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매매춘사,정화캠페인,저항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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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 기지촌 매매춘사
2. 한·미 공조하의 기지촌 정화 캠페인
⑴ 기지촌 캠페인이 일어난 배경
⑵ 기지촌 캠페인이 이루어진 시기.
⑶ 한·미의 기지촌 캠페인 관점
3. 기지촌 매춘 여성의 역할
4. 한·미 관계의 성별화된 역할과 정책들
5. 기지촌 매춘 여성들의 저항
⑴1971년 7월 13일 “안정리” 항의 시위
⑵1971년 평택의 매춘여성들 시위

3.<결론>

본문내용

하게끔 만드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미 국 : 지정학적 정책을 마련할 기회와 그에 따른 책임을 가진 후원국 역할.
남 한 : 생존을 위해 동맹을 맺은 다른 파트너가 없는데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전락적 차원에서 미국에게 주도권을 주는 것말고는 아무런 선택권도
가지지 못하는 수혜국의 역할.
미군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킬 만한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으며 군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미군의 주둔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 정부의 취약성 때문에, 기지촌에 법과 질서를 부과하고자 전력을 기울이던 주한미군 사령부의 힘은 더욱 강화되었다.
기지촌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의 "공조"는 주한미군이라는 조직 이익과 한국 정부의 안보 이익이 맞아떨어진 것일 뿐 아니라, 주한미군이 위협과 위압적인 태도도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5. 기지촌 매춘 여성들의 저항
⑴1971년 7월 13일 "안정리" 항의 시위 : 이전과 달리 주한미군측의 부당하나 처사에 항의하는 매춘 여성들을 지역 내 다른 사람들이 지지하고 나섬. 한국 사회로부터도 지지 받음.
⑵1971년 평택의 매춘여성들 시위 : 기지촌 매춘 여성들의 "인권" 주장 시위.
1970년대 초에 일어난 기지촌 여성들의 저항에도 알수 있듯이, 기지촌 매춘 여성들은 여러 면에서 비록 무력하기는 하지만 그저 수동적인 채로만 남아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기지촌의 경제적·정치적 생활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 "조직"을 만들었다. 매춘 여성들은 기지촌 공동체 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신들이 도를 넘어 내몰리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들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의식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여성들에게 있어 노동의 경제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는 뒤얽혀 있었으며, 이들은 기지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개인적 무력감을 한국 국민 전체가 미국으로부터 당하는 인권침해나 지배와 연관시켰다.
<결론>
매춘 여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좀더 나은 삶을 찾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비단 미군 기지만은 아니다. 미군 기지가 철수된다고 해서 이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착취의 근원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착취의 근원은 바로 철저한 계급 질서의 형성, 여성을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천민으로 간주하는 유교 도덕 규범 그리고 여성과 소외 계층의 목소리와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는 정치 체계와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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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3.11.01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9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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