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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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 아니 그의 죽음이 광부들에게 주는 교훈은 있다. 그의 아내에게까지. 더 이상 투쟁하지 말라는 교훈.
광부들은 다시 땅굴 속으로 들어갔다. 마외의 아내까지, 살아남은 목숨 먹고 살기 위하여. 그리고 이 영화에는 광산주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여 자신만 잘 살고자 하는 '배신자'들도 있다.
이렇게 하여 광산은 평온을 찾는 듯 싶었는데, 폭발이 일어나서 탄광이 무너지고 만다. 거기에다가 지하수의 흐름을 조절하는 관이 파괴되어 갱도가 물에 잠기고 무너진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죽음이다.
탄광주도 망하고, 마외도 죽고, 마외의 큰 아들도 죽고, 마외의 큰 딸도 죽는다. 무너진 갱도에 갇히어 에띠앙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마외의 큰 딸.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의 정사, 많이 보여주지 말고 조금만 하고 컷.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들의 삶을 조절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의 힘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 어쩌고 하는 것은 개발의 편자일 뿐이다. 여기에서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자로서 삶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지닌 마외의 아내 역을 맡은 미우 미우의 연기가 대단한 빛을 발한다.
강렬한 대사, 강렬한 눈빛. 그것은 말 그대로 본능적인 것이다. 물러서면 죽는다는 본능적 적극성, 그녀는 그걸 잘 표현해냈다. 이 영화에는 롱 쇼트, 클로즈 업이 교묘히 섞이어 어두운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마외가 총을 맞고 죽는 장면, 광산 폭발 장면, 에띠앙과 마외의 딸이 정사를 나누고 나란히 누워있는 장면, 마지막에 안개가 내린 들길을 에띠앙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걸어가는 롱 테이크 장면 등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예술성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졸라의 작품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하여 당시의 광산을 재현했으며, 6천 평방미터의 공간에 실제로 세워진 삼사백 미터의 갱도들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00년대 말에 쓰이던 술잔도 100여 개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조금 아쉬운 점은 두 시간이 훨씬 넘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어두운 장면이 지배하고 있는 점과 코믹 릴리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재미도 좀 있어야 영화가 머리에 남는 것이 아닌가 한다. 졸라가 생각한 '20세기에 가장 중요해질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른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저항과 투쟁. 가진 자는 말한다, 더 나누어 줄 것이 없다.
노동자는 말한다, 더 나누어야 한다. 정치하는 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얘기도 들어다오. 그렇지만, 이 삼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한 그릇에 담긴 먹을 것을 각자가 더 많이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 지혜가 필요하다. 죽고 폭파되고 물이 샌 뒤에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노동력에 의한 자본 집적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졸라는 노동 투쟁에 의한 혁명의 가능성을 '싹트는 날'이라고 제시하였다. 이제 신자유주의 사고가 주류를 이루는 정보화 시대가 되었다.
경쟁하여 이긴 자만 잘 살아 남는 시대, 구제금융의 터널을 지나면서 이러한 사고는 더욱 팽배해졌다. 모든 것이 제일주의다. 아무 곳에나 제일주의다. 가정에서도 제일주의고, 교육현장에서도 제일주의다. 제일주의자만 살아남는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제일주의로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에서는 누가 제일주의자일까.
무릇 인간이란 제 모양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니, 모두가 제일주의자가 된다면 나를 버리고 남의 생을 살아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자본을, 권력을, 지식을, 육체적 힘을 가진 자들이여, 신자유주의를 주창할 것이 아니라 나누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공생주의를 실천해 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실천이 이루어지는 날, 그날이 우리에게는 '제르미날'일 것이다.

키워드

제르미날,   루공 마카르 총서,   목로주점,   에밀 졸라,   연대기적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