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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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 서두
1) 폭력의 정의
2) 폭력이란 ?

나) 본론
1) 남아프리카의 폭력시위와 진압
(1) 남아프리카를 통한 폭력시위와 발단과정과 진압결과
① 환경과 배경
② 탄압의 시기
③ 폭력
④ 결과
2) 도산 안창호의 폭력과 비폭력의 연구
3) 기독교인이 보는 폭력시위와 진압의 관계
(1) 그리스도와 폭력
(2) 철학사상으로 정당화 시킨 폭력
(3) 비폭력에 대하여
(4) 비폭력의 형태

다) 결론

본문내용

어려서부터,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배우기 전 벌써 사람을 죽이는 폭력을 그 입으로 거침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의 세력을 빌려 파괴적으로 사용하는 힘이 집단적 폭력(集團的 暴力)이다. 현대 사회처럼 집단적 폭력이 난무한 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폭행을 해도 집단적으로 하고, 소매치기도 떼를 지언 조직적으로 하며, 싸움을 벌여도 집단으로 하고, 시위를 할 때도 주로 집단적으로 한다.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대학가의 집단시위는 그 이유와 목적이야 어떻든간에 외형적으로는 지나치게 거칠어져 살상잉띵 자행되고 있다. 기물파괴, 방화를 위한 화염병 투척, 돌 팔매질, 각목 휘두르기 등 그 방법이 너무나 거칠다. 목적을 위해서는 방법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집단적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라고 강변한다. 부분적 폭력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라고 강변한다. 부분적 폭력은 혁명의 성취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서 집단적 폭력을 극대화시킨다.
성경에 나오는 집단적 폭력으로는 예수를 처형할 때의 군중들의 함성이 있고, 스데반을 향한 돌 팔매질이 있으며, 전도여행하던 바울을 집단적으로 구타한 사건 등이 있다. 폭력적 무리는 이성(理性)을 상실한 채 목적 목표도 없이 그저 움직인다. 그 가운데는 광포(狂暴)와 혈기가 우세하고, 질서와 조화, 평화와 정의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없다. 단지 피흘림과 저주가 땅을 더럽힐 뿐이다.
예로부터 줄곧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어떠한 종류의 강압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설령 그것이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일지라도]을 거부해 왔다.
기독교 사상에는, 폭력이란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롬13:4)를 행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하여 집권자들에게 그 권한이 위임되어 대리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는 장구한 전통이 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집권자들인 개인적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하여서는 국가의 소관 관청만이 힘의 사용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시민들을 또 다른 시민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폭력 행사는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이데올로기나 생활 양식을 강요하는 데까지 확대될 수가 있다. 특별히 이러한 일은 지배 집단을 면직(免職)시킬 수 있는 비폭력적 제도(선거나 국민투표 같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을 때에 일어난다. 이런 경우에 장기 집권하는 독재자들은 군대의 지지나 복종을 이용하여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억압적인 정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로부터 줄곧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어떠한 종류의 강압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설령 그것이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일지라도]을 거부해 왔다.
현실에서 권력은 폭력에 의하여 규정되지 않는다. 폭력은 일정한 권력의 도구이다. 그러나 "권력의 궁극적인 형태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강력하게 결합한 연대이다." 폭력을 통한 권력은 우월한 무기를 사용하는 비교적 적은 수효의 사람들에 의하여 행사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지속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다수의 협력에 혹은 무관심에 달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비폭력 전략은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투쟁하는 잘 훈련된 거대 집단의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 한편, 지배자들이 사회에서 그 권력 기반을 상실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비례적으로 폭력 사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의 효율성은 대다수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시키는 능력에 근거한다. 그러나 권력은 다수의 적극적, 또는 무언중의 동의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 쟝 마리 뮬러(Jean-Marie Muller)가 말하듯이, 비폭력적 행동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에 의해서 권력을 잡으려고 열망한다."
다) 결 론
생명과 질서, 아름다움과 평화, 부드러움과 조화를 파괴하는 경직되고 난잡하며 거치른 힘은 선(善)을 모른다. 무정하고 무자비할 뿐이다. 주먹으로 하다가 안되면 발로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몽둥이, 쇠 파이프, 돌맹이 등을 함부로 사용한다. 남의 인격이나 정조, 재산이나 건강 등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욕설과 거짓말과 위증과 저주섞인 험담으로 사람을 해치고, 그릇된 사상으로 개인이나 사회를 파괴하며, 무질서하게 만들고 파당을 지엉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꺾는다. 자기의 권세를 남용하여 착취하거나, 집단의 힘을 빌려 억지를 부린다. 그런가 하면 탱크와 폭탄의 힘을 빌려 대량 살상을 서슴없이 감행한다. 이것이 폭력이다. 어떤 회사가 구조적으로 악을 행하는 경우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시위를 벌이면서 그 과정 중에 회사를 부분적으로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개인에게 보복하는 권리나 악을 징벌하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국가 권력과 그 국가가 권한을 위임한 재판관만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 악이나 폭력을 당할 때,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를 위하여 지도하고, 아니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같은 가르침을 예수님은 자신이 실천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받되, 상대를 위협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마틴 루터 킹이 적극적 비폭력의 원리를 따라 투쟁하였고, 한국의 조만식이나 주기철 같은 분들도 일제 치하에서 비폭력의 방법으로 민족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적극적 비폭력의 방법으로 폭력을 결국 이겼다.
「 참고 문헌 」
해방신학
교회와 그 사회적 책임
폭력과 비폭력에 관한 연구 --- 논문
도산 안창호의 윤리사상 연구 ------ 권신찬
라틴아메리카 신학의 정치윤리에 관한 연구
---- Jose Miguez Bonino 를 중심으로 ----
비폭력과 사회변화 ----쥬디 스티엠---
평화의 신학
우리는 더이상 순진하지 않는다
해방신학이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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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2.10.22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7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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