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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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종교 다원주의와 한국 기독교
1. 종교 다원주의의 형성 과정
2. 종교다원주의의 제 이론
3. 종교다원주의 행태의 사회학적-신학적 의의

III. 키에르케고어의 종교 그리고 기독교
1. 인생의 제 단계’와 ‘종교적 실존’으로서의 인간
2. 진리의 성격, 주관인가? 객관인가?
3. 두 개의 다른 문법, 존재론모델-구원론모델
4. 나가면서

본문내용

나님은 스스로 천한 자가 되고 종의 모습을 하며, 인간을 위하여 고통을 겪고 죽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간이 걸려 넘어짐의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은 그도 어쩔 수 없는,(그런 의미에서 슬픔을 담고 있는) " 그 무엇이다. 때로 이같은 '신-인'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걸림 돌'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노력들은 '가현설적' 주장이나 '합리주의적 주장'등으로 나타난다. 가현설의 주장에서 "그리스도는 현실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詩)가 되거나, 또한 합리주의적으로 어떤 신성을 요구하지도 않고 현실성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역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 속에는 의례 모든 기독교적인 것에 대한 부정, 즉 죄라든가 죄의 용서에 대한 부정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3. 두 개의 다른 문법, 존재론모델-구원론모델
전술한 종교다원주의의 메시지의 기본 틀은 '그리스도중심적 포용주의'에서나 '신 중심적 보편주의'에서나 모두 이른바 '대화와 관용'을 중요한 덕목으로 전제한다. 즉, 자기 중심적 (혹 주관적 ) 신앙 태도로 인해 야기되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불식하고 상호 이해의 지평, 더 나아가 제 3의 인식으로의 '지평융합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같은 덕목의 빛을 기준으로 비추어 볼 때,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의 구원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의 태도는 지양되어야할 그 무엇이다. 칼 라너에게 있어서 '기독교 이외의 세계 고등 종교에도 나름대로의 하나님에 대한 자연 지식이 내포 되어있는 가능성'에 대한 개방적 자세가 타종교의 경험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와 용인의 관용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존 힉의 '하나의 신적 본질에 대한 다양한 종교적 표상,' 파니카의 '기독교의 교리적 체계에 매인 신 너머의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진리의 실체, 심지어 그의 경험의 틀을 벗어나 존재하는 어떤 실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스미스의 '귀결적 본성을 함께 지닌 신의 본질로 인해 단극적인 신이 아닌 양극적 신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구현하면서 지속적인 과정 안에서 적극적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신'등을 지향하는 관점에는 '제 3의 신 인식의 가능성 모색' 이라는 '배타적, 주관적, 자기 경험적' 신 인식에 대한 부적절성을 그 핵심 주제로 삼는다.
이상의 종교다원주의에서의 주장을 '세계의 여타 모든 종교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을 담는 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종교가 구원(진리)을 독점 (소유)함으로써 이로 인해 여타 종교를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은 용인될 수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이러한 해석의 틀은 키에르케고어에게 있어서 그리 새삼스럽게 여겨지지 않으리라. 현대인들이 대부분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문화적 전통을 통하여 자신들의 신앙(진리)로 접근하는 현실은 어쩌면 '존재론적 종교 다양성(Religious Plurality)'의 측면에서 당연한 삶의 행태 (실존)로 수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어에 있어서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실존'의 존재론적 경험의 틀은 결코 어느 특정한 종교적 전통에 속해 있는 인간에게 국한될 수 없다. 인간의 실존적 경험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기독교적 진리 체계와 여타 세계 종교들의 진리에 대한 경험은 상호 개방적 관계로 얽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여타 모든 종교들의 구원관과 특정한 종교 (기독교)의 구원관은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어떠한 동질성을 소유하고 있기에 (혹은 기독교 밖의 여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기에)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기독교의 주장은 불식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구원론적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주장에 대하여 키에르케고어는 낯설다. 키에르케고어에게 있어서 기독교 체계의 독특성은 (구원의 배타성)은 어느 '신 너머의 신(존 힉)' 혹은 '되어져가는 신(파니카)'과 같은 추상적, 관념적 신이 아닌, 인격으로 역사 안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즉 스스로 종의 형체를 가져 인간이 되신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만남에 근거한다. 이같은 신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만나는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걸림돌'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걸림돌의 비껴감의 형태로서 때로 인격적, 역사적 '신-인'(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가현설(docetism)'과 '합리주의(rationalism)'로서의 '신 너머의 신' 혹 '되어져 가는 신' 이라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대안이 결코 '역설(paradox)'로서의 '신-인'이라는 유일회적 긴장성을 비껴갈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는 없다. 여전히 인간은 신 앞에서 단독자로서 이 역설을 끌어 안고 신앙으로 '비약'하든지, 아니면 이 걸림돌로 말미암아 파산을 경험하는 양단적 기로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같은 점에서 기독교의 소위 '배타성'은 단지 '서구 교회의 산물로서' 배척되어야할 그 무엇이 아니다. '배타성' 속에 존재하는 긴장성을 양보하여 손쉬운 '포용성'을 나아가야할 그 무엇이 아닌, 혹은 '교회가 포기하고 타파하여야할 우상'이 아닌, 오히려 더욱 생생한 '역설의 배타성'으로 더욱 분명히 제시되어야 할 그 무엇인 것이다.
- 나가면서
우리는 아직도 글의 초반부에서 제시한 2번째 질문 즉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수준에서 이 행태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일이 그리 필자의 게으름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닐 수 있으리라. 키에르케고어가 기독교 세계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나선 사실은 어느 누가 말하는 것과 같이 키에르케고어가 사회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무색하게 한다. 참 기독교의 진리가 왜곡되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의 말년의 페이토스를 장식케하는 주제였다면, 이제 그는 우리의 주제와 연결하여 ' 참 기독교 진리의 수호'라는 입장에서 어떠한 수준에서 이 행태에 개입했을지에 대한 예상을 어렵사리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는 결코, '잠잠한' 그리고 '자신의 방에 파 뭍혀 안연함'을 노래하는 전형적 '선비형 학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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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19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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