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지역 답사자료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진주지역 답사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진주개관
Ⅱ. 진주성과 임진왜란
Ⅲ. 단성 석조여래좌상과 용암사터
Ⅳ. 청곡사(靑谷寺)
Ⅴ. 효자리 삼층석탑과 팔각고분군

본문내용

불단에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인 지장보살삼존상이 자리하고 좌우로 시왕, 귀왕, 판관, 인왕, 범천 · 제석천상 등 총 23구가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이 상들은 1657년에 조성되었다. 지장보살삼존상을 포함해 시왕상 및 권속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좌상의 지장보살은 입상이나 의자상인 다른 권속보다 크게 조성해 위용 있게 표현하지만, 청곡사 지장보살좌상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등과 비슷한 크기로 주존을 제작하였다.
모든 존상의 상호는 둥근 얼굴형에 두 눈은 눈꼬리가 길게 빠졌으며, 코는 높고 콧등이 반듯하고 입술은 작아 아이 같은 인상을 준다. 각 존상의 비례를 보면,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두부를 크게 제작하였다. 특히 무독귀왕, 시왕 및 권속 등은 쓰고 있는 관모가 높아 3등신의 신체비례를 하고 있다. 신체는 어깨가 둥글고 좁지만 상체와 하체를 양감 있게 처리하였다.
지장보살좌상은 무릎이 높고 폭이 넓어 앉은 자세가 안정감이 있으며, 의자상의 시왕과 범천·제석천상 등도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무릎을 내려뜨린 자세가 다양하고 자연스럽다. 지장보살좌상은 이중으로 대의를 걸쳤으며, 드러낸 가슴 아래에는 승각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옷주름은 상체의 대의자락은 간략하게 직선으로 양감 있게 처리한 반면 하체의 옷주름은 곡선을 살려 장식적이면서 볼륨감을 살려 두텁게 표현하였다. 장식적인 곡선의 옷주름 표현은 도명존자의 가사나 시왕의 무릎의 옷주름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상호와 신체비례와 달리 두 손은 여성스럽게 가늘고 길게 조각하였다.
이 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인영(印迎), 탄준(誕), 지변(智邊), 학염(學廉), 서명(瑞明),법율(法律), 종탄(宗誕), 선우(善祐) 등으로 청곡사 업경전의 상들을 제외하고는 현재 이들이 조성한 다른 불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청곡사 불상은 비록 17세기에 활동한 여러 조각승의 불상과 계통이 연결되는 요소가 없는 독특한 조각 형식을 하고 있으며, 상의 전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고 조각 수법 또한 우수하다.
5. 목조제석천 · 대범천의상(木造帝釋天 大梵天倚像) : 보물 제 1232호
제석천과 대범천은 원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神像)이었으나, 대승불교 이후 불법을 지키는 신상이라 여겨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전하며,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로는 청곡사의 것이 유일하다. 사천왕상이 위엄을 나타내는 무서운 인상임에 비해 제석·대범천상은 보살상같은 자비로운 인상이다. 탱화의 경우 보살은 양손에 물건을 들고 그 기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과 얼굴이 금색인데 비해, 제석천과 대범천은 두 손을 합장한 경우가 많고 얼굴에 호분으로 흰색을 칠하고 있다.
6. 삼층석탑
별도로 만들어진 높은 축대 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높지는 않으나 상륜부까지 완전히 갖춘 고려 전기의 탑이다.
Ⅴ. 효자리 삼층석탑과 팔각고분군
1. 효자리 삼층석탑
진주의 서쪽 끝에서 산청 · 하동 · 사천과 경계하고 있는 수곡면 효자리에 보물 제379호로 지정된 효자리 삼층석탑과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팔각형 고분이 있다. 수곡지서 뒤 30여 가구가 모여 있는 효자리 마을은 일대가 모두 절터였다고 하는데, 마을사람들의 구술말고는 절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마을 안에 삼층석탑이 하나 있어 절이 있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높이 4.6m인 효자리 삼층석탑은 지표면보다 낮은 곳에 움푹 들어가 있는데다가 이중 기단 중 하층기단부가 땅속에 묻혀 있는 상태여서 실제 높이만큼 커 보이지는 않는다. 상층기단의 면석은 4매 판석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폭넓게 조각되었다.
효자리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4.6m나 되는 높은 탑이지만 하층기단부가 땅속에 묻혀 있어 실제보다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따로 만들었는데, 1층 몸돌이 지나치게 높은 데 비해 2·3층 몸돌은 갑자기 축소되어 균형을 잃고 있다. 그 약점을 감싸주는 것이 넓이에 비해 꽤나 두툼해보이는 지붕돌이다. 처마선의 경사가 급해 지붕돌이 더 두툼해보인다. 지붕돌의 받침은 1층과 2층이 4단씩이고 3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탑의 상륜부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전체적으로 각 부재가 균형을 잃어 고졸하고 둔하게 보이나 1층 몸돌의 서쪽 면에 조각된 문비 조각이 눈에 띈다. 조각은 얕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문짝 위쪽에 창살이 가늘게 표시돼 있으며, 그 아래에 고리가 동그랗게 조각되어 있다. 석탑을 둘러놓은 철책 한 모퉁이에 석등의 받침으로 쓰였을 법한 연꽃대좌와 석등 기둥이 있다.2. 팔각고분군
대개 원형이거나 장방형에서 중기 이후에는 거의 원형분으로 정형화되는 조선시대의 무덤양식과는 전혀 다른 무덤이 효자리 삼층석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른바 효자리 팔각고분군으로 불리는, 하현(河現)과 아버지 하지명(河之溟) 그리고 어머니 재령 이씨의 묘이다. 하현은 조선 태종 때 사온서직장이라는 관직을 지낸 사람이다.
효자리 팔각고분 지대석과 면석, 갑석을 갖춘 팔각형 구조의 둘레 위에 흙을 덮어 마무리한 무덤으로 조선 초기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효자리 팔각고분군은 모두 지대석과 면석, 갑석을 갖춘 팔각형 구조에 흙을 덮어 마무리한 무덤인데, 특히 하현의 묘는 갑석의 마무리를 마치 석탑의 지붕돌처럼 모서리를 살짝 치켜올렸다. 이와 같은 팔각고분은 유례가 드물 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연대가 조선 초기로 확실해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팔각고분 모서리마다 마치 석탑의 지붕돌처럼 귀를 살짝 치켜올렸다.
미천면 오방리 오방산에도 팔각형 고분군이 있는데, 조선 태종 때 영의정 부사를 지낸 하륜(河崙)과 그의 조부모와 부모의 묘가 모여 있는 진양 하씨 문중 묘역이다. 하륜의 묘가 팔각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하륜을 비롯한 3대의 묘가 한곳에 자리하고 있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조성된 무덤 외형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가 있다.
  • 가격2,500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24.02.23
  • 저작시기202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4193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