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금동여래입상 = 확실한 연대와 장소가 밝혀진 현존(現存)
최고(最古)의 고구려 금동불이다.(높이 = 17Cm)
6. 고구려시대의 공예
(1) 고분의 부장품으로 남아 있는 관모, 귀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가
있으며 고구려의 기상이 넘친다.
(2) 금동투조금구(금동투각일상문장식) : 24.7Cm, 13Cm, 1Cm 두께 : 세련된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유려하면서도 힘이 있다.
7.고구려시대의 회화
일본 법륭사의 금당벽화는 고구려 사람인 담징의 걸작이다. (동양의 3대
예술품 : 한국의 석굴암, 중국의 윈강석불, 일본의 금당벽화)
< 고구려 미술의 특성 >
(1) 호방(豪放)하고 장쾌(壯快)하다.
(2) 남성적이며 소박함이 있다.
8.삼국시대의 회화
삼국시대는 우리 나라가 국가적인 형태를 갖추고 문화가 안정을 이루었던 시대인 만큼 회화나 조각, 공예, 건축 등 각 방면에 걸쳐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회화 분야에 있어서 선사시대의 그림들과는 달리 채색(彩色)을 써서 표현하는 본격적인 형태의 그림이 발전하게 된다.
이 시대의 회화는 단순한 감상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무덤의 내부를 장식하거나, 사찰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 또는 그릇이나 장신구에 장식하는 공예화 등이 있었다. 물론 비단에 그려 감상적인 목적으로 그려진 것도 있었을 것이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썩어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재료상의 취약점으로 인하여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벽화나 칠기 조각, 도기(陶器)에 그려진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삼국시대의 여러 나라는 문화가 발전하면서 각각 서로 다른 특색을 드러내게 된다.
삼국 시대의 건축사
삼국 시대 건축술은 지금 남아 전하는 성곽, 무덤, 불탑 등과 궁전터, 절터 등을 통하여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의 건축술은 지금 남아 있는 부여 정림사의 5층 돌탑을 비롯한 일부 불교 관계 유물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기술을 받아들여 매우 발전하였다.
백제의 발전된 건축술은 일본의 건축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옛날 책에는 558년에 백제의 건축가 태량미태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서 큰 건물의 축조 기술을 전습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최근 시기까지도 거의 원상 그대로 남아 있었던 법륭사의 건물은 바로 이들이 건설한 큰 건축물들 가운데의 하나였다.
신라의 건축술은 앞선 진국 시기의 그것을 계승하고 고구려, 백제, 가야의 그것들을 받아들임으로써 5∼6세기에는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성을 쌓는 데서는 이미 2세기초에 총 길이 1,023보의 월성이 완공된 것을 비롯하여 그후 수많은 성들이 축조되었다. 7세기에 건설된 첨성대는 동심 분할한 돌을 27단으로 쌓아올려 회전 쌍곡면을 이루게 만든 것으로서 신라 건축가들의 우수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 시대의 우수한 건축술은 그 후 통일 신라와 발해 그리고 고려, 조선에 계승되었고 당시 이웃나라의 건축술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금동여래입상 = 확실한 연대와 장소가 밝혀진 현존(現存)
최고(最古)의 고구려 금동불이다.(높이 = 17Cm)
6. 고구려시대의 공예
(1) 고분의 부장품으로 남아 있는 관모, 귀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가
있으며 고구려의 기상이 넘친다.
(2) 금동투조금구(금동투각일상문장식) : 24.7Cm, 13Cm, 1Cm 두께 : 세련된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유려하면서도 힘이 있다.
7.고구려시대의 회화
일본 법륭사의 금당벽화는 고구려 사람인 담징의 걸작이다. (동양의 3대
예술품 : 한국의 석굴암, 중국의 윈강석불, 일본의 금당벽화)
< 고구려 미술의 특성 >
(1) 호방(豪放)하고 장쾌(壯快)하다.
(2) 남성적이며 소박함이 있다.
8.삼국시대의 회화
삼국시대는 우리 나라가 국가적인 형태를 갖추고 문화가 안정을 이루었던 시대인 만큼 회화나 조각, 공예, 건축 등 각 방면에 걸쳐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회화 분야에 있어서 선사시대의 그림들과는 달리 채색(彩色)을 써서 표현하는 본격적인 형태의 그림이 발전하게 된다.
이 시대의 회화는 단순한 감상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무덤의 내부를 장식하거나, 사찰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 또는 그릇이나 장신구에 장식하는 공예화 등이 있었다. 물론 비단에 그려 감상적인 목적으로 그려진 것도 있었을 것이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썩어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재료상의 취약점으로 인하여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벽화나 칠기 조각, 도기(陶器)에 그려진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삼국시대의 여러 나라는 문화가 발전하면서 각각 서로 다른 특색을 드러내게 된다.
삼국 시대의 건축사
삼국 시대 건축술은 지금 남아 전하는 성곽, 무덤, 불탑 등과 궁전터, 절터 등을 통하여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의 건축술은 지금 남아 있는 부여 정림사의 5층 돌탑을 비롯한 일부 불교 관계 유물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기술을 받아들여 매우 발전하였다.
백제의 발전된 건축술은 일본의 건축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옛날 책에는 558년에 백제의 건축가 태량미태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서 큰 건물의 축조 기술을 전습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최근 시기까지도 거의 원상 그대로 남아 있었던 법륭사의 건물은 바로 이들이 건설한 큰 건축물들 가운데의 하나였다.
신라의 건축술은 앞선 진국 시기의 그것을 계승하고 고구려, 백제, 가야의 그것들을 받아들임으로써 5∼6세기에는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성을 쌓는 데서는 이미 2세기초에 총 길이 1,023보의 월성이 완공된 것을 비롯하여 그후 수많은 성들이 축조되었다. 7세기에 건설된 첨성대는 동심 분할한 돌을 27단으로 쌓아올려 회전 쌍곡면을 이루게 만든 것으로서 신라 건축가들의 우수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 시대의 우수한 건축술은 그 후 통일 신라와 발해 그리고 고려, 조선에 계승되었고 당시 이웃나라의 건축술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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