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머리 장신구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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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빗· 비녀 문헌 고찰 및 양식

Ⅲ. 채· 보요 문헌 고찰 및 양식

Ⅳ. 결 론

참고문헌

**한글97

본문내용

09.
唐代 부인들 사이에 步搖가 전성했던 것도 서역 호속에서 영향 받은 것이라 하며,39) 당시의 步搖는 地位와 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步搖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다만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호분 벽화 남벽에 그려진 인물상 (그림 20) 중 왕비상은 假 로 장식한 高 를 이루고 있는데 그 위에 가늘고 긴 머리장식을 방사상으로 늘어지게 꽂았으며, 또 꽃모양의 머리꽂이를 머리에 꽂아 이마와 귓전까지 느렸다. 또한 왕비를 시중드는 시녀로 보이는 여인들도 모두 머리를 假 로 장식하고 왕비와 거의 동일한 머리장식을 머리에 꽂아 늘어뜨리고 있는데 이것들이 중국에서 성행하던 步搖의 일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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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결 론
삼국시대 머리장신구는 크게 나누어 빗, 비녀, 釵, 步搖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빗은 원래 중국에서는 齒가 성긴 '梳'와 조밀한 '比'로 구분되고 있었으나 梳와 比를 총칭하여 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삼국시대 우리 나라의 고분 출토 유물들은 정확히 '소'와 '비'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삼국시대에도 두 가지 양식이 공존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빗의 유물은 고신라 고분인 壺 塚, 황남동 제 98호분 북분, 천마총, 금령총, 식리총등에서 출토되고 있다.
비녀는 ' '나 '簪'으로 불리던 것인데 는 冠을 고정시키는 용도는 물론 성인남자가 사용했고 또한 여성들도 머리에 장식용으로 常用했을 것으로 보이며 漢代 이후에는 주로 簪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비녀의 착용모습은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도에서 볼 수 있고, 유물은 고구려, 백제, 고신라 모든 지역에서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는데 주로 L자형과 장식을 가한 環頭形으로 되어 있다.
釵는 叉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二叉의 형을 상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름이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즉, 집게형으로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釵의 유물은 주로 고구려 관계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재료가 주로 청동, 은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U자형으로 되었으며 드물게 족집게형으로 된 것도 있다.
한편 특수한 釵의 일종인 鳳凰이 붙어있는 釵를 가리키는 爵釵는 백제 武寧王陵 출토품이 그것일 것이다.
步搖는 가계의 풍속과 더불어 원래 북방유목민족의 풍속이었는데 위진 이후 한인사회에 채용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步搖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다만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도에 그 착용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상으로 삼국시대 머리 장신구의 양식 및 그 유례들을 살펴보았는데 유물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아 좀더 상세한 형태는 계속 보충 연구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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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시기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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