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편과 제왕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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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명왕편과 제왕운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문
1. 이규보와 이승휴의 세계
(1) 12·13세기의 역사적 사정
(2) 이규보·이승휴의 생애와 사상
2. 영웅시(英雄時)와 역사시(歷史時)
(1) 영웅시로서의 『동명왕편』
(2) 역사시로서의 『제왕운기』
(3) 영웅시와 역사시
3. 민족서사시로 본 두 작품의 역사적 한계

Ⅲ. 결 론

본문내용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움직임이 당시의 붓을 쥔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과 시로 남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몽항쟁의 결과로 인해 『제왕운기』가 민족의 신화·전설을 수록하면서도, 『동명왕편』과 같은 열의를 보이지는 못하게 된다. 『제왕운기』상권 끝에 있는 대원의 칭송과 본조편 끝에 있는 고려왕실에의 축원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민족시조를 내세우고 민족의 활동을 최대한 그려놓은 『제왕운기』가 그 결말에 가서 이처럼 민족의 주체성을 양도해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서 우리 민족의 비극이 있었으며, 민족서사시로서의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
Ⅲ. 결 론
서사시는 사전적 해설에 의하면 무엇보다 비개성적인 문학이다. 따라서 서사문학의 내포(內包)는 개물(個物)이 아니라 전체에 속한 것, 고립과 분열이 아니라 종합에 향하는 것이며, 서사문학의 동기 혹은 흥미는 개인의 기쁨과 슬픔이 아니라 집단의 운명인 것이다. 12·13세기에 있어서, 전고에 없는 우리의 민족적 수난과 그것에 대한 민족적 저항은 시인으로 하여금 개인의 슬픔과 기쁨보다 민족의 운명 즉, 집단의 운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했으며, 영웅시도 역사시도 다 이러한 집단의식을 기반으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의 역사현실속에서의 지배층과 민중의 이해관계에 의한 분열은 민족공동체로서의 집단의식을 완전히 분열시켰다. 이러한 집단의식의 분열은 곧 서사시가 자기기반을 상실한 것을 의미하였다. 『제왕운기』가 그 결말에 이르러 서사시의 혼이 타락하였음을 보여주었고, 이로부터 고려가 망할 때까지 서사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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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3.11.30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5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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