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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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도깨비란?

■ 도깨비란 단어의 어원과 의미

■ 일본의 오니

■ 도깨비의 특징들

■ 도깨비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하여

■ 도깨비에 관한 진실과 이야기들

■ 도깨비가 신으로 나타나는 신앙

■ 도깨비의 세계를 올바르게 하기 위하여

■ 도깨비 문양

■ 붉은 악마와 치우천왕

본문내용

암.수막새기와는 물론 사래막새기와, 내림막새기와 등 전무후무하게 나타난다. 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사천왕 상전의 사천왕 밑의 도깨비 형상도 역시 고구려 반원와당의 형식과 비슷하다. 수막새기와의 도깨비 문양은 얼굴을 위주로 표현하는 형식인데 때로는 연화, 귀갑, 연주문 등이 테두리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고 암막새기와는 출토예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대개 융기선으로 표현되어 고구려의 귀면와 형식과 유사하다. 귀면문이 새겨진 서까래기와는 출토예가 없지만 내림새막새기와는 많은데, 용면을 나타낸 도깨비 얼굴이 힘이 넘치고 있다. 특히 용각 또는 녹각을 표현하였고 혀를 내민 형상에 앞발이 묘사된 것도 있다. 테두리에는 화문, 당초 문이 장식되는 등 화려하게 꾸며졌고 간혹 녹유한 것도 발견되는 등 매우 발전된 양상을 띠고 있고 불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따라서 통일 신라기의 건축이 얼마만큼 화려하고 장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신라시대 전통적인 양식은 고려시대로 이어져서 고려초에는 귀면와가 여전히 성행된다. 그러나 문양 자체가 많이 도식화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고려시대의 문양은 전반적으로 선보다는 면이 강조되고 귀면의 표현에서도 입술이 두껍고 혀를 내밀고 있는 형상을 강조시키고 공간구성이 안정감을 잃고 있다. 암막새기와에서는 마치 가면을 연상케하는데, 입이 작아지고 수염이 형식적으로 표현되고 문양화되는 등 전면적으로 치졸하고 섬양해지고 있다. 또 고려시대 후기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수막새기와와 암막새기와에 표현된 이른바 해무리무늬라 하는 반구형 돌기만 표현된 것이 혹 귀면와의 눈만 암시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망와에서는 망치 장승의 얼굴 모습을 닮거나 가면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특징을 이루고 있는데, 예컨데 고려시대의 나무탈이라 전하는 안동 하외가면과 모습이 너무 흡사한 출토지를 알 수 없는 고려시대 망와가 있어서 흥미롭다.
.조선
조선시대에 와서는 통일신라기의 정형을 크게 벗어나서 얼굴 모습도 달라지고 뿔모양이나 소용돌이 모양의 수염도 없어지고 그 날카로운 이빨도 볼 수 없다.
조선조 때의 도깨비는 순박한 우리 민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귀면들은 결코 무섭거나 위협적이라기 보다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우며 순박한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어느 것은 봉산탈 같기도 하고 송파산대탈 같기도 하며 또는 장승을 닮거나 제주도 하루방을 닮은 것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도깨비 역시 막새기와나 전돌, 창덕궁 석교의 잠자리무사석, 경복궁 자경전 담장 협문 위벽전에 장식된 도깨비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자경전 담장 협문의 도깨비의 예를 보면 사자의 머리처럼 복술복술한 머리털과 우모, 쫑긋한 귀, 윗입술 밑으로 날카롭게 뻗은 송곳니, 눈꼬리를 치뜨고 부라린 눈, 이마에 당초모양의 주름살 등은 전체 적으로 고래의 전통적인 모습을 따르고 있으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익살스러움이 엿보인다. 조선시대 내림새기와의 도깨비는 더욱 민예적 취향이 짙게 나타난다. 아주 단순한 손질로 표현한 눈, 코, 입, 제멋 대로 묘사된 이빨, 수염 등은 바가지탈과 일맥상통한다. 어느 망와에는 양쪽 볼에 톱니 모양의 장식을 가해서 수염 을 표현하였고, 두 눈은 쭉 째져서 치켜 올린 형상으로 특별한 기교도 없이 무심하게 빚어 만든 순박한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붉은 악마와 치우천왕
치우천왕(蚩尤天王)은 한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한 배달국(倍達國)의 14대 천왕으로서,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편에 의하면 B.C. 2707년에 즉위하여 109년간 나라를 통치했던 왕이라고 한다. 그는 신처럼 용맹이 뛰어났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키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치우천왕은 전쟁의 신·군신으로서 그 자체로 승리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특히 치우의 능에서 붉은연기 같은 것이 깃발처럼 휘날리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조짐으로 믿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도깨비 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치우천왕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고구려, 백제, 신라를 비롯한 역대 왕릉 등에 조각되어있던 이유는 그가 국가를 수호하는 군신이었기 때문이다.
. <붉은 악마>책에서
붉은 악마의 심벌은 치우천왕입니다.
한국 축구에 활력을 불어넣을 응원팀의 상징을 치우천왕에게서 빌려온 젊은이들의 기개와 재치에 박수를 보냅니다.
치우천왕은 단군시대 이전 한국의 고대국가인 배달국(밝은 나라)의 제 14대 왕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대 역사서 <한단고기>, 삼성기편에 따르면, 치우천왕은 단군왕검보다 3∼4백 년 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중국의 옛 문헌들은 \'동이족의 수장\', \'구려의 임금\' 등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보다 먼저 선진문물과 철기를 도입하여 나라를 발전시켰고 광개토 대왕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경영했으며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인물입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탓에 중국인들은 그를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였고, 뛰어난 전술과 기술력으로 전쟁에서 지지 않는 그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중국과 한국의 많은 역대 왕조가 치우천왕을 국가의 수호신으로 추앙했습니다. 민간에서는 씨름, 장승, 도깨비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삿된 것을 쫓아내는 벽사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치우의 깃발을 휘두르면 그 영험으로 반드시 전쟁에서 이긴다는 전설은 붉은악마에게 그대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참고 서적과 웹 페이지>
김종대, \'한국의 도깨비 연구\'
김열규, \'한국인 우리들은 누구인가\'
이승헌, 깨달음과 희망의 \'붉은 악마\'
http://dalgona.gazio.com/
http://myhome.nate.com/ekeeok/
http://www.minwha.co.kr/
http://my.dreamwiz.com/khceng/
http://myhome.shinbiro.com
시대별 도깨비 문양 : http://net-in.co.kr/A4/main.htm
http://user.chollian.net/~hjy8/index3.htm
다음 카페 \"치우사랑\" : http://cafe.daum.net/CH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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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16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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