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와 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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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하지 않는 점은 노름꾼 심리, 요행심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흥부는 재물을 갖고 형제 간에 다툴 수 없어서 순순히 물러서는 성인이었으며, 생활을 위해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것이다. 또 애초에 박 속을 지져 먹고 바가지는 팔아서 쌀을 얻으려고 했을 뿐 놀부 같은 사행심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흥부의 승리는 양심과 성실이 승리한 것이며 놀부의 패배는 반사회, 반도덕적 이기주의의 패배로, 이는 사회 모순에 대한 서민층의 준열한 재판이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당시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흥부 비판의 최선두에 섰던 김광순은 <흥부전의 주인공에 대한 인성 분석>(1973)에서, 같은 이야기로 임형택과 정반대의 논지를 펴며 조목조목 흥부를 꾸짖고 놀부를 칭찬했다. 놀부의 냉대는 흥부에게 자립 정신을 불러일으켰으며 놀부가 흥부로부터 화초장 하나를 빼앗아갈 때도 흥부의 하인을 뿌리치고 자신이 지고 가는데 이를 자립심의 발로로 봤다. 또 제비를 해친 것은 잘못이나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그 욕망만은 간과할 수 없으며 거듭되는 불행에도 13개의 박을 모두 타는 끈질긴 의지는 당시 무기력했던 조선인에게 모범적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흥부는 소극적이며 나태하고 무기력한 인물의 표상으로 평가했다. 노력하지 않은 데서 온 가난을 운명에 돌리려 했으며, 주관도 없이 주면 먹고 시키는 일이나 하는 인간으로 분석했다. 또 흥부는 끼니도 못 잇는 처지에 남은 노잣돈으로 모두 떡을 살 만큼 무계획했으며 수숫대나 뺑대 반짐을 가지고 한나절 만에 집을 지은 점을 들어 나태한 인물일 뿐 아니라 부상당한 제비의 다리를 치료해줄 만큼 한가한 시간을 보냈기에 가난을 면치 못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봉건 사회 흥부, 산업 사회놀부
이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흥부전의 전통적 인물 평가를 뒤집는 것이 80년대까지의 일반적 분위기였다. 본문 마지막에서 패퇴한 놀부는 에필로그에서 컴백에 완전 성공했고 흥부는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맹목적인 부의 추구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불거지자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보게 보면서 이런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흥부에 대한 재평가였다. 비록 놀부 재평가 때만큼 폭발력을 지녔거나 급진적이진 않지만 이런 움직임은 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흥부와 놀부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이처럼 시대관을 그대로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의 과열된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 이기는 방법만을 생각했고 그 결과 ‘나’ 하나만이 존재할 뿐 타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놀부에겐 친구도 없다. 결국 고립된 상태에서 스스로 소외되어 버렸다. 놀부가 산업화 사회의 한 전형으로 긍정될 수 있던 것은 부정적이던 전대의 가치관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봉건 사회에서의 흥부, 산업화 사회에서의 놀부, 그리고 산업화 이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지금 우린 다시 흥부를 그리워하고 있다.

키워드

흥부,   놀부,   천부,   대두,   물질가치관
  • 가격1,3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1.12.16
  • 저작시기200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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