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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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반'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보고서 소개

Ⅱ. 저자의 관점과 서술 목표

Ⅲ. 내용 요약
1. 양반 -주자학의 담당자들
2. 재지양반층의 형성과정
3. 재지양반층의 경제기반
4. 개발의 시대
5. 양반의 일상생활
6. 양반지배 체제의 성립
7. 재지 양반층의 보수화와 동족 결합의 강화
8. 양반 지향사회의 성립

결론 - 전통과 근대

Ⅳ. 내용 평가 및 감상
1.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의 문제
2. 서술상의 문제점
3. 역사 인식과 시각의 문제

본문내용

폐쇄적, 보수적으로 변해갔고, 이러한 요소들은 결국 조선 후기에 신분제 변동과 그들의 지위 하락 등으로 리더쉽에 손상을 가하는 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공적영역에까지 사적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었고 이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근·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은 '부정과 부패, 권력 남용'등으로 불리며 합리적·도덕적으로 불합리게 인식되게 되었다. 이는 근대라는 달라진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요구되는 자질과 존재 형태를 달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에 우리들이 경험했던 IMF위기를 통해서 이해할수 있듯이, 우리 시대의 리더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리더쉽의 형태를 고수해왔던 것이다. 조선 시대의 리더를 통해서 살펴본 그들의 역할과 권위의 행사 방식은, 현 시대에 부합하며 미래를 창조해갈 리더 상(像)을 만들어 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앞 부분에서 언급된 것 처럼, 이 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긴 하지만, 그와 함께 적지 않은 문제점들과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의 문제점들과 본 책의 서술상의 문제점, 그리고 저자의 양반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시각등, 세가지 측면으로 살피며, 결론을 맺을까 한다.
1)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의 문제
- 저자는 본 책의 제 3장 '재지 양반층의 경제 기반'부분을 서술하면서, 노비 증가의 한 원인으로 종모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남자종의 소유자에게 소유권이 인정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노영구 역 1996, 「양반」도서출판 강, 93 쪽
하지만 실질적으로 양인을 늘려 국가 재정을 키우려는 왕권
당시 조정에서는 군역과 조세를 부담하지 않는 노비의 수를 줄이고, 그 대상인 양인을 늘리기 위해 노비를 단계적으로 해방시켜주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과 이에 반대하는 양반층과 반발로 조선 개국 이후 종모법과 종부법은 시행에 반전을 되풀이 하다, 1731년(영조 7) 왕권이 어느 정도 강화된 영조 연간에 와서 종모법으로 확정 되었다.
- 분재기(分財記)를 해석하는 문제로 인명의 유무에 따라 단순히 이름이 없는 경우 A방식과 이름이 기재 되어있는 경우를 B방식으로 분류하면서 각각 직영지와 대여지로 이해하고 있는데
본 책, 109 쪽
, 현재 분재기 상에는 여러 성격의 토지가 혼재되어 있음이 밝혀져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
- 저자는 노비의 생활이 비참하긴 했지만, 그들의 긍정적인 면을 설명하기 위해 다수가 가족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이야기 하는데
본 책, 164 쪽
, 실질적으로 그들이 가족을 형성 했었더라도 노비 가족의 상속등으로 말미암이 해체되어 버려 대부분 가족의 유지가 어려웠다.
2) 서술상의 문제점
- 저자 스스로가 지적했듯이 지나치게 농촌 지역에만 중점을 두었고, 18,19세기의 역동적인 사회 상황를 그려 넣지 못했다.
- 저자는 서문에서는 조선 시대 유교의 침투과정을 설명하고 형성된 유교적 전통을 고찰한다고 책의 목적을 밝혔지만, 실질적으로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였다.
- 재지 양반이 어느 시기에 지배 계층으로 형성되었는가가 명확하지 않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지배층으로 대두한 특히 고려말과 조선 초에 대한 설명 미흡한 것이다.
- 양반을 사회 관습을 통해 형성된 상대적 주관적인 계층으로 파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명확한 기준에 의해 획정된 계층으로 이해하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임진왜란 이후 국가재조론(國家再造論)을 통한 지방 향촌까지의 국가 권력의 강화와 이에 대한 재지양반들의 대응과 그 사회적 역할 및 분화는 재지 양반을 서술하는데, 적지않은 중요성이 있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이 아쉬웠다.
- 양반의 접빈객에 대한 행위를 단순히 증답 경제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이 외에도 인적교류를 통한 그들의 유대 강화 및 정보 교환등을 추가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 저자는 <쇄미록>을 통해 양반들의 일상 생활을 살피고 있으나,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재경 양반인 오희문을 통해서, 재지 양반의 일상적 생활을 살피려는 저자의 의도와는 다소 동떨어진다.
3) 역사 인식과 시각의 문제
- 저자는 '7장 개발의 시대'를 서술하면서, 당시 농업 생산력의 발달을 양반의 역할만을 강조하며, 당시의 소농층을 비롯한 양민들과 노비들의 역할을 배제한 양반 중심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 당시 일반인들의 양반으로의 계급 상승 추구를 농민층에까지 그들의 의식과 생활의 파급·전파라고 생각하는 것
본 책 254∼261쪽
은 신선한 아이디어기는 하지만, 보다 질적인 측면과 사회 변화의 추동 속에서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당시 일반인들의 양반에 대한 태도로써 양반으로의 신분 상승, 양반이라는 신분적 기득권의 타파, 현실 자족 혹은 자포자기적인 다양한 양상의 스펙트럼이 존재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농민들이 양반이 되고자 했던 데는 사회적 위신 문제도 있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양반이 되면 1년에 면포 1필을 내야 하는 군역세 등의 조세 부담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양반이 되어 군역세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무리가 많아질수록 평민 농민에게 전가되는 부담은 증가하였으므로, 농민들은 모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양반이 되려고 하였다. 또한 18세기 이후 급증한 지배층에 대한 민란을 통해 본다면, 저자의 양적인 지표를 통한 양반사회에서의 합리성과 주도적 세력으로서의 정당성을 발견하려한 저자의 시각과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시카다 히로시(四方博)의 대구 호적 대장의 신분별 변화 비율 표
본 책 255 쪽
를 인용하며 외형적 지표를 통한 양적인 면을 강조해, 조선 후기를 양반 지향사회로 이해·해석하고 있다. 이 자료는 일제시기 조선의 정체성과 저발전성등을 설명하기위한 식민사관 형성에 사용된 자료라는 문제점도 없잖아 있으며, 무엇보다 사회구성원의 양과 비율에만 치중해 '양반의 증가를 통한 양반 사회의 해체', 즉 '봉건적 질서의 재편성'이라는 질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는 저자가 경제사가라는 점 때문에 발견되어지는 문제점이라고 생각되어진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4.07.15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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