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중앙군의 성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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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중앙군에 대한 연구경향과 제설

Ⅲ. 주요 논점별 의미와 중앙군의 성격
1) 중앙군의 신분구성과 지위
2) 군인전의 지급과 운영 방식
3) 번상 여부과 가족거주 형태

Ⅳ. 맺음말

본문내용

하는 것으로 병역기피, 도주 등과 같은 缺員으로 병력이 모두 충원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병력 비율상에 나타나는 문제점도 경군의 편성을 전하는 사료와 주현군의 사료간에 상당한 시간차에 비롯된 것으로,
) 姜晉哲, 1963 앞의 책, 123∼124쪽.
보승과 정용의 군액은 군사ㆍ사회적 요인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번상에 따른 가족의 거주 형태에 대하여 강진철은
) 姜晉哲, 1963, 앞의 책, 121쪽. 이에 비해 지방군의 번상을 부정하는 이기백은 대부분 중앙군이 개경에 거주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이기백, 1968 위의 책).
군역에 종사하는 군인은 일부 전문적인 직업군인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별거하고 있던 것으로 보았다. 군인의 가족은 대개의 경우 군호에 편입되고 가장이 경군으로 입역한 이후에도 여전히 고장에 잔류하여 농사를 지었다고 하였다. 상식적으로 3만 내지 4만 5천에 달하는 방대한 수의 경군의 가족이(대략 10만으로 추정) 번상을 이유로 개경에 머물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원적구성설에서 보듯이 일반농민층이 번상으로 개경에 거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겠지만, 중앙군의 상층신분인 군반씨족들은 개경에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와 같이 고려 중앙군의 성격을 연구사적 개관과 함께 주요 논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제기한 내용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맺음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고려 중앙군에 대한 연구는 중앙집권력과 군제사 시기구분을 밑바탕에 두고 시작되었던 점에서 부병제설와 군반제설로 이분되는 초기적 성과를 드러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군반제설이 중앙군 전체를 군반씨족으로 보는 중앙집권화의 미성숙단계로 파악하고 있는 점과 부병제설의 경우에서 보듯 농민층에까지 확대된 국가 집권력을 통해서 입증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의 초기부터 이원적구성설과 같은 절충적인 이해가 반영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기본적으로 병농일치의 부병제를 주장한 강진철이 군반씨족의 기원에 대하여 합리성을 부여한 측면은 그러한 점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원적구성설은 연구 초기부터 배태되고 있었고, 그러한 문제의식이 80년에 이르러 하나의 성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와 함께 고려전기 중앙군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다음 몇가지에 대한 문제점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당의 부병제와 구별되는 고려 부병제에 대한 정확한 개념문제를 들 수 있다. 비록 근래의 연구속에서 부병과는 별도로 부위제로 구성된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조선전기를 포함하여 연구되어진 측면이 있어 고려전기에 있어서의 부병의 개념과는 다소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군인전의 지급액에 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도 기존의 성과가 참고는 되지만, 어디까지나 출발 자체가 이원적구성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군의 구성과 차이를 보이는 다른 설과의 종합된 결론을 도출하는데에는 한계로 작용한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에 대한 보완도 중앙군의 성격을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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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05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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