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시대 회화미술][백제시대 회화미술][신라시대 회화미술][조선시대 회화미술][회화미술]고구려시대의 회화 미술과 백제시대의 회화 미술 및 신라시대의 회화 미술 그리고 조선시대의 회화 미술에 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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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시대 회화미술][백제시대 회화미술][신라시대 회화미술][조선시대 회화미술][회화미술]고구려시대의 회화 미술과 백제시대의 회화 미술 및 신라시대의 회화 미술 그리고 조선시대의 회화 미술에 관한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고구려시대의 회화 미술
1. 4C-5C 초(평양 천도 전)
2. 5-6C(장수왕)
3. 6C말-7C전반

Ⅱ. 백제시대의 회화 미술
1. 고분
1) 송산리 고분
2) 능산리 고분
2. 공예
1) 화전(畵塼)
2) 뒤꽂이
3) 토제장경호
3. 건축
1) 미륵사지 석탑
2) 정림사지 석탑
3) 황룡사 9층탑
4. 불상
1) 금동미륵 반가사유상
2) 백제관음
5. 회화

Ⅲ. 신라시대의 회화 미술

Ⅳ. 조선시대의 회화 미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다. 조선 시대의 회화는 화풍의 변천에 따라 초기(1392∼약 1550), 중기(약1550∼약 1700), 후기(약 1700∼약 1850), 말기(약 1850∼1910)로 나누어지는데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초기에는 고려시대 회화 및 그 시대에 전래되어 축적되었던 중국 역대의 화풍과 새로이 명으로부터 수용한 화풍 등을 토대로, 중국이나 일본의 회화와는 다른 양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화풍상의 특징은 이 시대작품들의 구도, 공간 개념, 필묵법, 준법 등에서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조의 안견(安堅), 사대부화가 강희안(姜希顔), 그리고 세종대왕의 아들로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며 최대의 중국화 소장자이자 안견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등이 활동하며 서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시기의 그림 중에서도 특히 안견과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들에 한국적인특색이 진하게 배여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 도원을 여행하고 꿈에 본 바를 안견에 명하여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1447년 4월에 제작한 것으로 조선시대 최대의 걸작이다. 조선 초기에는 안견뿐만 아니라 사대부 화가로서 명대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대성한 강희안, 인물화의 최대 거장이었던 최경,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타고난 그림 재주 때문에 화원이 되었던 이상좌, 여성으로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여성적인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하여 다방면의 그림을 그렸던 신사임당, 왕손으로서 천진난만한 강아지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이암,「달마도(達磨圖)」를 그린 김명국 등이 관심을 끈다. 조선 중기의 회화 역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대란과 격렬한 당쟁이 계속되던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한편으로는 안견파 화풍, 절파화풍등 조선 초기 이래의 전통을 나름대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모나 화조화(花鳥畵), 묵죽(墨竹), 묵매(墨梅),묵포도(墨葡萄)등에서 종래에 보기 드물었던 새로운 한국적 특징을발전시켰다.
김제의「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김명국의「설중귀로도(雪中歸路圖)」,이 정의 「묵죽도(墨竹圖)」등은 이 시대 회화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적 화풍이 더욱 뚜렷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영조와 정조의 재위 연간을 전후하여 꽃피웠던 조선 후기의 회화는 정선에 의해 발전된 진경산수(眞景山水),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유행된 풍속화에서 특히 한국적인 특색을 농도 짙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시기에는 남종 문인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 청나라를 통해 서양화법이 전래되는 등 전과는 다른 경향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밖에 이 시대에는 서민들 사이에서 민화가 크게 풍미하였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금강전도」나「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등에서 보듯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는 산천을 새로운 화풍으로 구사하여 그린 것으로 후대의 화원과 민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정선의 제자였던 심사정은 대담한 필선과 고아한 담채를 혼합한 우수한 기법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정선파의 산수화들은 종전의 산수화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또한 우리의 국토에 실재하는 산천을 묘사한 것이기에 특히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서민들의 생활의 전경을 주로 해학적으로 묘사한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한량과 기녀 등 남녀간의 로맨스를 예리하게 파헤친 신윤복은 「미인도」등으로 풍속화에 더욱 한국적인 멋과 특색이 넘쳐흐른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문인화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후기의 토속적인 진경산수나 풍속화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김정희의 제자로서 호남화단의 기초를 다진 소치 허련과 함께 오원 장승업이 배출되어 개성이 강한 화풍을 형성하고 제자들인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등을 통해 현대 화단으로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화풍이 중국적 성향을 강하게 띤 점은 아쉽게 생각된다.
참고문헌
▷ 김원용(1980), 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 김원룡(1980), 한국벽화고분, 일지사.
▷ 김복순(2002), 한국 고대 불교사 연구, 민족사
▷ 김리나(1991), 백제조각의 양식과 변천, 백제의 조각과 미술, 공주대학교박물관
▷ 이형구(1991), 한국고대문화의 기원, 도서출판 까지
▷ 진홍섭(1992), 금동불, 서울 대원출판사
▷ 최병헌(1992), 신라고분연구, 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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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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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88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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