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나를 배반한 역사를 읽고

목차

없음

본문내용

여전히 흑인을‘검둥이’로 부르는 인식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양상은 조금 달라졌지만 개화기 지식인들이 가졌던 일종의 인종주의인‘범아시아주의’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범아시아주의에 빠졌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춘원 이광수다. 그는 반민특위로부터‘광수’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적극적인 친일 선동을 했다. 조선과 일본이 힘을 합해서 미국과 러시아를 쳐야 된다는 내용의 시를 쓴 춘원은 개화기 지식인이 친일과 인종주의로‘탈선’해 버린 전형적인 케이스다.
이 밖에도 박노자는 초기 개신교의 비극, 정부의 부정부패, 여성운동의 딜레마, 불교의 소외 등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나름의 예리한 비판의식으로 분석하고 이를 평가한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도 하지만 관변 사학자들의‘무조건 긍정’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어 보인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도산 선생의 모든 업적이 폄하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적 진보성을 인정하되 그들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자는 것이 박노자의 일관된 소신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좌도 우도 아닌 개인의 인권과 자유다. 이런 그가 볼 때 한국의 지난 100년은 제목처럼‘나를 배반한’,‘내가 없던’ 역사였다. 물론 암흑기였던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창조성의 도래, 지식인들의 넓어진 안목, 주변 계층과 담론의 중앙무대화 등이 박노자 교수가 지적한 지난 100년 간의 소득이다. 다만 과거 우리들을 유혹했던 허구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한국인’임에도 예리한 비판의식을 세웠던 것이다.
무대는 100년 전으로 바뀌었지만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공격한 저자의 목표는 여일하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 국가주의와 패거리 문화. 역사 탐구는 그 연원을 캐는 작업이다. 전작과 달라진 점이라면 서술 주체의 변화다. 관찰자의 입장을 벗어나‘우리’를 주어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밖’에서‘안’으로 향하던 시선이 이 책에 와서‘안’에서‘밖’으로 바뀌었음을 상징한다. 형식의 변화는 독자와의 소통에서 뿐 아니라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이해의 깊이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각 개개인이 집단의 광기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낳는 망상에 빠지지 않고 저자가 지향하는 진정한 개인주의자로서 거듭난다면, 그리고 그런 개개인들로 이 사회가 구성된다면, 침략적 전쟁이나 정치권력의 부패와 민중 탄압과 같이 거대한 규모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들을 앞으로의 역사에서는 발견하기 어렵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인 기대를 해본다. 내 생각에 박노자의 이런 글로 내가 우리의 역사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과거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뒤틀린 과거에 묻혀있는 많은 이들의 사고는 쉽게 바꾸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이 글에서 그러한 아픔을 느낀다. 어찌 보면, 박노자의 고국인 그 나라가 이러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니었던 그가 조그만 반도인 한반도를 바라보며, 더 이상 이러한 아픔이 한국에 한민족에게 있지 않기를 소망해서 일까... “나를 배반한 역사” 그건 역사가 나를 배반한 게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반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을 살피는 박노자의 중요한 잣대는 역시 개인의 인권과 자유다. 한국의 지난 100년을 인권의 잣대로 볼 때 이 책의 제목을 「나를 배반한 역사」로 한 것은 자못 상징적이다. 이 책을 통하여 한국의 지난 100년사를 연대기적 나열이나, 국민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는 인식 전환의 기회로 삼고 싶다.

키워드

독후감,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