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경,고문경학,금문경학,주자학,양명학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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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인문학방법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2.유가경전을 연구하는 학문, 경학

3.13경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4.미언대의의 학문, 금문경.

5.사료의 정확한 해석에 힘쓴 고문경학

6.이상적 도덕정치를 꿈꾼 주자학파

7.마음의 학문, 양명학.

본문내용

아니라, 자기의 마음과 외부의 이(理)가 동일하다는 생각 하에서 외부적인 사물의 이(理)를 탐구함으로서 외부적 사물의 이를 모두 알게 되는 상태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까마귀의 깃털을 조사하지 않더라도 까마귀가 검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외재하는 사물의 이를 궁리한다면 하는 일마다 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윤리설의 핵심이다.
여기에 이어 오는 것이 정치론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는 저절로 된다는 것인데, 각자 지켜야 할 것을 지키므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자학파의 학문의 최종목적은 이상정치, 곧 도덕정치의 실현이었다. 그를 위해 궁리(窮理)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고, 그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대학(大學)』이었다. 주희는 궁리(격물)부터 출발해,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단계로 이어진다고 보았으며, 궁리의 핵심은 독서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치를 탐구하기 위해 경전을 연구해야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경전탐구에 있어서 주석을 완전히 제거하였으며, 원문에서 이치를 찾았다. 또한 이치의 탐구를 중시했으므로, 이에 부합되는가 아닌가가 원문의 가장 중요한 잣대였고 만약에 그들이 생각하는 이(理)와 원문이 부합하지 않으면 원문을 무시하거나 배격, 비판하였고 또다른 학설을 제시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원문을 고치기도 하였는데, 그것의 기준은 역시 이(理)였다. 당나라때까지 신성불가침이었던 경전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지만, 이것은 경전내용의 타당성의 판단 기준을 하나로 (理) 정했다는 점에서, 일관되고 새로운 사상의 구축에 유리했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것은 철학적 사유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전통적 해석에 좌우되지 않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장점이 있다 하겠다.
하지만, 반대로 경전 내용의 타당성을 理로 판단해버려, 문헌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태도에서 상당히 벗어났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리고 새로운 견해를 내세웠지만, 그 중에서 많은 부분이 주관적 억측에 가깝다는 것, 마지막으로 경전을 제멋대로 고치는 행위가 극단적으로 이어지면 역사의 날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
마음의 학문, 양명학.
양명학은 무엇인가. 양명학은 왕양명(王陽明)이 집대성한 사상으로, 이러한 사상 조류에 합하는 학파가 양명학파이다. 왕양명의 본명은 왕수인으로, 그는 반동적인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여러 차례의 농민봉기의 진압을 주도한 적도 있었다. 왕양명은 "우주가 곧 나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이 곧 우주" 라고 한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의 관념론적 유심론을 한층 더 발전시켜, "마음의 본체는 포괄하지 않는 바가 없으며 명각의 감응으로 말한즉 물(物)이 되며" 라고 말하였다. 육구연과 함께 양명학을 집대성했다고 해서 육왕(陸王)학파라고도 한다. 그들은 철학의 핵심 개념을 心으로 보았다고 해서, 심학파(心學派)라고 불리기도 한다.
왕양명은 객관적인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곧 인간의 주관적인 지각작용의 결과이며, 만물은 모두 마음으로서 파생되어 나온다고 여겼다. 이런 관점은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것으로, 관념론적 철학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심즉리(心卽理)라고 주장하였는데, 여기서 심(心)은 나의 본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의 본심은 곧 리(理)다. 라고 했다. 여기서 본심이란, (주자의) 사단지심(측은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수오지심)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 이를 다 갖추고 있으므로 우주 자연의 이법, 도덕 원칙은 마음 속에 구비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치양지(致良知)라고 말하였는데, 양지라는 것은 바로 '배우지 않아도 있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본성을 가리킨다. 치양지는 양지를 회복하여 지극한 정도에 이른다는 말로, 만약 사람이 양지를 드러내려면 사욕을 제거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양지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욕을 제거하고 양지를 회복하려면 치양지의 노력, 즉 격심(格心-물욕으로 인한 혼폐를 제거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왕양명은 치양지에서 출발하여 지행합일에 이르렀는데, 지(知)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양지를 가리키며, 행(行)은 치양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이 양지를 구하려면 내 마음에서 이치를 구하면 된다는 의미를 가졌다. 이처럼 지행합일은 치양지를 한 발 발전시킨 것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왕양명은 명대 중기의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이 심화되어 봉건 통치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치양지" 와 "지행합일"을 내세워 인간의 사념을 억제하고, 인민들이 봉건 제도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을 은연중에 막았으며, 정치적인 면에서 봉건정치를 옹호하였다.
양명은 공부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육경은 모두 나의 각주이다(六經皆我注脚)' 라고 말하였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이(理)를 다 표현한 것이 곧 육경이라는 것으로, 그러므로 경전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국의 선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양명은 정사(正事)를 언급했는데, 독서는 책을 보는 행위로 인식객체인 외부 대상과 인식 주체인 내 마음이 만나는 행위가 독서이고 그것을 물(物)로 보았다. 그는 치민(治民)을 백성을 다스리는 행위이므로, 곧 같은 차례로 나와 백성이 만나는 행위라고 보아 또한 물(物)이며 사(事)라고 보았다.
이처럼 그는 사친(事親)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곧 행위로, 행위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格物- 곧 출발) 이며, 평천하는 심(心)에서, 심의 공부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음의 판단 능력에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점에서 매우 간단했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주관적인 면이 없지 않아, 남들이 공감하기가 힘들었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수행의 결과를 증명하기도 어렵고, 학문 연구나 학문방법론으로서는 채택하기 곤란하다는 단점을 지녔다. 왜냐하면, 단지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양명학은 심성과 이기만을 논하고 실질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관념적인 면으로만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는 부정적인 면을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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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2.12.01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3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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