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및 문화 또는 역사적 인물을 조사하여 자료목록정리및서평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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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제 목 : 한국의 문화 (부석사)

□ 총 페이지수 : 13

□ 목 차: 1. 출발 전

2. 부석사 답사
[일주문]
당간지주]
[천왕문과 석축]
[석탑]
[범종각]
[안양루]
[석등]
[무량수전]
[조사당]
[응진전]
[자인당]
[단하각
[신범종각]
[보장각]

본문내용

한다.
[자인당]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로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 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하고 당호를 '자인당'으로 고쳤다고 한다. 여기서 자인이란 부처님을 자인대사라하는 데서 따온 것이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 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이다. 응진전과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모습이다.
[단하각]
응진전과 자인당을 보고 다시 내려올려고 하는 데 응진전 정면 오른편으로 조그마한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하마터면 단하각을 못 보고 지나칠 뻔했으니. 단하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납도리 맞배지붕으로 지어져 있는 작은 규모의 전각이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단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지만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을 쪼개 땠다는 단하소불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선사를 모신 것이라 여겨진다고 한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조금 전에 향을 피웠는지 어렴풋한 향내가 코끝을 찌른다. 절에 다니다 보면 불교에 어울리지 않는 삼신각이나 칠성각, 또 단하각 같은 도교적이고 다소 미신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전각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이채롭다. 아마도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토착종교와의 융합을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사당 근처의 한적함과 산사의 조용함을 느끼며 우리는 잠시 삼림욕을 하듯 맑은 공기를 즐겼다.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사찰들은 워낙 많은 관람객들 때문에 산사의 적막함을 느끼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데 이른 시간에 부석사를 찾은 것은 참 잘한 것 같다.
[신범종각]
내려오는 길에 범종각 좌우에 위치하고 있는 신범종각과 보장각을 둘러보았다. 비록 1980년에 신축한 건축물들이기 때문에 무량수전이나 조사당같은 고건축물의 기풍을 느끼기에는 부족했지만 신축된 건축물치고는 절 전체의 풍경에 누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어울리고 있었다. 신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기둥만 세워 개방하였는데 기둥 사이는 홍살로 막았다.
막돌로 만든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모서리에는 원형 주좌를 가진 방형 초석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지붕 가구는 도리를 3개만 사용하여 간단하게 구성하였으며 서까래도 꺾임 없는 통서까래이다. 정면 범종각 왼편에 위치하고 있는 데 진짜로 종을 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불영사를 실측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절에서는 점심 공양할 때마다 종을 치던데. 공짜로 점심공양을 해 보려는 우리의 속셈이 드러난 것은 아닌 지.
[보장각]
범종각 오른편에 위치한 보장각은 유물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건물인데 부석사 고려각판(보물 제 735호)과 조사당에서 떼어 낸 벽화(국보 제 46호)를 보관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2동을 석축단 위아래에 따라 건립하여 서로 연결하였다. 이 곳에 들어서면 조사당에서 떼어낸 벽화 여섯이 가지런히 벽에 기대어 있다. 입구에서 들어가 오른쪽부터 차례로 진열되어 있는 데 빛이 많이 바랜 모습이나 제석천과 범천은 화려한 복식과 빛깔로, 사천왕은 힘있는 자태와 간결한 복식으로 은근한 위엄이 서려 있다.
이어진 왼편 계단을 오르면 자연스레 윗건물과 연결되는데, 부석사가 간직해온 현판이며 무량수전에 깔려 있던 녹유전, 퇴계가 지은 시의 각판,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무량수전 닫집에 있었다는 용 조각상도 있는 데 매우 생동하는 모습이다. 보장각에는 스님인지 관리인인지 정체를 모를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부석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았다.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보유 국보수가 국내 사찰중에 두 번째라고 하시는 대목에서는 조금은 세속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보기가 안 좋았다. 내부에 있는 유물들의 실내 촬영이 허가되지 않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긴 하지만 관리인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촬영할 수 있었지만 부처님이 보시고 있는 것 같아 차마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였다.
올라오는 길
학기중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한적한 사찰의 단아함을 느낀 것도 잠시. 다시 속세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천왕문을 뒤로하고 부석사에 오르는 조용한 길을 배경 삼아 사진 몇 장을 찍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했다. 한참 부석사의 모습에 취해 잊고 있었던 허기가 돌았다. 부석사에 올라올 때는 왜 우리 나라 유명 고찰 앞에는 꼭 막걸리와 산채비빔밥을 파는 식당이 있을까하는 의문섞인 탄식을 했는데 내려갈 때는 그나마 그런 식당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픔에 금방 사람마음이 간사해지는 것을 보니 우리는 영락없는 중생이라. 막걸리 한 병에 파전 한 판을 시켜놓고 우리는 부석사를 안주 삼아 허기진 배를 채웠다.
부석사를 관람할 때는 좋았지만 이제 돌아갈 것이 문제이다. 부석사에 내려올 때의 흥분, 부석사를 관람하면서 느낀 많은 감정들도 이제는 돌아갈 걱정에 묻혀지게 되었다. 평일이라 돌아갈 기차표는 예매를 하지 않았고 물론 기차표도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승용차로 왔으면 좀 더 여유있게 구경하고 느낄 수 있었겠지만 가난한 학생들의 처지를 어찌하랴. 학기 중에 내려온 이유로 다음날의 수업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우리는 결국 영주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하였다. 급히 버스를 타고 영주로 향했다. 영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편이 거의 시간마다 있었다. 그것도 우등고속으로. 아침에 세수를 못해서 부랴부랴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며 세수를 하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데 깔끔한 모습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 출발하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부석사에 대한 우리들의 감흥을 정리하고 이번 과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웠다. 하지만 서울로 출발한 지 몇 분 후 우리 모두는 피곤함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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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12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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