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졸업논문] 김시습의 민본적 문학사상과 민본시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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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본론 -민본적 문학사상과 민본시의 전개
1. 민본적 문학사상 및 그 배경
1) 생애와 문학사상의 형성
2) 민본적 문학인식과 그 배경 3) 민본사상과 그 배경
2. 민본시의 전개 1) 방랑체험과 치자적 민본의식 2) 농경체험과 혁명적 민본의식

III. 결론

본문내용

기운 斗星과 牛星을 능가하네.
한 번 대면 푸른 언덕 짝 찢어지고
두 번 치면 사자들이 어흥 소리치네.
곧게 달리면 앞에서 당할 이 없고
때로 막아도 뒤에서 쫓을 이 없으리.
불평하게 구는 자는 모두 다 벤 뒤
그런 뒤에 물러가서 편안히 지키리라네.
) <快意行>, 『시집』제14권.
양쪽 바위틈에 나서 가지와 물기와 서리와 눈을 밀쳐내는 氣象으로 한 겨울로 비유되는 亂世에 대해 타도를 맹세한다. 얼어붙은 시냇물, 위태한 언덕 타기가 위험하다 해도 한 번 지어먹은 志士의 悲憤慷慨한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나아가 幷州의 칼로 용의 여의주를 빼앗고 일장검으로 하늘을 대신하여 땅을 평정한다. 直走하여 거침없이 세상을 평안치 못하게 하는 者를 모두 베고 물러난다.
이처럼 드높이 자각된 詩的 武家氣象은 그의 무반가계
) 그의 조부와 부친이 무반이었다는 점, 그 역시 무반의 딸과 결혼했다는 점, 그리고 일련의 시 속에서 武家氣象이 간간히 보인다는 점에서 그의 시적 武家氣象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에서 비롯된 詩的 主體의 '英雄的 氣象'이며, 가뭄을 읊어 '반드시 元氣를 상했으니 하늘이 어찌 공소하지 않겠냐' <憫旱>은 民本的 現實認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나 시적 기상은 소나기를 民心의 들끓음으로 비유한 후 이를 하늘의 꾸짖음<驟雨>이라 하여 은근히 民亂을 긍정한 데에서 돌발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平天下的 武家氣象은 論·說을 통해 발전한 革命的 民本意識과 또 다른 現實主義的 革命思想으로서, 詩創作을 통해 성취된 詩的 民本意識의 최고태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는 성동시절 성종정권과 훈구대신들에게 환멸을 느낀 후 스스로 농사를 지어 자적하는 생활을 했으며 민중의 시각으로 당대 현실의 모순을 民本詩로 노래하면서 방랑기와 금오기에 보이던 治者的 民本意識을 탈피해 나갔다. 그 후 관동 일대로 삶의 무대를 바꾼 후 그의 민본의식은 더욱 치열하게 발전해 갔으며, 현실모순에 대한 인식도 일부 탐관오리에 국한하지 않고 그것의 집단적, 구조적 성격까지 포착하였다.
이렇게 진전된 현실인식은 革命的 民本思想의 근간을 이루어 큰 가뭄에 이은 큰 비를 하늘의 징계이자 民心이라 하였다. 특히 <快意行>에서 보여준 平天下的 武家氣象은 不仁猫, 啄木등으로 발전되어 온 타도주체로서 '나'의 기상이란 점에서 조선사회의 신분 및 계급모순에 대한 한 선구적 지식인의 主體的 자각과정과 진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III. 結論
金時習은 조선전기 사회의 체제, 신분, 토지 및 조세모순에 대하여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며 평생을 일관한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朝鮮時代의 지배사상을 崇儒抑佛이라 할 때 僞民思想은 그 근저를 이룬다. 그러나 왕자의 亂에 이은 세조의 쿠데타가 조선사회의 내부모순을 심화시킴에 따라 民本思想의 現實的 主體 역시 유명무실하게 된다. 내부모순의 악화는 양반층의 양극화로 나타나는데, 이는 정치경제에서 특정 권력층의 독점강화 곧 일부 양반층의 몰락 및 자영농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한미한 무반의 자식으로 태어난 金時習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양민처지로 몰락하게 된다. 이에 김시습은 당대 사회의 근본문제로 民本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농민의 입장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민본이념의 現實的 主體로 거듭난다.
김시습의 삶을 일관한 民本思想은 방랑기에는 명분론에 입각한 治者的 民本思想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성동기 농경체험이 밑바탕이 되어 그의 민본사상은 농민의 피폐한 생활을 농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실주의적 민본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민본의식은 문학관에 반영되어 소설과 시, 문장에서 사회적 내용을 중시하고 허식과 형식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하였다. 金時習의 現實主義的 民本文學思想은 『書經』과 『孟子』로 이어지는 혁명적 民本思想을 원류로 하며, 조선후기의 자주적, 現實主義的 民衆文學思想과 그 맥이 닿아있다.
그의 現實主義的 民本文學思想은 詩創作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0여년간의 방랑생활을 통해 民衆生活을 소재로 한 20여편의 시를 지었다. <漁父>, <詠山家苦>등에서 당대 민중생활에 대한 양심적, 치자적 태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그의 민본사상에는 <悲悲>, <熙川興守坐茅亭>의 이상적 치자의식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治者的 民本思想은 금오기를 거치면서 그의 사상과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는데 이에 따라 개인적인 요소와 이상적인 면이 약해지고 민중생활에 밀착된 현실적인 성격이 강화된다.
특히 왕과 정권담당자들에게 현실개혁의 기대를 걸었다. 좌절한 성종초기 이후 그의 시에서 부폐관료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과 현실개혁에 대한 요구가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수락산에 땅을 마련하여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는데 이는 무위도식하는 명문거족과 기생적 존재를 실천적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농경체험은 그의 민본사상이 추상적이며 당위적인 위민사상에서 당대 민중(농민)이야말로 천하의 대본이라는 現實主義的 民本思想으로 진전하게 된 원인이자 결과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和靖節勸農>의 註에 보이는 당대 농민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보면 그가 농사를 단순한 생활의 방편으로 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시에서 괄목한 만한 면은 당대 현실에 대한 부정 및 타도의 주체는 바로 '吾'와 '民'이라고 시사한다는 점이다.
<碩鼠>에서는 不仁猫라는 대리자를 내세워 현실부정 및 탐관오리 타도를 염원하였지만 <啄木>에서는 딱따구리의 소극적인 면을 비판하며, 은근히 '나'의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현실참여 의지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快意行>에서는 지사의 悲憤慷慨에 그치지 않고 일장검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평안히 한다는 武家氣象을 폈다.
이처럼 그의 生涯와 思想, 그리고 시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民本的 性格은 그의 삶과 문학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다. 따라서 金時習 文學에서 민본적 특질을 보다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이러한 民本的 特質을 다른 문인들의 文學과 史的으로 관련시켜 朝鮮時代 民本文學의 現實主義的 特質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는 일이 뒤따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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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0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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