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맥주의 발전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맥주의 어원

맥주의 역사

맥주의 재료

맥주의 종류

맥주의 속담과 격언

맥주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

본문내용

루미늄 통이나 스테인레스 통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세척과 살균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맥주제조설비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데 주요 원인은 스테인레스 스틸(stainless steel)의 출현 때문이었습니다. 무라까미 (村上)氏의 <地球맥주紀行 designtimesp=20866>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3-4 세기경 인도 델리에 세워진 구쯔부미나르 사원(寺院)의 철기둥은 옥외에 세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녹이 슬지 않아 유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古) 인도에는 우수한 제철 기술이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이런 기술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아랍인들이 전쟁에서 사용하던 다마스커스의 칼이다. 칼에 새겨진 무늬가 독특하고 칼이 잘들어 유럽사람들은 이 칼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칼의 비밀을 찾으려는 시도가 스테인레스강(鋼)의 시작이었다"라고 .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까지의 발효탱크는 사각형의 시멘트-콘크리트구조물로서 내부는 피치를 칠하여 사용했으며 저장탱크는 철제 원통형으로 내부는 피치나 에폭시 수지를 발라 뉘어진 상태(horizontal)로 저장실내에 배열했습니다. 피치를 칠한 탱크들은 피치가 벗겨지면 칠을 다시 했는데 보통 이삼년에 한번씩 행하는 피치 칠하기 작업은 대단히 번거롭고 어려우며, 손이 많이가는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맥주공장에서 설치되는 각종 탱크류는 스테인강판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탱크가 차지하는 면적을 좁게하기 위해 탱크를 세우는(vertical) 공법으로 변환되면서 보온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탱크를 옥외에 세우는(out-door) 최신식의 건설방법이 오비맥주에 의해 시도되어 일반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여튼 스테인레스로 탱크나 생맥주용기가 바뀜으로서 맥주는 한층더 깨끗해지고 음료로서의 보존성이 보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끔 오크통에서 나온 맥주가 더 맛이 있다는 애주가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옛날을 돌이켜보고픈 일종의 노스탈지어라고나 할까요....
맥주잔에도 받침을?
후보자를 술잔으로 누르고
외국의 맥주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맥주 잔받침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을 줍니다. 잔받침은 맥주와 공기의 온도 차이로 맥주잔에 맺힌 이슬방울이 흘러내렸을때 이를 흡수하고자 흡수성이 좋은 종이로 두껍게 만들어 잔밑에 받혀 사용합니다. 야외에서 맥주를 마실 때는 굳이 잔받침이 필요없겠으나 맥주잔 안으로 벌과 같은 곤충이 들어가는것을 막기위해 잔을 덮어 놓기도 하며 맥주에 직접 직사광선이 비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또한 기숙사 내에서 학생들이 운영하는 바(bar)같은 곳에서는 자신이 마신 맥주병 숫자를 잔받침에 표시하여 계산을 할때 잔받침에 적힌 숫자를 보고 계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잔받침을 영어로는 Beer Mat라 하고, 독일어로는 Bier-Deckel(잔덮개) 또는 Bier- Untersetzer(잔받침)라고 부릅니다. <맥주큰사전>에 의하면 잔덮개는 19세기말 독일의 드레스덴(Dresden)에서 생겨났는데 처음에는 잔덮개와 잔받침은 서로다른 별개의 물건이었습니다.
본래 잔덮개는 맥주를 두고 대화를 하는 동안 맥주잔을 덮워두기 위해 사용했고, 모직으로 만든 잔받침은 따로 있어 호프집에서 근무하는 여종업원은 매일밤 잔받침을 빨아 기와지붕에 널어 말려야 했으며, 잔받침의 청결함으로 그 술집의 위생상태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잔덮개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게 되어 잔받침 하나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펄프를 사용한 딱지모양의 잔받침은 892년 드레스덴의 스푸트(Sputh)氏가 처음으로 특허를 받은 것으로써 1800년대 末까지는 그림없이 생산하다가 1906년에 가서야 잔받침에 인쇄를 하기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한 모양에 색상도 간단했으나 요즘에는 200여 가지의 다양한 모양과 가지각색의 색상으로 맥주 PR뿐 아니라 고객의 호기심을 끄는 귀중한 상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생산량도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매년 20억매에 이르고 있고 새로운 스타일의 잔받침도 매년 1천여매가 선보이고 있으며 영국과 덴마크에서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우표가 수집가들의 욕구를 수백년 체워 주었다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잔받침, 병따개, 술잔, 생맥주잔, 상표, 재털이, 왕관, 카드 그리고 벽에 걸 수 있는 사진 등이 새롭게 수집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시 몇백년을 기념한다든지 혹은 회사창립 백년을 축하하기 위해 주민의 인상에 남았던 몇가지 사건이나 문화재 등이 인쇄되었으며 또는 흘러간 몇개의 잔받침을 한세트로 하는 세트상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잔받침은 매우 효과있는 선전품이 되었습니다. 규모가 큰 맥주회사들은 자사 맥주를 선전하는데 잔받침을 이용하는데 자사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품종별로 인쇄하기도 하고 자사의 지역별 공장을 모델로 등장시키기도 하며, 자사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있는 문화재를 알리면서 맥주선전을 겸하기도 합니다.
200여가지의 유머를 씨리즈로 하여 잔받침에 게재했던 독일 빈딩社 (Binding Brauerei)의 아이디어는 지금까지의 광고방법 보다 신선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연간 생산량은 비록 적지만 기이하고 특이한 모양의 잔받침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병무청은 신병을 모집하는 광고를 잔받침에 싣기도 하는데 양이 만만치 않게 많다고 합니다. 잔받침의 광고효과를 급기야 정치에도 이용하는데 이젠벡(Isenbeck)사는 정치인을 시리즈로 하여 9백만매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각 정당은 자기당의 후보를 잔받침에 좋게 그리고 멋있게 표현하는 일방, 상대방 후보는 취약한 부분을 부각시켜 곤혹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네와 같은 정치현실에서 잔받침을 후보자들의 홍보에 사용하게 할수만 있다면 이것 또한 상당한 비지니스가 될 수 있으며 대단히 많은 양의 잔받침을 팔 수 있을뿐 아니라 제품의 선전까지 겸하는 1석3조의 효과를 거두리라 판단됩니다. 말도 안되는 착상이라고 접어두지 마시고 과감하게 도전해보는 것 어떠세요?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2.11.14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189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