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지역답사자료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평창지역답사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평창 개관
Ⅱ.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과 생가터
Ⅲ. 이이 율곡관련 유적
Ⅳ. 양사언과 팔석정
Ⅴ. 대관령 삼양목장

본문내용

모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가구는 1고주 5량(一高柱五樑)으로 초익공(初翼工)에 연등천정 구조로 짜여졌다.
Ⅳ. 양사언과 팔석정
1. 양사언
1517년(중종 12)∼1584년(선조 1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서예가였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 · 완구(完邱) · 창해(滄海) · 해객(海客)이다. 주부인 희수(希洙)의 아들로, 형 사준(士俊), 아우 사기(士奇)와 함께 글에 뛰어나 중국의 삼소(三蘇 : 소식 · 소순 · 소철)에 견주어졌다. 양사언의 아들 만고(萬古)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이 전한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三登 : 평안남도 강동 지역) · 함흥(咸興) · 평창(平昌) · 강릉(江陵) · 회양(淮陽) · 안변(安邊) · 철원(鐵原) 등 8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의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감상했다. 만폭동(萬瀑洞)의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양사언의 글씨>
안변의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릉(智陵 : 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해서(海西 : 황해도의 다른 이름)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40년간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정이 없었고 유족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한편, 남사고(南師古)에게서 역술(易術)을 배워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시는 작위적이지 않고 표현이 자연스러워, 더 이상 고칠 데가 없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가사(歌辭)로는 「미인별곡(美人別曲)」과 을묘왜란(乙卯倭亂) 때 군(軍)을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지은 「남정가(南征歌)」가 전한다. 이밖에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미인별곡」은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 · 김구(金絿) · 한호(韓濠)와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진다. 특히 큰 글자를 잘 썼다고 전한다.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다.
2. 팔석정(八石亭)
<팔석정>
팔석정은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바위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흥정계곡에서 가장 멋지다는 곳 중 하나이다. 여러 바위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제법 넓은 계곡 쪽으로 내려가면 인절미를 합쳐놓은 듯한 네모난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한그루 소나무가 멋드러진다. 두 번째로 흥정계곡에서 멋진 곳이 허브나라에서 가까운 구유소이다. 흥정계곡은 대체로 큰 굴곡이 없는 계곡이지만 구유소와 팔석정에서만 유일하게 계류가 바위를 타고 흐른다. 조선시대 명필가인 양사언이 팔석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여덟 개의 바위에 써놓은 것에서 비롯되어 이름 또한 팔석정이 되었다. 하니, 멋진 경치임에는 분명할 테지만 굳이 여덟 개의 바위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흰 눈 덮어쓴 바위는 모두 똑같아 보일 뿐이다.
Ⅴ. 대관령 삼양목장
대관령목장은 1972년 한 고집스런 기업인의 꿈으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호미와 삽 같은 인력 장비로 개간을 시작했다가 소황병산의 남동쪽 자락 전체를 아우르는 2천 헥타르의 목장으로 일궈냈다. 90년대부터 부분적으로 일반에 개방했지만 나중에는 승용차까지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면서 휴일이나 여름 성수기에는 목장 구내가 온통 자동차로 넘쳐나기에 이르렀다.
자동차가 너무 많아지자 목장측은 입구에 대형 주차장을 만들어 자동차 출입을 금지시키고 목장 견학은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다니도록 했다. 하지만 셔틀버스는 목장 관리사무소와 동해전망대 간 4킬로미터 구간에만 운행하고, 나머지 지역을 걸어 다니기에는 목장이 너무나 방대하다. 그러다 보니 산악자전거가 최고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이제 국내 최고, 최대의 초원이 산악자전거의 단독무대로 펼쳐졌다.
목장 내부에는 127킬로미터에 달하는 관리도로가 대부분 비포장 상태로 거미줄처럼 나 있다. 물론 이 도로 중에는 출입금지 구간이 적지 않고 너무 길어서 모두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핵심 코스만 돌아보는 것이 좋다. 추천 코스는 관리사무소 광장에서 출발해 동해전망대와 삼정호를 거쳐 오는, 목장 내 명소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일주코스에 목장의 최고지점인 소황병산 정상 왕복을 더한 총 25킬로미터 구간이다. 이 코스라면 목장의 풍경을 충분히 감상하며 명소들을 탐방할 수 있다. 만약 코스를 더 늘리고 싶다면 대관령 고갯마루(옛 영동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북상해 선자령(1157m)~소황병산~황병산 군부대 입구~차항리~횡계~대관령에 이르는 약 50킬로미터의 외곽순환코스도 가능하다. 다만 이구간은 싱글트랙과 험로가 적지 않아서 상당한 경험과 실력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이상적인 집을 꿈꾼다면 아마도 푸른 초원이나 비취빛 해변에 선 동화 같은 집을 생각할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하는 유행가도 있듯이 초원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그만큼이 땅에 초원이 드물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렇게 귀한 초원이 가장 거창하게 펼쳐진 곳이 바로 평창 대관령목장이다(정식명은 대관령삼양목장). 대관령(832m)의 북서쪽, 소황병산(1328m) 남쪽의 완만한 구릉지에 펼쳐진 목장은 남북 8킬로미터, 동서 3킬로미터의 엄청난 크기로, 처음 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아름답고 장쾌한 초원이 있다는 데 깜짝 놀라게 된다.
2006년에는 국내 최대의 풍력발전소까지 들어서서 목장 일대에는 높이 1백 미터(기둥높이 60m, 날개 40m)의 거대하고 새하얀 바람개비가 낯선 이국풍을 더한다. 이런 풍경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해 초원 곳곳에서 촬영지 안내문을 볼 수 있으니, 대관령목장은 ‘시네마 천국’이기도 하다.
  • 가격2,000
  • 페이지수24페이지
  • 등록일2024.02.22
  • 저작시기202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4186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