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쓴작품(파우스트는 어떤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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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고전과의 만남] 괴테의 〈파우스트〉
-양극성 속에 갈등하는 인간상 그려-
(파우스트 내용 개괄 밑 인간상 개략적 탐구)

파우스트 신화와 대중문화
-파우스트 신화 부분에서 파우스트의 인간상에 대해 알 수 있음.
또한 대중문화와 마추어 보기도 함.

본문내용

유난히 환한 조명과 산뜻한 실내장식으로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곳으로 이끌리도록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대부분 그 곳으로 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삼성백화점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또한 13개 노선에 이르는 삼성백화점 무료순환버스는 지하철역 인근 지역에 살지 않는 분당주민들의 다리 역할을 한다. 이 버스들은 분당 주민들에게는 지하철역과 분당의 거주지를 잇는 주요한 교통수단이 됨은 물론이고, 15분-20분 간격으로 분당전지역과 인근 지역(수지, 용인, 서울의 강남)을 돌며 쇼핑객들을 실어 나른다.
백화점안으로 빨려들어온 사람들은 여기에 갇혀서 곳곳에 팔 물건들을 구경한다. 이 곳은 단순히 구경하러 온 사람, 혹은 지하철역과 마을을 잇는 백화점순환버스를 타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 음식을 먹으러, 혹은 사람을 만나러, 혹은 문화강좌를 들으러 온 모든 사람들을 구매자로 전환시키도록 의도되어 있다. 이 곳에 들어오면 상춘의 기온과 화려한 조명으로 인하여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많은 자연을 재현한 공간과 휴식공간을 통하여 오랜 시간동안 머물러도 피곤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최상의 서비스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하며, 또한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 혹은 백화점 카드로 구매가 용이하여 돈을 인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게 한다. 또한 이 곳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백화점은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동원되고 치밀하게 구성되고 운영되는 하나의 독립된 소비의 왕국이다. 삼성백화점은 사회적 모순과 폭력을 은폐하고 있는 대표적인 시뮬라크르의 공간이다. 이 곳에는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 없고 단지 상품들이 기표로서 쌓여있는 쇼윈도만 있을 뿐이다. 이 곳에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정치의 부패, 빈부의 격차, 실업 문제 등에 대한 반성이 없다. 다만 거대자본이 문화와 소비를 통하여 사회를 장악하고 있고 우리의 삶에 직접 관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줄 뿐이다.
이렇듯 우리는 현대인들이 환상의 공간에서 타자의 의도라는 마술에 걸려들어 일상을 소비하는 경우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채 무수한 기표의 공간을 방황하는 꼴이 되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현대인들에게는 환상의 세계를 성찰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간직하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새삼스럽게 파우스트 신화를 되새기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3. 결 론
유럽에서는 중세 초기 이후 악마와의 계약담이 자연지배의 기술적 과정이 시작된 사회의 중심적 신화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구의 마법사의 제자는 진보·승화·노동·합리성·능률 등의 청교도적, 프로메테우스적 시도와 대립되는 죄의식을 악마로 대표되는 악의 힘으로서 꾸준히 문제를 삼아왔다. 억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다시 환상의 대상이 되어 주인공에게 달라붙고, 혼을 팔아 넘긴다고 하는 중세적 주제가 부르주아 사회에 출현한 거래의 반영으로서, 악마와의 계약이 산업혁명시대의 개막과 함께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재생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이후 이 주제는 '기술의 기적'과 함께 '기술의 숙명'이라고 하는 신화의 배후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에도 핵전쟁에 의한 지구의 파멸, 기술의 발달이 초래한 문명의 자멸의 위기나 인류의 기술적 진보와 사회도덕 사이의 숙명적인 괴리라고 하는 주제와 함께 문화적 담론이나 일상생활의 신화 속에 침투하고 있다.
대중은 대중문화 속에서 조작된 허구적 인간의 이미지를 모방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유명인과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똑같은 상표의 옷을 입고 그들의 행동을 흉내내고, 광고에 의해 지시되는 기호화된 사물들을 소비하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 하는 대중은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림으로써 스스로에게 소외당한 현대의 파우스트를 표상한다.
21세기에 인간들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존재해야 할까? 조성모나 H.O.T의 노래에 열광하는 청소년들, 프로 야구나 축구 경기장에서 흥분하는 관중들, 또는 주말마다 주말연속극을 보기 위해 TV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는 가족들, 그들이 과연 21세기의 진정한 인간의 모습일까? 혹은 컴퓨터 게임을 즐기기 위해 PC방에서 밤을 새우는 젊은이들이 21세기의 인간의 참 모습일까?
우리는 그것만이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라고 분명히 단언할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은 실재일 수도 있다. 실재와 그것을 재현하는 이미지의 차이가 디지털로 매순간 "지금 우리의 인구는 얼마입니다"라고 가리켜주며 명멸하는 전광판이 매순간마다 죽음과 삶을 하나의 숫자로, 빨리 바뀌며 사라져야 할 숫자로 변화될 때 인간은 부재한 추상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빈틈없이 밀려오는 어둠처럼 인간의 세계에 불어닥치는 새로운 물질문명과 전자문명에서 불어오는 환상의 세계로부터 인간들은 조금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기에 21세기의 인간은 여기에 있으면서도 여기에 있지 않은 부재의 존재이자 역설적 존재가 될 것이라는 모호한 예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고 현실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질적 가치가 극대화되고 가상현실이 극도로 확장되면 될수록 모든 사안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야 한다는 점이요, 또한 개인에게는 자기 정체성이라는 핵심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필요성을 실현토록 하는 것은 결국 인간들이 자기 성찰을 잊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바, 첨단과학 문명의 시대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파우스트의 신화를 다시 읽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겪은 온갖 체험들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죽음 앞에서 뒤늦게 깨달은 파우스트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수 없는, 파우스트의 신화를 경험한 지성인이자 현대인으로서의 존재의미에 충실하는 것이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인간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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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10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6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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