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의 공간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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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국사의 공간구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서론
1.1 연구의 목적 및 방법

제2장 본론-1
2-1. 불국사에 대하여
2-2. 불국사의 창건신화

제3장 본론-2
3-1. 정토사상
3-2-1. 정토사상이란 무엇인가
3-2-2. 정토사상의 소의경전
1) 무량수경
2) 관무량수경
3) 아미타경
3-2-3. 사상의 근거

제4장 본론-3
4-1. 불국사의 가람배치와
4-2. 불국사의 공간 구성요
1) 대웅전(大雄殿)
2) 삼층석탑
3) 다보탑 (多寶塔)
4) 석등 (봉로대)
5) 무설전 ( 無設殿 )
6) 극락전 ( 極樂殿 )
7) 관음전 ( 觀音殿 )
8) 비로전 (대적광전 大寂
9)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佛國寺靑雲橋白雲橋)
10)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佛國寺蓮華橋七寶橋)
11) 범영루(泛影樓)와 경루
12) 회랑 (回廊)
13) 일주문 (一柱門)
14) 천왕문 (天王門)
15) 불이문 (不二門)
16) 사라진 옛정취들...

제5장 결론

본문내용

쓰고 있어서 이 절의 독립된 것이 아니라 불국사에 속해 있던 작은 암자였던 것을 시사해 준다. 또 창건 유래로 보아서도 장수사가 불국사의 암자였을 가능성은 맣다.
또한 고금창기에는 장수사에 아주 우수한 불상이 봉안되었고 신림의 부도연지 및 금동, 옥천, 석조, 찰간,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웅장했던 옛모습은 사라지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같은 형태이나 다소 단축된 듯한 느낌을 주는 삼층 석탑과 초석 몇 개만이 쓸쓸히 옛터를 지키고 있다
이 장수사의 삼층석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거의 동일한 수법으로 만들어졌다. 기단은 이중으로 되었고 초등 옥신은 사면의 우주가 각각 다른 돌로 되었다 옥석의 윗부분 낙수면은 아무런 층절이 없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다만 기단의 중층면과 하층면의 탱주가 네개의 단축되어 있어서 신라 초기의 탑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옥신관 옥석이 한돌로 되어 있는 것은 신라탑의 초기 형식인데 탱석은 다석 개로 되어진것이 상례이고 시대가 내려가면 이탱석의 수는 넷이 된다. 말하자면 이러한 형식은 7세기 후반부에서 8세기 후반부까지의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형식이라는 말이다.
높이 3.75m의 이 삼층 석탑이 주는 느낌은 웅장하고 장려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감이 중요한 편이다.
장수사도 1593년 왜란의 병화로 불탔다. 그 당시 장수사에 있더 담화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불국사의 불을 끄기 위해 힘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담화 스님이 20 년후에 다시 장수사를 중건하였다. 그후 다섯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 조선와조 마엽의 불교 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몰지각때문에 황폐해 버려진 옛터에는 조그마한 암자가 예 젖설의 고장을 지키고 있다. 탑의 동편에는 많은 초석들이 방치되었는데 무슨 건물 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지금은 암자자리가 금당터였던것 같다.
10) 석부도
유물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석탑을 제외하고 불국사 일곽에는 다섯 개의 부도가 있다. 그 중 한개만이 불국사 경내에 있고 나머지 넷은 불국사 우체국 옆에 하나, 석굴암 등산로의 서편에 셋이 있다. 불국사 경내에 있는 부도는 칠보교 앞 광장에서 남쪽길을 따라 30m쯤 내려간 곳에 있다. 사방이 1.05m의 화강암 기대석 위에 팔연판의 원형돌을 세우고 그 위에 별석으로 고동형의 옥신이 있다 그 고동형조각과 세련된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기록이 없어 누구그이 부도인지는 알길이 없다
현편 현재 불국사 우체국의 바로 동쪽에는 또 다른 부도가 있다. 일반적인 종형 부도의 모습을 띤 것으로서 사각의 기단위에 종 모습의 돌을 별석으로 다듬었다 기단은 사방 1.1m이고 부도의 둘레는 3.8m 전체 높이는 1.9m이다.
그 켱에는 비석이 있어 이부도가 도태라는 스님의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도태 스님은 공금창기에도 이름이 있는 사람인데 견륭 30년에 대웅전을 중건할때 화주를 맡았다고 한다.
비석의 뒷면에는 건륭 갑년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연대는 조선 영조39년에 해당한다 . 뒷면에는 이 부도를 세운 제자 열네명의 이름과 상좌, 극문, 등 열 다섯 명의 이름 및 화주의 이름을 새겼다.
한편 석굴암 등산로의 서편에 는 세 개의 부도가 있다 예전에 석굴암을 등반하는 길로 가면 3개의 부도가 있다 이 세 개의 부도는 모두 형태가 다르다, 제일 동편의 것은 팔각의 기단위에 별석으로 역시 팔각의 신구가 있다 제일 윗부분은 상륜이 없어진 팔각의 옥개를 얹었다. 원형 신구의 둘레는 201m 전체 높이 1.5m이다
중앙의 부도는 사각의 기단 위에 별석으로 원형 탑식을 세웠다 땅바닥에는 옥개가 방치되어있다 현재 높이가 1.4m인데 방치된 옥개석을 원형대로 올린다면 1.5m가 될것이다 서편의 부도는 원형 긱단 위에 별석으로 앙화 무늬를 새긴 탑신이 있고 그위에 고동형의 노구가 있다 .
5. 결론
이상으로 불국사의 전반에 관한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 보았다. 비록 풀과 가위의 글이 되는 결과 밖에는 더 이룬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글을 쓰면서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기는 많은 문화재들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세를 거치면서 많은 민중들의 염원과 고충이 하나하나 쌓여 불국사 같은 거찰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국사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 어떤 종파의 사찰이며, 어떤 상징을 함축하고 있는 지를 쉽사리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한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속에서 이러한 사찰을 만들고 여기에서 자신들의 신앙심을 키워왔던 그들을 느껴 보려고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올바른 시각에 의한 사색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불국사를 ■■삼국유사■■기록에서 보이는 것처럼 김대성 개인의 원찰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아마 그렇다면 그 종파 문제와 거기에 뒤따르는 상징의 문제가 오히려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불국사가 매우 복합적인 상징성과 가람배치로 되어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조금은 타협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즉 불국사는 당시의 모든 신앙의 형태(물론 그 속에는 화엄종과 밀교의 영향이 존재한다.)를 총망라한 사찰로서 그 신앙의 최고 경지인 각종의 불국토들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법화경■■신앙에 의한 대웅전 일곽이 가장 크고 중심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유가유식계열)이 당시 불교신앙의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까닭이 아닐까 한다.
참고 자료
참고 서적
안영수 1993『우리건축을 찾아서1』발언
주남철 1995 일지사b『한국건축의장』
김봉렬 1994 공간『한국의 건축』
1999 이상건축 『시대를 담는 그릇』
조계종 포교원 편저 2000 조계종 출판사 『불교교리』
참고논문
정기호 1993 동국대학교『불국사의 배치 및 세부형식』
인터넷
경주문화재 연구소 http://www.gcp.go.kr/
구품연지 홈페이지
http://my.dreamwiz.com/gpyj
/
불국사가람배치
http://www.kyongbuktour.or.kr
불국사홈페이지 http://www.bulguk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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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04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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