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본론
1. 19세기의 부세 운영
1)군역
2) 환곡
3) 조세금납의 문제
4) 도결제(都結制)의 문제
5)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한 민중수탈 강화
2. 개항 후의 제(諸)문제
1) 화폐 유통 구조
2) 대일 곡물 유출에 따른 농민층의 저항
3) 변혁주체의 문제
III. 결론
II. 본론
1. 19세기의 부세 운영
1)군역
2) 환곡
3) 조세금납의 문제
4) 도결제(都結制)의 문제
5)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한 민중수탈 강화
2. 개항 후의 제(諸)문제
1) 화폐 유통 구조
2) 대일 곡물 유출에 따른 농민층의 저항
3) 변혁주체의 문제
III. 결론
본문내용
봉건 지배 계급에 판매될 수밖에 없었다. 수출 미곡의 대부분이 지주의 소작이나 지방관이 수취한 세미가 대다수였다는 것은 농민적 잉여가 이전된 모습이다. 한편, 조세의 금납화의 진전도 농민이 스스로 곡물을 상품화하게 만들었다.
봉건 지배층은 방곡을 실시하여 그 전후에 발생하는 곡가차이를 이용하는 무곡 행위(곡가의 하락시 매입하였다가 매수후 곡가가 등귀하면 방매하는 것)를 자행함으로써 농민적 잉여의 실현을 저해하기도 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대일 곡물 유출은 곡물의 상품화를 진전시켰고 곡가의 등귀를 유발했으며 농민적 잉여 축적을 저해하였다. 그리하여 임노동자층과 소농민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저항은 반봉건 반제국주의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3) 변혁주체의 문제
16 17세기에 전형적으로 형성된 사림주도의 향촌 지배체제는 18세기 이후에 점차 해체되어갔다. 특히 19세기는 봉건 지배 체제에 대한 다양한 항쟁이 전개되고 있었고, 향촌 사회는 이러한 항쟁의 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항쟁의 다양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림의 향권 상실은 지방 수령권을 가져왔다. 이로써 향촌 사회의 권력구조는 수령권을 중심으로 점차 일원화 되었다. 또 수령권은 왕권 강화를 위한 국가 재정의 확보를 위해 중앙 권력적 측면에서 강화되고 있었다. 결국 강화된 수령권은 향리와 결탁하여 19세기 수탈 구조의 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토호, 요호층이 수탈 구조의 주변을 형성하여 중간 수탈을 강화함으로써 농민의 몰락과 저항을 가져왔다. 그러나 앞에서 본 공동납의 강화와 도결제의 실시는 부세 담당층의 변화를 가져왔다. 요호 부민층과 토호층의 수령권과의 결탁은 끊어지고, 이들은 소빈농층과 더불어 반관투쟁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결합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고 1862년 농민 전쟁을 지나면서 이들의 유대관계는 해체되었다. 결국 조선후기 사회 변혁의 주체는 봉건 지배 계급에 수탈을 당하고 있던 민중세력이었다.
III. 결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갑오 농민 전쟁의 원인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사회 경제적 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은 양천제를 바탕으로 한 신분제의 변동이고, 이 신분제의 변동은 양반층의 자기 도태와 농민층의 분해이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는 조선 후기 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 문제는 곧 봉건 모순으로 귀결되고 그 봉건 모순은 정치 기강의 문란, 경제제도 즉 조세제도 토지제도의 문란으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하에서 봉건 지배 계급은 외세의 압력에 의해 개항을 하게 되고 그 개항은 성숙된 자본주의의 물결이 조선에 밀려들어 자생하고 있던 자본주의의 맹아를 허물어 조선의 경제를 파행적 형태로 몰고갔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모순 구조는 피지배 농민층의 몰락을 가속화시켰고, 나아가 이들을 중심으로 봉건 지배 계급에 대한 항쟁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세기에는 많은 농민 항쟁이 일어났고 이 농민 항쟁의 최종적 귀결점이 갑오 농민 전쟁이었다.
결국 갑오 농민 전쟁은 1862년 이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농민 항쟁이 농민의 의식 성장과 함께 결집되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전환점에서 봉건 모순과 민족 모순을 극복하여 아래로부터 혁명적 방법으로 근대 사회를 수립하려는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참고문헌
강만길,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1989.
노태구 외, {동학혁명의 연구}, 백산서당, 1982.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 연구 I - 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고민}, 역사비평사, 1991.
한우근,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검토], {역사학보} 23호, 1964.
봉건 지배층은 방곡을 실시하여 그 전후에 발생하는 곡가차이를 이용하는 무곡 행위(곡가의 하락시 매입하였다가 매수후 곡가가 등귀하면 방매하는 것)를 자행함으로써 농민적 잉여의 실현을 저해하기도 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대일 곡물 유출은 곡물의 상품화를 진전시켰고 곡가의 등귀를 유발했으며 농민적 잉여 축적을 저해하였다. 그리하여 임노동자층과 소농민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저항은 반봉건 반제국주의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3) 변혁주체의 문제
16 17세기에 전형적으로 형성된 사림주도의 향촌 지배체제는 18세기 이후에 점차 해체되어갔다. 특히 19세기는 봉건 지배 체제에 대한 다양한 항쟁이 전개되고 있었고, 향촌 사회는 이러한 항쟁의 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항쟁의 다양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림의 향권 상실은 지방 수령권을 가져왔다. 이로써 향촌 사회의 권력구조는 수령권을 중심으로 점차 일원화 되었다. 또 수령권은 왕권 강화를 위한 국가 재정의 확보를 위해 중앙 권력적 측면에서 강화되고 있었다. 결국 강화된 수령권은 향리와 결탁하여 19세기 수탈 구조의 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토호, 요호층이 수탈 구조의 주변을 형성하여 중간 수탈을 강화함으로써 농민의 몰락과 저항을 가져왔다. 그러나 앞에서 본 공동납의 강화와 도결제의 실시는 부세 담당층의 변화를 가져왔다. 요호 부민층과 토호층의 수령권과의 결탁은 끊어지고, 이들은 소빈농층과 더불어 반관투쟁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결합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고 1862년 농민 전쟁을 지나면서 이들의 유대관계는 해체되었다. 결국 조선후기 사회 변혁의 주체는 봉건 지배 계급에 수탈을 당하고 있던 민중세력이었다.
III. 결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갑오 농민 전쟁의 원인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사회 경제적 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은 양천제를 바탕으로 한 신분제의 변동이고, 이 신분제의 변동은 양반층의 자기 도태와 농민층의 분해이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는 조선 후기 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 문제는 곧 봉건 모순으로 귀결되고 그 봉건 모순은 정치 기강의 문란, 경제제도 즉 조세제도 토지제도의 문란으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하에서 봉건 지배 계급은 외세의 압력에 의해 개항을 하게 되고 그 개항은 성숙된 자본주의의 물결이 조선에 밀려들어 자생하고 있던 자본주의의 맹아를 허물어 조선의 경제를 파행적 형태로 몰고갔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모순 구조는 피지배 농민층의 몰락을 가속화시켰고, 나아가 이들을 중심으로 봉건 지배 계급에 대한 항쟁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세기에는 많은 농민 항쟁이 일어났고 이 농민 항쟁의 최종적 귀결점이 갑오 농민 전쟁이었다.
결국 갑오 농민 전쟁은 1862년 이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농민 항쟁이 농민의 의식 성장과 함께 결집되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전환점에서 봉건 모순과 민족 모순을 극복하여 아래로부터 혁명적 방법으로 근대 사회를 수립하려는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참고문헌
강만길,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1989.
노태구 외, {동학혁명의 연구}, 백산서당, 1982.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 연구 I - 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고민}, 역사비평사, 1991.
한우근,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검토], {역사학보} 23호, 1964.
추천자료
-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기점에 대한 논의 -근대문학, 현대문학-
- 동학농민운동
- 동학농민운동의 전반에 관하여-대전지역을 중심으로
- 태평천국운동과 동학농민운동의 내용과 특징에 관한 비교 연구(한국과 중국의 현대사 비교)
- [우수평가자료]동학 농민 운동에 관하여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의병운동]한말 의병전쟁의 단계별 전개양상과 그 성격
- [민족문학의 근대적 전환] 요약
- 근대적 개혁의 추진과 그 한계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읽고
- 만해 한용운 시 세계 연구
- 만해 한용운 시 세계 연구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한국민족운동사] <1910~1930년대 농민운동> 1910년대의 농민운동, 1920년대의 농민운동, 193...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