,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 p 44
4)이슬람의 정명(定名)관
정명(숙명)이란 인간의 행위와 존재를 포함해 우주의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모든 사건의 진행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종교에서 정명관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유독 더 강하다. 꾸란에 있는 정명관을 종합해 보면 인간행위의 최종 목표는 경전의 가르침 속에서 알라가 정해준 운명대로 삶을 영위하고, 우주의 모든 현상이 알라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며, 어떤 것이라도 알라의 지배를 받도록 예정되어 있으며 알라에 대한 복종의 삶을 감수해야 평정을 얻고 사회의 평화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슬람의 정명관은 알라의 권능과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정명관에 대한 신학적 논의에 따라 여러 신학적 부류가 생기게 됐다.
첫째는 까다리야 파로 알라는 인간의 죄악과 무관하므로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며 죄악을 알라의 정명에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유의지의 소유자로서 선악을 선택할 능력이 있으므로 선행과 악행은 인간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두 번째는 이성주의파로서 인간은 이성에 의해 시비와 선악을 이해하고 가려낼 수 있으므로 자기의 뜻, 즉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위의 두 파에 비해 정명을 특별히 강조하는 정통(수니)파가 있다. 이 파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선, 악, 순종, 배신 등)는 알라의 의지와 판단, 정명에 의해 결정되고, 인각ㄴ이 자유로이 행동할 수는 있지만 자유는 알라가 결정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알라의 창조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명은 절대적이고 자유의지는 상대적이라는 관점이다.
이슬람의 정명관은 대체로 인과율을 따른다. 곧, 행한 것 만큼 그 열매를 거둔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대한 법칙인 인과율이 곧 이슬람의 정명관의 이론적 근거이다. 정수일, 이슬람문명, p 131
여기에서 ‘인(원인)’은 인간의 자유의지이고 ‘과(결과)’는 정명이다. 단 여기에서 전제되는 것은 행동의 규범이나 선악의 내용은 알라가 규정한다.
4.결론
지금까지 이슬람의 창조론에 입각하여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간략하게 보았다.
폴 히버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이야기이며 선교사로서 오신 예수의 이야기이며,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야기이다.” 폴 히버트, 선교와 문화인류학, p 23
성경이 하나님 계시의 완전한 기록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하얀 백지상태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는 유대인들이 처한 특정한 문화와 상황 속에서 주어졌다. 따라서 성경을 이해하고 오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을 그 시대와 배경에 관련지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천년 전에 유대인의 한 명으로, 유대인의 문화에 속한 한 사람으로 오셨다.
폴 히버트의 말대로 지금 이 시대도 모든 시대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상황 안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의 임무를 이해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우리는 그 작은 부분을 맡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의 땅도 예수님의 땅이 되고 무슬림들도 왕 되신 예수님의 백성이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그 날의 소망 안에서 이천년 전에 유대인의 문화 속에서 임한 하나님의 복음을 우리는 이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슬람 문화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한 이슬람의 세계관에 대한 연구는 복음의 상황화에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능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 세운 계획이나 전략은 헛일이나 자칫 파괴적인 결과를 맺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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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7.30
  • 저작시기2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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