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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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역사와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원시 시대의 사상

2)삼국 시대의 한국 사상

3)남북국 시대의 한국 사상

4)신라 하대의 한국 사상

5)고려 시대의 한국 사상

6)조선 시대의 한국 사상

7)조선 후기 시대의 한국 사상

8)근대 이후의 한국 사상

본문내용

최제우는 당시 기층민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여러 사상들을 정리한 후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하였다. 첫째는 기일원론적 우주관 속에서 하날님을 바로 자기와 일체화시킨 인간관 제시이다. 이런 기론(氣論)에 바탕한 인간관은 그 지극한 기를 자신의 정성에 따라 내 몸속에 영원히 모실 수 있는(侍天主), 그리하여 하날님과 하나가 되는 이른바 인내천(人乃天)사상의 초기의 모습이었다. 둘째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조화 속에서 천도운행에 따른 선후천 순환운동론 확립이다. 무위이화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그리하여 그 조화가 이미 정해져 있는 부분이다(造化定).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부자와 가난한 자가 후천에서는 역전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대 골격은 따로 떨어져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동학의 21자 주문 속에 통일적으로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학사상은 당시 지배체제를 옹호하고 있던 성리학과는 달리 인간생활 중심의 질서를 내세움으로써 지배구조의 전도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최제우의 한계는 그가 기층민의 염원을 반영하고 그들의 고통을 대변하면서도 이러한 종교적 입장에 안주하여 현실의 가파른 모순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최제우가 선택한 것은 급박한 현실에 대한 우회적 대응론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회적인 방법론을 가지는 동학까지도 당시 조선 봉건체제 속에서는 불온한 것이었고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최제우는 결국 1864년 3월 10일 사도난정(邪道亂正)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이런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서 농민들은 구체적으로 탐학관리의 축출에서 출발하여, 외국인의 상행위를 금지하는 것과, 부당한 신분차별의 철폐와 지주 토호들의 무단을 제거하는 데 투쟁목표를 두었다. 주체세력의 정치·이념적 지향은 반봉건적 민중사상의 토양 속에서 출발하여 척 왜양운동기에는 초보적 반 외세의식과 민회라는 서구 정치제도에 대한 인식까지 보이다가 1차 기병을 거쳐 집강소 농민통치 및 청일전쟁을 경험하고서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국내외문제와 2차 기병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국 그것은 2차 기병의 목적이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는 데 있고 또 농민군 스스로 의병이라고 부르는 데서 나타나듯이 궁극적으로 봉건체제를 지양하고 자본주의적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근대민족주의로의 지향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 동학농민운동은 봉건사회의 말기적인 모순들이 농민들을 내리누르고, 세계자본주의 열강 무엇보다도 일본의 경제·군사적 침략 까지 농민들을 조를 때 안팎의 거대한 장벽들을 서로의 연대의식과 자신들의 독자 역량으로써 완전히 돌파해버리고 근대민족사회로의 터전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8)근대 이후의 한국 사상
먼저 원불교는 1916년 전북 익산시(益山市)에서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이 개창한 불교의 한 유파로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교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최고의 종지(宗旨)로 삼는데, 일원상의 신앙은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을 목표로, 어느 곳 어느 때나 신앙심을 지키어 천지(天地)·부모·동포·법률의 4은(四恩)에 보답하는 것을 불공으로 삼고, 자력양성(自力養成)·지자본위(智者本位)·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공도자 숭배(公導者崇拜)의 4요(四要)를 실천함으로써 복락의 길을 닦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다양한 신종교 등이 발생하였다. 신종교의 발생 원인은 아노미(anomie), 상대적 박탈감, 전통적 가치관 또는 기성 제도종교의 설득력 상실, 문화접변에 따른 충격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신종교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과정에서 뿌리뽑힘의 위기를 겪고 있는 도시 대중들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심리적 소속감을 부여하는 통로로 작용하였다. 기독교계 신종교는 대체로 신비주의적 지향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메시아니즘(messianism)과 종말론, 그리고 토착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전 시기의 신종교가 사회개벽 지향적, 공동체적, 농촌중심형이라면 기독교적 종말론의 강조, 개인구원 중심, 도시형 종교라는 점이 이 시기 신종교의 특징이다. 통일교(정식 명칭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전도관(傳道館)·승리제단(勝利祭壇)·애천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1954년 문선명(文鮮明)이 설립한 통일교는 반공주의와 성적 타락을 주장하는 등 독특한 성경해석을 하고 있으며 주된 교리서로 《원리강론》이 있다. 국내보다 일본·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크게 확산하였다. 박태선(朴泰善)이 설립한 전도관은 메시아를 자처하여 1950년대부터 전도관과 신앙촌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펼쳤다. 승리제단(일명 영생교)은 조희성이 전도관으로부터 독립하여 1980년에 설립하였다. 임박한 종말과 영생 불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관성교·무량천도와 같은 무속계 신종교도 있다. 외래 신종교로는 일본계의 창가학회(創價學會:일명 남묘호랭교)·천리교, 미국계의 여호와의 증인·모르몬교·안식교, 그리고 중국계의 일관도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종교는 왜색(倭色) 시비로, 여호와의 증인교는 수혈거부와 집총거부 등으로 사회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종교는 사회구조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신종교의 발생은 사회변동에 대한 반응이자 동시에 사회변동의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신종교의 발생은 그 자체가 당대의 사회적 위기상황이나 기성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기성종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며, 그 사회와 종교를 혁신하기 위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이로 인하여 기성종교와 사회로부터 이단·사이비종교·사교(邪敎) 등으로 배척받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신종교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상당 부분 자의적인 것이거나 결과론적인 것으로 신종교가 지니는 사회고발적 성향이나 창조성을 무시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기성종교나 사회제도의 관점에서 신종교에 가하는 평가를 신종교 일반의 성격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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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4.07.01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8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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