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미술관 관람후 감상문내는것임..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제 목 : 미술관 관람후 감상문내는것임
□ 총 페이지수 : 15
□ 목 차:
1. 여행으로서의 미술관 관람

2. 유럽의 주요 미술관들

1) 우피치 미술관
2) 루브르 미술관
3) 런던 내셔널 갤러리
4) 오르세 미술관



.

1. 여행으로서의 미술관 관람

본문내용

정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흑백 대조가 무척 강한 그림이다. 올랭피아의 살색과 침대 시트는 무척이나 밝고 환한데, 배경은 어두컴컴하다. 흑인 여성과 검정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도 그 흑백 대조를 돕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강한 대비를 조장한 것은 당연히 흰 색의 부각을 의도한 것이다. 앞서 콩쿠르 형제의 밝고 자신감에 찬 시대관이 반영돼 있다. 그 희열에 창녀가 함께 한 것은 그만큼 시대와 현실에 대해 정직하고자 하는 마네의 근대적 작가정신 때문이었다. 가면을 벗자, 밝고 환한 부르주아지 세계의 뒤안은 그 어느 곳보다 그늘지고 어둡다!-그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물론 그것을 개선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있는대로 보자는 것이었다). '현실 직시' 문제로 빚어진 <올랭피아> 스캔들은 기실 그 뒤 인상파 작가들이 계속 겪게 될 숱한 사회적 몰이해와 냉대의 전조였다.
그런데 인상파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냉철한 근대적 현실인식을 긴밀히 잇고 있는 한편으로, 산업화와 대도시가 야기한 '찰나적 감성'에 충실한 미술이기도 했다. 인류가 고도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이제 막 완성했음을 시각적으로 증언하는 미술이었던 것이다. '흰 색의 광희'는 그 성취감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인상파의 '찰나주의'와 관련해서는 한가지 더 주의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1871년 파리 콤뮨의 처참한 유혈 종말과 그 영향이다. 1789년 대혁명 이래 계속돼왔던 프랑스의 '혁명 한세기'가 이로써 막을 고하게 되는데, 그것은 산업자본주의의 태동 이후 자본과 노동간의 갈등의 비극적 대단원이었다.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 위의 식사> 등이 1860년대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 '71년 이후 세대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상파는, 그 완전한 패배감과 체념 또한 부지불식간 반영했다. '창녀의 등장'은 바로 그 패배의식과 체념의 한숨이 체증의 불편한 트림을 동반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사회 풍조의 변화도 인상파의 태동.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철도의 건설은 여행의 증대를 낳았고, 특권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교외나 시골에서 수영과 선상파티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빵 위에 크림이 떨어지는' 이 시기 역사의 숱한 곡절일랑 이제 좀 잊고 싶다는 수동적이고 방관자적인 의식이 미학적으로도 형성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상파의 그림은 그 행락객들의 발자취처럼 파리에서 세느강을 따라 교외로, 노르망디 해안으로 내달았다. 산다는 게 뭔가? 이 눈부신 햇볕 속에, 저 일렁이는 물결 속에 우리는 왜 온갖 세속의 잡사만을 늘어놓아야 하는가? 자연은 저렇게 찬란하기만 한데....
모네의 <아르장테이유에서의 보트 타기>, <점심>, 모리조의 <나비 채집>, 마네의 <해변에서>,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렛의 춤>, 피사로의 <붉은 지붕>, 시슬리의 <아르장테이유의 다리> 등 오르세의 인상파 풍경들은 그같은 속삭임을 들려주는 듯하다. 교외로 드나들다 보면 늘상 대하게 되는 생 라자르역이 마네의 눈길을 끌며 화폭 위에 빈번히 오르다 오늘날 너무나 유명한 인상파의 상징으로 들어앉은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튜브 물감의 사용으로 야외 작업이 훨씬 용이해진 인상파작가들은 야외에서 경험한 빛을 실내로도 끌고 들어왔다. 드가의 <물통>, 모리조의 <화장하는 여인> 등 실내화들은 그 빛으로 평범한 일상의 자취,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중립적인 '일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제 미술이 '미시화'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인상파 이후 현대미술의 주류는 역사화.주제화 등 과거의 온갖 거시적인 예술의 짐을 벗어던지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며 이제 순수한 조형 질서로 환원돼 더욱 빠른 속도로 자신을 미시화할 것이다. 입체파가 되고 추상화가 되고, 그러다가 종장에 그것은 개념미술처럼 하나의 순수한 개념 그 자체로까지 환원하고 말 것이다.
오르세에는 바로 이 인상파를 중심으로 신인상파, 후기인상파 등 후학들, 그리고 사실주의, 절충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나비파, 아르누보 등 19세기의 기타 주요 미술 흐름이 1848~1914년의 시간띠 속에 연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 시간띠는 1848년의 2월혁명과 1차대전 발발을 기.종점으로 한 것이다. 오르세에는 이 무렵의 미술뿐 아니라 건축, 문학, 사진, 영화, 음악, 출판문화, 장식예술쪽의 자료도 소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19세기 프랑스 문화의 영광을 한껏 자랑하고 있으나, 주지하듯 그 뒤안에는 숱한 혁명과 갈등의 사회상이 포연처럼 깔려 있다. 그런 까닭에 한 세기의 미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현란한 이미지의 파노라마 속에서 관자는 언뜻언뜻 피 묻은 시대의 발자국을 읽게 된다.
관내로 들어가면 일단 밑으로(1층으로) 내려가는 게 순서다. 가운데 통로에 조각작품들이 진열돼 있고 우측 방에 앵그르와 들라크르와가 자리하고 있다. 앵그르와 들라크르와는 각각 19세기 전반의 주요 흐름이었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대표하지만 1848년 이후 제작된 작품들은 어쨌든 루브르를 떠나 이곳 오르세에서 기거하고 있다. 왼쪽으로 도미에, 밀레, 루소, 코로, 쿠르베와 리얼리즘이 나오고, 뒤이어 샤반느, 모로, 1870년 이전의 드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풍경, 오리엔탈리즘의 방들이 이어진다. 맨끝에는 19세기의 건축 전시물이 나온다.
1층 전시장 끝부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3층으로 올라가게 되고 거기서는 인상파 대가들의 작품과 반 고흐의 가셰 컬렉션, 르동의 파스텔, 루소, 고갱, 신인상파인 쇠라, 시냑, 그리고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을 대하게 된다. 인상파를 중심으로 그 '인근 혈족'이 집중해 있는 곳인데, 당연히 대중적 인기가 높은 작품들이 많다.
3층 관람을 끝내면 마지막 코스인 2층으로 내려가게 된다. 1880~1900년의 살롱 회화와 자연주의, 상징주의, 외국 유파, 그리고 보나르, 드니, 발로통, 비야르 등의 회화가 걸려 있다. 베란다를 따라 로댕, 부르델, 마이욜, 로소 등의 조각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와 시대에 영합한 범재간의 모순과 긴장을 낳고 있고, 아르 누보 가구들과 영화의 탄생을 담은 공간이 들어서 있다.
  • 가격2,3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2.04.25
  • 저작시기2002.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27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