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중세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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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녀사냥-중세의 광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유럽마술의 기원과 형성과정
(1) 고대의 마술
(2) 마법에서 마술로
2. 마녀사냥의 광기
(1) 마녀사냥의 시작과 르네상스


(2) 광기의 정점과 종교개혁
(3) 영국과 미국에서의 마술
(4)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그리고
마녀사냥의 쇠퇴
3. 마술과 사회

Ⅲ. 결론

본문내용

성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만혼이 늘었을 뿐 아니라 평생 결혼하지 않는 여성의 수도 증가했다. 종교개혁은 수도원을 해산시켰으며 가톨릭이 우세한 지역에서도 수도원에 들어가는 여성의 수가 전과 같지 않았다. 또한 미텔퍼트의 추정대로 여성의 20퍼센트가 미혼이고 10∼20퍼센트가 과부라면, 여성의 약 40퍼센트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남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갔다는 것이 된다. 게르만의 전통의 사회
게르만의 풍습과 전통에 따르면 노예, 아이, 가축, 물건, 여성은 동일한 사물로 취급되었다. 아버지나 남편은 여자의 보호권자로서 여성을 노예나 가축, 또는 물건이나 재산처럼 매각하고 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여성은 죽을 때까지 보호권자에게 종속되며, 그가 죽었을 때 자기의 아들에게 유산처럼 대물림되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법적인 권리도 배제되어있었다. 오성근, 『마녀사냥의 역사』(2000, 미크로)
속에서 부친, 남편 등과 같은 가부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무력했으며, 불공정에 대해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보복할 수단이 없었다.
또한 남성의 재혼비율이 여성보다 높아서 대체로 과부들의 수가 남자들이나 홀아비들보다 많았고, 오늘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출산 중에 죽는 경우만 없었다면 당시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수명이 길었다. 전염병이 유행했을 때도 여성들 쪽이 훨씬 더 많이 살아 남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적어도 600퍼센트나 높은 회복을 보인 지역도 있었다.
기독교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기독교는 남녀가 영적으로 평등함을 명백히 했지만, 사도 바울로나 그 밖의 막대한 영향을 가진 교부들 대다수가 이 교리를 퇴색시켜 버린 결과 여성은 남성의 유혹자가 되었다. 남성은 국가, 종교, 학문의 바퀴를 굴리는 자이고, 남성의 혼은 이론적으로는 어찌되었든 실질적으로는 여성의 혼보다 귀중하건만 그런 남성을 여성들이 유혹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성혐오사상은 대체로 기독교 신학과 그 전통 속에서 일정한 균형을 유지했지만, 때로는 『마녀의 망치』에서와 같이 노골적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여자란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되었지만, 우애의 적, 피할 수 없는 형벌, 필요악, 자연의 유혹, 욕망을 부추기는 재앙덩어리, 가정 내의 위험물, 쾌락을 주는 유해물, 자연의 악 이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마녀의 망치』中에서
종교개혁은 구원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사도, 교부시대의 원시 기독교로 회귀함으로써 오히려 가톨릭 교회 이상으로 여성에 대한 불신을 강조했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이상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문학의 고안물이고 귀족에게만 적용되기는 하였지만-궁정풍의 연애와 성모마리아의 숭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원리가 과장될 때 반드시 그림자나 거울에 반사된 상과 같이 반대 원리가 생겨나기 마련인 것처럼, 궁정풍 연애의 고귀한 신분의 여성과 성처녀 성모마리아 숭배가 여성원리의 선과 순결을 과장한 데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추한 노파는 그에 대한 그림자 상이었다. 그 결과, 추한 노파의 이미지는 마녀의 이미지가 되었고, 마녀는 사탄의 지배하에 놓인, 완전히 사악하고 타락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마녀사냥의 책임이 비단 엘리트계층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엘리트와 대중 모두의 요구에 의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마녀를 단죄하는 토대가 되었던 악마론은 엘리트에 의해서 정립되고 아래로 주입되어 갔던 것이지만, 이 같은 악마론을 받아들일 만큼 대중들 사이에는 충분한 긴장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혼란기의 유럽공동체들이 직면하고 있던 많은 어려움 들로 인하여 대중들 사이에는 갈등이 심화되었고 그러한 갈등과 긴장을 투영하는 단순한 고발들이 재판과정에서 악마론에 의해 포장된다할지라도 재판과정에서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갈등이 거의 없었고, 나아가 마녀박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마녀사냥 자체가 엘리트와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갈등 해소적 출구로, 상위문화와 하위문화가 호혜적 영향하에 창출하는 전근대 역사현상의 대표적 예라는 해석이다.
Klaits -설혜심,「16, 17세기 마녀사냥을 통해 본 역사학의 확대」『역사학보』(1997) p. 203
Ⅲ. 결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을 그리고, 팔레스트리나가 작곡을 하고, 세익스피어가 글을 쓰던 시대에, 사회 한편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사회의 광기로 수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이 광기의 정확한 동인(動因), 경과, 그리고 소멸의 이유를 파악하여 그 명쾌한 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마녀사냥이 그리스도교 이외의 어떤 사상과 움직임도 용납할 수 없었던 중세사회에서 대다수 민중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마녀라는 이름의 희생양을 통해 대리 해소하는 동시에, 마녀를 따돌린 '우리 사회'는 안전하다는 만족감과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사회적 배제·통합기제로 사용되었다는 답을 유출해 낼 수는 있었다. 즉, 종교적 절대권력의 지배에서 인간이성의 회복시대로 넘어가는 변혁기에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의 발악이 광기로 나타나 엄청난 희생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배제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소들과 함께 이 사건을 읽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중세의 몰락과 근대의 시작이라는 그 특수하고 혼란한 시대의 변화이다.
<참고문헌>
제프리 버튼 러셀 저, 김은주 역, 『마녀의 문화사』(다빈치, 2001)
장 미셸 샬망 저, 은위영 역, 『사탄과 약혼한 마녀』(시공디스커버리 총서, 1995)
오성근 저, 『마녀사냥의 역사』(2000, 미크로)
모리시마 쓰네오 저, 조성숙 역, 『마녀사냥』(현민시스템, 1997)
페르디난트 자입트 저, 차용구 역, 『중세의 빛과 그림자』(까치, 2000)
조르주 뒤비 저, 최애리 역, 『중세의 결혼 : 기사, 여성, 성직자』(새물결, 1999)
설혜심 저, 「16, 17세기 마녀사냥을 통해 본 역사학의 확대」『역사학보』(1997, 제155호)
조한욱 저, 「마녀사냥과 마법」『역사비평』(1994, 겨울호)
김난숙 저, 「마녀사냥에 대한 민중문화사적 접근」(서강대학교 대학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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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12
  • 저작시기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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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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