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 사상 고찰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영지주의 개관
1) 영지주의
2) 영지주의의 성격
3) 영지주의 자료
4) 영지주의의 기원
2. 영지주의의 종류
1)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자
(1) 사투르니누스
(2) 카르포크라테스
(3) 바실리데스
2) 시리안계의 영지주의자
3) 팔레스타인계 영지주의자
(1) 에비온파
(2) 케린투스파
4) 로마의 영지주의
3. 영지주의의 사상
1) 영지주의의 구원론
2) 영지주의의 우주론
3) 영지주의의 윤리론
4) 영지주의의 기독론

3. 결 론

본문내용

안에서만 찾아 볼 수 있고, 몸은 본래적으로 악한 것으로서 이렇게 상대적인 힘이 영원한 대결상태로 있다. 그래서 몸을 영에게 복종시켜서 엄격한 훈련과 금욕적 삶을 영위하고, 또는 몸이 무슨일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기도 한다. 왜냐하면 몸은 영의 순수성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영이 원하는 대로 맡겨야 한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영지주의자들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자유방임주의로 크게 구별해 볼 수 있다.
4) 영지주의의 기독론
이들의 메신저는 그리스도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이룩한 업적은 우리들의 원래의 기원을 상기시켜 주기 위하여 지구에 오신 것이며, 또 본래 영적 저택에 귀환하기 위해 필수적인 비밀의 지식을 전달해 주고자하는 것이다. 육체와 물질은 악한것이므로 대부분의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의 메신저였던 그리스도가 우리들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어떤이들은 그의 육체가 단지 유령에 지나지 않으며 기적적으로 진짜 육체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적 "그리스도(Christ)"와 지상적 "예수(Jesus)"를 구분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가 육체를 가지고 있기는 하였으나 이는 우리들의 육체와는 다른 "영체(spiritual matter)"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초대 교회사 . 후스토 L. 곤잘레스. 서 영일 역. pp. 102-103.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예수님의 탄생을 부인하였다. 만일 물질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하나님의 의지로써 생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적하는 다른 원리에 의해서 생성되었다고 보면 물질과 인간의 육체는 지고하신 하나님이 계시를 나타내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하나님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은 진정한 의미의 신체적인 몸이 아니고 다만 몸을 가진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의 고난과 죽음도 참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과 물질의 파괴적 힘에게 굴복당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은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부르는 기독론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3. 결 론
영지주의는 정통주의의 형성에 간접적인 촉진제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단들의 도전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단 사상이 등장하면서 정통 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점에서 이단 사상은 기독교 사상사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단의 등장은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이단이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사도신경과 일련의 신조들이 역사에 등장하였으며, 정경의 발전 역시 이단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단이 무엇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이단의 판단기준들이 기독론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니케아 회의
) 325년 열린 첫 번째 에큐메니칼 공의회이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초신자였던 콘스탄티누스 가 소집하여 개회식을 주제하고 논의에도 참석하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 때문에 발생한 동방교 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였다. 공의회에서 아리우스를 정죄하고 성자 성부의 동등함을 나타내 기 위해 성서에 없는 단어인 "호모 우시오스('본질상 같다'라는 뜻)"를 니케아 신조에 포함시켰다. 이 공의회에서 여러 가지 교회법을 반포했는데 그중 주교 서품절차, 성직자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정죄, 주교와 사제, 부제가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등이다.
이후이다.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는 신약성경 이외에 정통신앙의 보편적 표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니케아 회의 이후 나케아 신조가 이단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나 니케아 회의 이전에는 성경과 신앙율, 사도들의 가르침들이 이단의 판단기준이 되었다.
우리가 영지주의 보고서를 마무리하면서 지적해야 할 사실은 초대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단을 비판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단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요소들이 이단들뿐만 아니라 정통주의라고 분류되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에게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대에 사상계를 지배했던 중기 플라톤주의, 스토아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기독교와 융합되어 나타난 현상들을 목격할 수 있다. 영지주의를 비판했던 저스틴의 사상에 영지주의의 핵심 사상인 플라톤사상이, 터툴리안에게는 스토아의 직선적인 사고가,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사상에는 플라톤주의의 색체가 농후하게 나타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80-200)는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를 마르시온과 연결시키고, 오리겐의 요한복음 주석은 반세기 저에 쓰여진 해라클레온의 요한복음 주석의 도움을 받아 쓰여졌으며,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자들은 다음 2세기 후에 알렉산드리아 신학파를 형성하는 기초를 놓았다. 기독교 플라톤주의도 영지주의에 상당히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영지주의가 많은 기독교적인 용어들을 차용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성육신, 구원, 삼위일체, 성령과 같은 성경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 참 고 문 헌 ※
1. 차 종순. 교회사. 한국 장로교 출판사.1992, 2쇄 발행.
2.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I. 이 형기, 차 종순 역.
한국 장로교 출판사. 1994, 8쇄 발행
3. 차 종순. 교리사. 한국 장로교 출판사. 1994, 2쇄 발행.
4. 박 용규. 초대 교회사. 총신대학 출판부. 1994.
5. 헨리 채드윅. 초대 교회사. 서 영일 역.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3.
6. 유스토 L. 곤잘레스. 초대 교회사. 서 영일 역. 은성 출판사. 1992 6판
7. 이형기. 세계 교회사 I. 장신대학 출판부. 1994.
8. 해리 R. 모어. 단편 초대 교회사. 백 성호 역. 1986.
9. 브리태니케 대백과 사전. 3. 4. 15. 16. 17권. 한국 브리태니커,
동아일보 공동출판. 1992.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10.04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26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