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소개와 향후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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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석굴암 소개와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석굴암 소개
2. 석굴암의 건립목적
3. 석굴암의 보존과 중조
4. 석굴암의 조각상
5. 석굴암의 기타 문화재
6. 세계문화유산으로서 향후 발전방향

본문내용

조물)을 두고 거의 방형에 가까운 둥근 복발(覆鉢:탑의 꼭대기에 그릇을 엎어놓은 것같은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으며, 상륜부(相輪部:탑의 맨윗 부분)는 없어졌다. 이러한 형식은 신라 탑파에서는 예외적인 것인데, 이 탑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앙각(昻角)이 수평선을 이루고 전각(轉角)은 무척 경쾌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전체 높이는 3.03m이다.
수광전(壽光殿)
원래 승방(僧房)으로 쓰이던 집이었다. 그 건물이 창건 당시부터 있어 왔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고, 자그마한 팔작지붕의 건물이었던 것을 1963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에 개축하여서 현재는 휴게실 겸 관리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원래는 두 칸짜리 익사(翼舍:건물에 잇대어서 지은 방)가 있었는데, 그 한 칸은 방으로, 한 칸은 부엌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개축할 때에는 이 익사를 완전히 철거하고 본채만을 수리하였으며, 철거된 자리에는 새로 방을 만들고 마루도 깔아 현재 종무소(宗務所)로 쓰고 있다. 석굴 자체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有産)으로서 향후(向後) 발전방향(發展方向)
석굴암은 우리나라에 몇 개 없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문화재로 세계에 자랑해야 할 관광자원이다. 하지만 석굴암은 현재 구조적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원인은 1913년 일제시대 때 시행된 제1차 중수공사에 있다. 당시 이들은 석굴암을 복원하기 위해 초기 모습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대로 복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그에게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등장한 시멘트의 효능을 믿고, 석조물 조립에 시멘트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석굴암 보존상의 커다란 문제거리를 남기는 결과가 되었다. 석조물에 시멘트를 부가함으로써 석조물을 약화시켰고, 석굴을 하나의 응결된 콘크리트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석굴암 밑으로는 원래 지하수가 흘렀다. 석굴암 건립 당시 신라인들은 이 지하수를 이용해서 바닥의 온도를 벽면의 온도보다 낮추어 습기의 이동으로 바닥에만 물방울이 맺히게 만들었다. 즉, 바닥에만 물방울이 맺히기 때문에 석굴암의 조각들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이 지하수를 없애버리고 석굴암을 하나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누수 및 침수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잘못은 광복 이후에 우리들의 손으로 수정되어졌다.
1962년 ~ 1964년 사이에 여러 가지 측면의 조사와 연구에 이어서 석굴암의 전면적인 중수가 시작되었다. 침수 · 결로 등 습기를 피하기 위하여 굴 내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고, 이를 위해 굴을 외기와 차단시키고, 인위적으로 석굴의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목조와즙(木造瓦葺:기와를 올린 목조건물)의 전실을 설치하여 외부의 변화 및 영향을 배제시켰고, 지하수를 굴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배수구를 설치하였으며, 콘크리트로 덮은 돔을 따라 흐르는 물도 역시 이 배수구를 통하여 처리하였다. 이 밖에도 석굴에 영향을 주는 자연조건을 일일이 제거하였다. 굴 내 조각의 위치에 관해서는 팔부신중(八部神衆:불교를 보호하는 8가지의 신장) 가운데 가장 앞면에 있던 좌우 각 일상(一像)이 금강역사(金剛力士)와 마주서게 굴곡 배치되었던 것을 다른 신중상과 일직선으로 병렬시켰다. 또, 이때에 수광전(壽光殿) · 3층석탑 · 요사 등의 부속건물과 유적 등도 보수하였다. 그러나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1960년대의 복원 작업은 단순한 수정이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는 못하였다.
석굴암은 현재 불당(?)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으며, 석굴암 보존을 목적으로 사진촬영이 금지되고 있다. 석굴암 내부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사실은 전혀 세계문화유산 같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실내에서 에어컨 등이 설치되어 있고, 본존불은 관리를 이유로 유리벽에 쌓여 있다. 물론 단순히 관광객들이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라면 상관없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복원이 되지 않아 그렇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이 훌륭한 문화유산의 향후 발전방향은 우선 완벽한 복원에 있다. 하지만 완벽한 복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석굴암에 대한 학문적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석굴암의 본모습에 대한 여러 주장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통일된 모습을 그리지는 못하고 있다. 석굴암 연구회라는 곳이 있지만 그 활동은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학문연구활동을 지원하여 석굴암의 완벽한 모습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신라인들의 예술적 감각이 잘 드러나도록 석굴암을 완벽히 복원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비싼 입장료와 석굴암 내부를 법회장소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 등 관광자원으로서 매력을 뽐내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점들을 고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석굴암부터 완벽하게 복원한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수학여행 이후로는 경주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내가 경주에 갔을 때는 석굴암이 완벽히 복원되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 문헌
성낙주,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개마고원, 2003
황병춘, 「세계문화유산광광지 가치추구」, 경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8
황수영, 「불국사와 석굴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www.encykorea.com/encyweb.dll?TRX?str=39988&ty=2
요네다 미요지의 경주 석굴암의 조영계획
http://www.sculpture.co.kr/daesung/culture/sokkuram/index.phtml?work=show&key=956566777&board=1
신라문화 진흥원 http://www.shilla.or.kr/historic-remains/bo_mun/sukgulam.asp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기행 http://blog.naver.com/unesco114
  • 가격3,0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10.05.26
  • 저작시기2009.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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