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신관(샤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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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인의 샤마니즘의 사상체계에 대한 비판
1) 샤마니즘의 신관과 문제점 비판
2) 샤마니즘의 인간관과 문제점 비판
3) 샤마니즘의 종말관과 문제점 비판
4) 샤마니즘의 축복관과 그에 대한 문제점 비판

2.샤마니즘의 외형적 측면 비판
1) 카타르시스(catharsis)적 예배 의식
2) 물량주의적 가치 기준

3. 샤마니즘의 내면적 측면 비판
1) 이기주의적 기복신앙
2) 체험주의적 신앙
3) 운명론적 의타주의적 신앙
4) 비윤리적 신앙

본문내용

3. 샤마니즘의 내면적 측면 비판
1) 이기주의적 기복신앙
샤마니즘의 '굿'의 목적은 복을 받자는 것이고 중심 목적은 저승에서의 명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제재초복하여 평강하며 장수하자는데 있다. 기독교에서는 현실생활 또는 육신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 복임을 간주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팔복처럼, 물질적인 축복이 아닌 정신적 축복이 더 강조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 사상으로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샤마니즘의 복 사상이 아직도 교인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또 교회의 출석이나 교역자를 대접하는 일, 교회의 여러 가지 봉사 등을 하나님께 받은 영적, 육 적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표시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더 얻어내기 위한 파종으로, 즉 보상심리로 드리며 가르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샤마니즘의 복 사상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며 주술적인데 반해, 기독교의 축복사상은 계약적 신앙적 축복사상임을 알 수 있다.
뱃세다 들판에서 예수님이 주신 떡을 먹고 배불렀던 군중들은 그 다음부터는 오로지 이 떡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 헤메었다. 그들은 예수님 맛, 천국 맛, 복음의 맛, 십자가 구원의 맛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떡을 먹고 배부르게 되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이었다. 요즘도 이곳 저곳에서 열리는 축복성회가 물질, 건강, 출세, 만사형통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 받은 자라고 한다. 왜냐하면 천국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이다.
2) 체험주의적 신앙
강신 체험과 엑스타시(ecstasy)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샤마니즘적 신앙양태는 기독교 안에서도 신비체험과 엑스타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이러한 감각적인 어떤 것이 체험되어야 진실한 신자인 것처럼 인식되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김 태곤이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샤마니즘의 입신현상과 비교해 조사한 것을 빌리면, 성령체험자 거의 모두가 성령체험의 증거로 손끝이 떨리고 진동이 오고, 몸에 화끈하는 불을 느끼고, 방언을 말하며 환상과 환청을 체험하는 등 모두가 외형적인 것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있어야만 성령받은 신자가 된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신도이건 목회자이건 이러한 엑스타시 속에서 신앙을 표방하고 비현실적인 행동을 취할 때 기독교라기 보다는 샤마니즘에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보여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언을 받게해준다고 하는 샤만적인 목사가 있는가 하면, 보석을 감정해 주는 것처럼 방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명해주는 목사까지 있으니 성령님의 사역을 어떤 목사는 대행하고 있는 듯도 싶다.
또 어떤 집회는 춤과 노래를 곁들인 신비체험이나 그 반복적인 행사를 통해 신비체험을 보여주고 전수한다고도 하면서 기존 교인들을 현혹시키며 자기들의 조직을 확산시키고 있으니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체험적인 신앙이라고는 하나 성경은 가까이 하지 않으며 무슨 은사체험만 받으려고 하는 신비주의와 외적 경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건전한 신앙이 아니다.
3) 운명론적 의타주의적 신앙
인간의 운명을 포함한 모든 되어지는 일들을 천지신명이 다 주관한다고 믿고 인간은 자기생활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지려하지 않으며 자기의 신앙마저도 샤만에게 의지하듯이 목회자나 신령하게 느껴지는 자에게 일임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생활현상을 초월적인 신령계에 그 근거와 책임이 있다고 이해한다. 길흉화복은 운명적인 것이 되어버렸으며,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생활과 운명에 대해 자기 자신이 주체적인 책임을 지고 결단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샤만에게 재물만 주고 복을 기다리듯, 헌금만 내고 복을 기다리는 식의 샤마니즘 적인 병폐는 권위에 대한 의존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데서 온 현상이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생사화복, 질병 등 운명 일체가 신의 의사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는 영향으로 인하여, 그리고 성숙한 자기통찰의 결여로 인하여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운명으로 돌려 신에게 빌고, 안되면 아예 체념해 버리고 말기도 한다. 이런 운명 주의 적 풍토는 '굿'으로 인간의 모든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요행을 바라는 얕은 공리적 현세 주의적 신앙관을 형성하게 한다. 현세에 대한 욕구와 모든 되어지는 일들을 운명에 맡기며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동안 부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모든 일 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4) 비윤리적 신앙
샤마니즘에는 윤리적인 요소가 결핍되어 있다. 내세나 구원을 위해 자기의 사상이나 생활태도를 바꿀 필요도 없고 '굿'이 끝나면 자신에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이 다시 이전 생활로 돌아가고 만다. 이러한 신앙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윤리의식이 결여된 신앙생활이다. 예배당에서는 거룩한척 하고 예배시에는 '믿습니다','아멘'을 연발하면서 예배 후의 생활은 저 사람이 기독교인이냐 할 정도로 복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윤리의식의 결여는 병 낫기를 위한 안수기도와 안찰을 하며 구타법, 경압법 등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은 윤리도 없고 그저 병만 나으면 된다는 식인데 옳지 않다고 본다. 또한 헌금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자발적으로 마음에 나오는 헌금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헌금을 하도록 하는 일을 본다. 예로 일산에 있는 어느 교회는 부흥집회 기간에 헌금을 작정하도록 했는데 작정 헌금 액이 일 조원을 넘었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작정한 헌금은 자손 3,4대까지 바쳐도 된다고 하면서 강요했다는 것이다. 과연 윤리가 있는 자들의 소행으로 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심방시에 강제성을 띤 헌금의 요구는 무당이 굿하고 복채를 받는 것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이며 바람직하지 않은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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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14
  • 저작시기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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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15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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