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가시리>
(2) <서경별곡>(西京別曲)
(3) <청산별곡>(靑山別曲)
(2) <서경별곡>(西京別曲)
(3) <청산별곡>(靑山別曲)
본문내용
있는 사설은 정해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궁중 속악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노래 이름을 <청산별곡>이라고 품위있게 짓고, 사설은 여덟 장으로 추려 어느 정도 말을 다듬고 순서를 정했을 것이다.
(4) 조선 초기에 고려에서 물려받은 속악을 정리하여 아악으로 새로 제정하면서, <만전춘별사>·<서경별곡>·<청산별곡>의 곡조는 이용하고, 사설은 배격했다. <만전춘>의 곡조를 <정대업>(定大業) 가운데 <순응>(順應) 또는 <혁정>(赫整)이라는 악장에 쓰이고, <서경별곡>과 <청산별곡>은 각기 <정동방곡>(靖東方曲)과 <납씨가>(納氏歌)를 얹어 부르는 곡조로 삼았다. 고조는 살리면서 사설은 배격한 이유는 사설이 남녀상열지사라는 데 있었는데, 그 구실이 어느 작품에서나 한결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4) 조선 초기에 고려에서 물려받은 속악을 정리하여 아악으로 새로 제정하면서, <만전춘별사>·<서경별곡>·<청산별곡>의 곡조는 이용하고, 사설은 배격했다. <만전춘>의 곡조를 <정대업>(定大業) 가운데 <순응>(順應) 또는 <혁정>(赫整)이라는 악장에 쓰이고, <서경별곡>과 <청산별곡>은 각기 <정동방곡>(靖東方曲)과 <납씨가>(納氏歌)를 얹어 부르는 곡조로 삼았다. 고조는 살리면서 사설은 배격한 이유는 사설이 남녀상열지사라는 데 있었는데, 그 구실이 어느 작품에서나 한결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