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의 영화의 분석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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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올드보이 의 영화의 분석과 비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올드보이>란 영화의 서평

2. <올드보이>영화줄거리

3.<올드보이> Review

4.<올드보이>의 구약적 응징론에 대한 심영섭의 신약적 비판론
(심영섭/영화평론가)
1) 스타일 포화의 이유
2)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서
3) 잔인한 신, 박찬욱의 재림
4) ‘난 누구냐?’ 묻지 못하는 이유
5) 실패가 숙명이라고 믿는 감독
6) 혀를 자른다고 목소리가 잘려지던가?

5. <올드보이> [칸 2004] “<올드보이>는 뜨겁고 습한 영화” [2004-05-17]

6.<올드보이>[칸 2004] <올드보이>, 현지서 엇갈린 평가 [2004-05-17]

7.<올드보이> 칸영화제 <올드보이> 최민식 호평 [2004-05-15]

8.<올드보이>의 영화의 느낌...

참고목록

본문내용

심이 반영됐다. 시사회가 열린 상영관은 1천석 규모의 살레 드 뷔시(Salle de bussy) 극장으로 전석이 가득 찼으며 일부는 자리를 구하지 못해 계단에 앉거나 서서 영화를 감상하기도 했다.
관객들은 영화 초반 주인공 오대수가 감금 생활 중에 독백을 계속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영화 끝에 자막이 올라가는 30여초 동안에는 짧지 않은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또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날 시사회는 상영 도중 박수가 쏟아진 경우는 없는 등 비교적 조용히 진행됐다는 게 현지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특히 일부 관객들은 대부분 영화의 기술적인 면은 인정을 하면서도 근친상간이라는 반전이나 일부 잔인한 장면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제 비평가 주간 프로그래머인 클레어 클로조씨는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며 아름답게 편집된 영화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새디즘과 마조히즘을 싫어하기 때문에영화를 보는 데 편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그리스 아테네 영화제의 프로그래머 레프테리스 아다미디스씨는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 극적 구성은 떨어지지만 스타일 면에서 앞선다"며 자신의 영화제에 이 영화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올드보이>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됐던 남자 '대수'와 그를 가둔 남자 '우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개봉해 전국 330만명을 동원했다.
영화는 당초 비경쟁 공식초청 부문에서 상영될 예정이었지만 공식 발표일을 며칠 안 남기고 경쟁부문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에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하는 등 현지 영화팬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8.<올드보이>의 영화의 느낌...
중요한 것은 행동의 동기다. 저 녀석이 왜 이런 사이코 짓을 하는지 그 원인을 캐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이란 게 매우 하찮고 시시하고 말도 안되는 것이어서 캐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그러니까 사이코지...)
하지만, 세상에 어디 쉽기만 한 일이 있던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얼마나 약하고 추악한 존재던가.
<올드보이>에서 우진은 긴 세월에 걸쳐 복수를 행한다. 복수의 대상은 오대수.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놈이래서 이름이 오대수인 오대수. 그의 가벼운 입놀림으로 인해 우진의 누나가 자살?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 우진과 그의 누이는 서로 사랑하던 사이다(마치 전래동화의 설정 같다. 그들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진은 대수 때문에 누이와 연인을 동시에 잃은 셈이다.
십 수년의 세월이 흘러, 우진이나 대수 모두 중년의 나이가 되고, 당시의 사건은 아주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무렵, 우진은 대수를 납치하여 15년 간 독방에 가둔다. 대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군만두와 TV를 벗삼아 15년을 보낸다. 15년 동안이나.
왜 하필 15년인가? 여기에 영화의 반전이 숨어있다. 영화의 말미에 우진을 통해 왜 15년을 감금 기간으로 설정했는지 그 진정한 의도가 드러난다. 우진은 자신이 겪었던 근친상간의 경험을 대수에게도 경험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대수는 우진이 자신을 가둔 까닭을 알아냈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서 말한다. "넌 누나와 잤어." 그러나, 우진은 비웃으며 말한다. "질문이 틀렸어요. 왜 가뒀느냐가 아니라, 왜 15년 동안 가뒀느냐."
이제 미도가 누구인지를 알아버린 대수는 절망에 빠져 절규하지만 우진의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미도에게 대수가 누구인지 밝혀버림으로써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려는 우진. 여기서 대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우진의 신발을 개처럼 핥는가 하면, 급기야 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 여긴 자신의 혀를 잘라버린다. 이 모든 복수를 행하고 난 우진은 잠시 누나가 죽던 날을 회상하는가 싶더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권총을 머리에 대고는 방아쇠를 당긴다.
15년 간의 감금으로도 모자라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하고, 또 그것을 당사자에게 알게 함으로써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우진.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한 원인, 심리적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아니, 우진은 과연 복수에 성공하기나 한 것인가?
중요한 것은 우진이 복수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받은 심리적 외상을 (어떤 식으로든) 봉합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복수의 결과 뿐 아니라 과정까지도 관장하고 있으며, 오대수는 우진의 시나리오 그대로 행동한다. 관객은 너무도 처절한 장면(혀를 자르는)을 보고 난 직후인지라 우진의 자살에 별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의 반전이 숨어있다.
우진의 복수는 오대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울고 불고 애원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의도는 처음부터 명백하다. 대수를 근친상간의 관계로 밀어넣는 것. 15년이라는 감금 기간이나, 최면술 등 모든 사소한 장치 하나하나가 그 목적을 위해 조율되어 있었다. 영화의 끝머리에서 대수는 딸을 계속 사랑하고자 한다. 자신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지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근친상간이 주는 충격을 뛰어넘어 그 관계를 자신의 의지로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란 경구의 의미를 스스로 실천하고자 한 것일까?
우진이 의도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비극으로 끝난 자신의 근친상간을 대수를 통해 지속시키려는 게 그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혀까지 잘라내는 대수의 모습에서 우진은 자신의 의도가 대수의 내면에서 훌륭히 실현되었음을 본 게 아닐까?
그렇다, 이 영화의 엔딩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사회적 윤리가 근본적으로 뒤집어 지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한 것이다(생각해 보면 박찬욱 감독은 항상 금기를 건드리고 금기에 대한 생각을 급진적으로 뒤집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결말을 해피하다고 여긴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 만사장땡인 우리네의 진정한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참고목록
1.씨네21의 <올드보이>기사자료
2.http://www.oldboy2003.co.kr/
3.칸영화제 공식홈페이지 http://www.festival-cannes.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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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21
  • 저작시기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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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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