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미술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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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조선시대 미술이 발생한 배경

3.조선시대 미술의 대표적 특징
1) 초기
2) 중기
3) 말기

4 .조선시대 미술의 대표적 작품

5.작가연구-혜원신윤복 의 작품세계

6.결론

본문내용

기법, 인물과 표정의 묘사, 특히 눈. 코. 입. 등의 얼굴 묘사의 기법이 다소 풍속화첩에 비해 뒤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위작임을 증명할만한 충분한 단서는 되지 못한다. 함부로 위작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진품을 입증하는 정확한 고 미술품의 감정은 어려운 일이라는 어느 연구자의 말처럼 감정 자체가 워낙 어렵고, 더군다나 속화첩이 위작이라는 증거도 충분치 못하다. '조선시대엔 선대 대가급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화가에게 중요한 습작과정의 하나였다.'라는 기록은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모방작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일이다.
속화첩 의 10폭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연지춘정 양류춘행 동절야행 노상포옹 춘의 만발 수화동심 월하기녀 사인작난 남녀양심 기방유희
신윤복의 그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위에서 이미 서술하였다. 조선 시대 서울 화단의 이단자 혜원, 그러나 조상들의 풍류와 유흥, 멋과 감성을 이처럼 완벽히 기록적이고 아름다우며 섬세하게 담은그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한 '스캔들' 이라는 제목의 아주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애정, 즉 로맨스를 다룬 내용인데 , 아주 흥미 있게 보았다. 거기에 춘화를 그리는 한량이 나오는데, 색과 풍류를 좋아하는 그가 밤에 몰래 여자를 불러 유희를 즐기는 내용을 그림으로 옮기는 장면이 있어 아주 흥미롭게 보았는데, 논문자료를 수집하던 중 그 영화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혜원신윤복 그림의 유명한 장면들에서 추측하여 재구성한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무척 놀라웠다.
선유도를 토대로 만들어진 양반들이 배를 타고 놀이하는 모습이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춘화의 탄생과정 등 을 사실성 있게 재구성 하고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나니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영화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상과 추론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묘하게 풍속화첩 속의 내용들이 사실감 있게 느껴지고, 잠시나마 그 시대를 여행하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신윤복 의 그림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 그림의 장면 장면을 재현할 만큼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는 우리의 기억 너머로 영원히 소진되어 버린 세시풍속과 당대의 성에 대한 시선들이 매우 흐드러지게 논의되고 있는 것 또한 경시할 수 없다..
가장 조선적인 에로티시즘으로 표현되는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은 고아한 지조나 품격을 간직한 교과서적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러한 세속적인 것들을 혜원 처럼 멋스럽게 그려내고 예술로 승화시켜 담아내는 기량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번 연구를 하게 되면서 한 가지 의문중 하나가 서적이나 연구자료 등이 서양의 미술에 너무 편중되어져 잇고 정작 우리 것 에는 그것에 반해 정보나 서적이 풍족하지 못해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사람이라도 더 우리 것 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준다면 어떠한 다른 미술품 보다도 우리 것이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인데 다른 나라의 유명한 그림들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서 너무나 아쉬웠다. 혜원 을 비롯한 우리 고 미술품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지고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좀더 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이 글을 맺는다.
6.결론
조선 시대 회화는 도화서를 통해 배출된 화원들과 사대부 화가들에 의해 발전하게 되는데 이미 초기부터 구도, 공간 처리, 필묵법, 준법, 수지법 등이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다.
조선 시대 한국적인 회화 전통이 확고하게 성립된 것은 안견, 강희안, 안평대군 등이 크게 활약하였던 세종 때라 생각된다.
임란, 호란을 겪으면서도 안견파 화풍은 이어지고, 절파계화풍이 대두되는 외에 영모와 水墨花鳥, 墨梅, 墨葡萄 등의 분야에서 조선 왕조적인 정취를 풍겨 주는 화풍이 발달했다. 조선 왕조적인 회화 전통이 더욱 뚜렷해진 것은 1700 180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회화가 송 원대 회화의 영향을 바탕으로 한국적 특성을 형성했던 데 반하여, 후기의 회화는 명 청대의 회화를 수용하면서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의식이 발현했던 것이다.
이런 새로운 경향의 회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새로운 회화 기법과 사상의 수용 및 시대적 배경에 연유한 것이다. 영, 정조 연간에 자아의식을 토대로 크게 대두되었던 실학의 발전은 조선 후기의 문화 전반에 걸쳐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산천과 생활상을 소재로 다룬 조선 후기의 회화는 실학의 추이와 매우 유사함을 보여준다.
즉, 조선 후기의 회화는 새로운 시대적 배경 하에서 새로운 경향의 회화 전통을 이루었던 것이니, 그 주요한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조선 중기 이래로 유행했던 절파계 화풍이 쇠퇴하고 대신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 했다. 또한 남종화법을 토대로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가 겸재 정선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생활상과 애정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가 발전 하였으며 다양하고 자유로운 화풍은 18세기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간주된다. 풍속화는 단원김홍도 와 혜원신윤복 등에 의해 일상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전해진다. 이러한 풍속화 에서는 한국적인 성향이 강하고 다양한 화풍과 기법이 나타나므로 중요한 회화적 가치를 지닌다.
중국으로부터 서양화법이 전래되어 어느 정도 수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서양화법은 명암법과 투시도법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청조에서 활약한 서양인 신부들에 의해 소개되기 시작하였는데 오늘날과 달리 한국적인 소재를 명암이나 투시법을 가미하여 제작한 수채화의 일종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같은 새로운 경향은 조선 후기의 회화를 어느 시대보다도 개성이 강하고 한국적인 것으로 돋보이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화법은 비록 널리 유행하지는 못했지만 회화상의 근대화를 예시하는 중요한 것이었다고 믿어진다.
참고문헌
강명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푸른역사, 2001
김용준<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 >열화당, 2001
안휘준<한국의 소상팔경도>문예출판,1988
정병모<한국의 풍속화>한길아트, 2003
허영환<동양미의 탐구>학고재신서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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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9페이지
  • 등록일2003.12.09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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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3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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