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운동사] <1910~1930년대 농민운동> 1910년대의 농민운동, 1920년대의 농민운동, 1930년대의 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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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민족운동사] <1910~1930년대 농민운동> 1910년대의 농민운동, 1920년대의 농민운동, 1930년대의 농민운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Ⅱ-1 1910년대의 농민운동
  1) 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1) 토지조사사업
   (2) 일본인 농업이민 급증
  2) 농민운동의 전개
   (1) 1919년 3·1운동
 Ⅱ-2 1920년대의 농민운동
  1) 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1) 산미증식계획
   (2) 동양척식주식회사
   (3) 소작쟁의의 급증
   (4) 암태도 소작쟁의
   (5) 북률면 소작쟁의
  2) 농민운동의 전개
   (1) 농민조합의 등장
   (2) 농민조합의 활동
   (3) 농민조합의 특징
 Ⅱ-3 1930년대의 농민운동
  1) 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2) 1930년대 소작쟁의 연도표
  3) 혁명적 농민 조합운동
   (1)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의 전개
   (2) 혁명적 노동조합의 활동

Ⅲ.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위해 활약
→ 같은 해 12월 등지탈환투쟁으로 1000여 명이 검거, 와해
→ 1936년6월 마수호 등은 종래의 경제투쟁과 새로운 정치, 무력투쟁을 동반하여 투쟁
→ 1937년9월 일제의 탄압으로 지하로 잠복
흥원(남)
*1931년5월 혁농의 지도 아래 농민 2000여 명이 세금불납 등의 구호를 걸고 군청에서 시위
*8월~10월 고리대금업자, 금융조합, 계 등에 반대하여 농민조합원의 빚문서 소각
단천
*1930년 7월 단천농민동맹이 지도한 단천군 농민 3000여명의 투쟁
영흥
*1930년 10월~1934년까지 3차에 걸쳤음
문천
*5차에 걸쳤음
성진
평안도
강서
*강서적화사건 : 1935년 농촌진흥운동을 표방하면서 헉농운동 전개. 차명철, 김용규 등이 이끔
개천
*개천혁농 : 1934년7월~35년5월 현준혁 등이 조직
강원도
*1929년 가을 안광천은 의열단의 김원봉과 제휴하여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을 조직,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세워 활동가 양성
*1930년 이진일, 이강명 등은 ML계의 ‘재건동맹’, ‘재건준비위원회’등과 활동하나 ML계의 중요인물들이 대거 검거되고 잔여인물과의 연락의 어려움
→ ‘조선공산당공작강릉위원회’ 결성.
→ 1935년 이강명 등 94명 검거
양양
*종래의 농민조합을 유지하면서 비합법 혁농운동을 전개
→ 1932년 김병원 등 300여 명이 검거
*1931년5월 삼척청년동맹 해소
→ 1931년 농번기의 도로부역에 반대하여 1000여 명의 면민을 동원하여 면사무소 습격 등
→ 1934년 100여 명이 피검
경기도
양평
*1931년 청년단체이던 1929년이던 양평청년동맹이 해소
→ 이성출(비합법 조직인 혁농 건설 이전에 합법적인 농민계를 조직하여 대중을 획득하고 혁농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움) vs 변흥대(즉각적 혁농건설) 대립
→ 1932년 여주 측에서 이성출의 이론을 받아들여서 농민계가
양평에서는 혁농이 만들어짐
충청도
영동
최판홍 등이 적우동맹(赤友同盟)을 결성하여 합법단체인 역등농민조합을 혁농화하려고 함.
→ 1932년 1월 검거됨.
→ 1933년 12월 아산혁농 조직, 이듬해 검거
전라도(전북:윽구, 정읍, 부안 전남:광주, 나주, 여수 등)
권대형 등의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가 혁농을 건설
경상도
경북지방
*1931년3월 당재건운동의 일환으로 ‘안동꼼그룹’이 조직
→ 1932년 영주, 1933년 봉화에 적농재건위원회가 만들어짐
김해
*김해농조는 김해, 창원에 걸쳐있던 사코마농장의 대규모 소작쟁의를 조직적으로 지도했음
(2) 혁명적 노동조합의 활동 『한국독립운동사 8』, 국사편찬위원회, 1990, 372~378쪽
일반적 소작쟁의
혁명적 농민운동
소작료 감면
소작권 이동방지
마름의 횡포 시정
지세의 지주부담
토지는 일하는
농민에게로!
납세거부
일본제국주의타도
항일무장투쟁지지
-혁명적 농민조합의 성격 및 특징
① 혁명적 농조는 대중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다.(이는 농조의 높은 조직률에서 확인할 수 있음.)→조직의 계급적 성격이 뚜렷해짐. 빈농위주의 조직노선
② 혁명적 농조의 투쟁전략은 이전의 합법투쟁에 기반한 경제투쟁 위주에서 합법투쟁과 비합법투쟁의 결합,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연계로 바뀌었다.
③ 농민들의 계급적 입장에 대한 각성을 높이고 계급적 단결의 사상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문화운동’을 전개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농민들에게 반제계급의식의 자각을 심화시킴
④ 반 봉건유제에 대한 투쟁을 활발하게 진행함.
Ⅲ. 맺음말
우리나라는 불과 몇 십년 전 까지만 해도 농업 국가였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농업에 대하여 너무 소홀히 대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농민운동을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의 조상들은 생계이자 생활수단이자 평생 직업인 농업을 정말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는데, 요즘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농민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농사는 힘없는 노인이나, 배우지 못한 농촌 사람들이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최근 한미 FTA가 체결되면서 농업에 대한 개방 물결 때문에 농민들이 살기 힘들어 지고 있다. 역사는 계속 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에서 배울 점을 찾자는 취지가 있는 것인데, 과거에 농민들이 소중하게 자신의 일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 농민들의 삶을 지켜 줘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식민지 국가로써 일본인과의 싸움을 벌였다면, 지금은 시장이라는 더 큰 상대와 싸워야 하는 농민들을 응원해 줘야만 할 것 이다. 우리 민족 운동사에 있어 농민은 주체적인 독립 운동가였으며, 자신의 이익을 지켜내려는 투쟁가였다. 일제 강점기의 농민들이야 말로 진심으로 자신이 살아갈 나라의 주권을 걱정 할 줄 알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줄 아는 그 시대의 진취적인 인간상은 아니었을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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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웅진출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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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호, 『한민족독립운동사 8』, 국사편찬위원회, 1990
유세희, 「한국농민운동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8
조선총독부 경무국,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 거름
이준식,「1930년대 초 함경도 지방의 무장농민투쟁」,『역사비평 1989년 봄호(통권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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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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