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원 학살사건 - 거제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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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온 나라가 진혼굿판 벌여야]

2. [거제·통영…김해·진영에서도]

3. [계속 좌절된 진상규명]

4. [해결가능 법 있다]

본문내용

양민학살사건 등 3건이다.
정부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보도연맹사건이든, 통영·거제사건이든 모두 이 법에 의한 명예회복조치가 가능하다는 게 법률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여론이고, 이에 따른 정부의 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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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6·25당시 마산형무소 교도관 김남수씨]
“6·25 당시 마산형무소에 잡혀왔던 보도연맹원 사건은 육군특무대(CIC)가 전적으로 주도한 일입니다. 우리 교도관들은 잘 몰라요.”
지난 48년 9월부터 82년 12월까지 마산형무소(현 교도소)에서 간수(교도관)로 근무했던 김남수씨(71·마산시 합포구 완월동)는 마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에 대해 여전히 말을 아끼려는 모습이었다.
그는 50년 7월 15일 시민극장에 소집된 보도연맹원들이 마산형무소에 수용된 후 약 한달간 이들을 관리했다고 밝혔다.
“전쟁이 터지자 CIC요원 20~30여명이 교도소 안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좌익사범 수사를 전담했습니다. 바깥에서 사람들을 잡아들여 수사를 한 후 어디론가 데려나가곤 했는데 그들을 모두 어떻게 했는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보도연맹원들은 한달 가까이 형무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대기를 하다 어느날 버스에 실려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이 과정에서 간혹 석방된 사람들도 없지 않았는데, 석방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CIC 대장이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50년이 지났으니 그들의 한을 풀어줄 때도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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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2.10.06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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