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金弘道,자는 사능,호는 단원, 단구, 서호)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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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특징적인 수묘법등 역시 김홍도의 능숙한 수묵담채 구사와 필치이다.
이와같이 김홍도는 정선류의 진경산수화를 참작하고 추종하여 자기양식을 분명히 하였다. 그가 겸제 화풍을 바탕으로 하였으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정립시킬 수 있었던 것은 겸제의 의도적인 대상 변형을 탈피하여 완벽한 표현력으로 보다 현장에서 느낀 실체감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데서 찾아진다. 그리고 평범한 풍경에 눈을 돌려 진경에서의 사실적 개념을 대성하였다. 그것은 다음의 '사경산수' 라는 형식으로 창출 되었다.
(3) 사경산수
김홍도의 진경산수는 독창적인 사생품의 현장감각을 바탕으로 자기양식의 사경산수를 발전시킨다. 즉 그는 당대 명승고적 중심의 진경산수 경향을 뛰어넘어 흔히 볼 수 있는 자신의 생활주변에서 산수화의 소재를 만난 것이다. 그러한 사경산수의 출발은 풍속도의 배경이나 사회등의 모임을 기념해서 그린 기록화적 성격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경을 모체로 한 산수표현에서 부터 연유한 것이다.
그 예로 40대 이전의, 년대가 밝혀진 작품인 1778년 강희언의 담졸헌에서 그린 「풍속도정」과 1784년에 그린 「단원도」를 들 수 있다. 강세황의 「화평도」에 곁들여진 「풍속도정」에는 평범한 농촌 들녘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김홍도의 개성이 엿보이기는 하나 활달하지 못한 사생풍의 묘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보다 완숙해진 필정의 「단원도」는 강희언, 창해용,정란과 더불어 그린 작품으로 1781년에 가졌던 전율회라는 아회를 추억해서 그린 작품으로 40대 이후 김홍도의 신변과 교우관계, 화풍의 변모를 밝혀주는 기념비적 위치에 놓여있다. 즉 화원으로 종방 벼슬에 오르고 단원이라는 아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화풍으로도 남종화법의 소화가 눈에 띄게 진전되어 있다. 그리고 초가 옆의 연못과 괴명,파초,오곽과 바위,담장,수목 표현은 인왕산곡이나 사울 근교에 있던 자기집 주변 풍경의 충실한 묘사를 보여준다. 특히 이런 양식의 그림은 마당의 학,담장밖의 버드나무와 마부의 모습을 통해서 당시 서원아집도류에서` 번안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보다 더욱 완숙해진 필치와 사경산수의 바탕은 역시 40대 후반 ∼ 50대에 나타난다. 그 예로 1791년, 천수경의 속석원시 사회를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 1801년에 그린 「삼공불환도」, 1804년에 그린 「세련계도, 앞의 것들과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는 「서성우렵도」, 「간정품국도」등 기엽화들이 유존한다.
올렸다 ..^^
김홍도의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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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04.17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6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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