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동도서기론의 구조와 그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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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평>「동도서기론의 구조와 그 전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Ⅰ.서론
Ⅱ.본론
1.저자소개
2.동도서기론의 기존연구 동향
3.동도서기론의 개념
4.신기선의 동도서기론
(1)신기선
(2)신기선과 개화파
(3)신기선의 동도서기론
5.개화파와 동도서기론
(1)개화파 분화
1)개화파 분화에 대한 명명
2)시무개화파와 변법개화파
Ⅲ.결론-동도서기론의 논리적 구조

본문내용

것이 권오영의 「신기선의 동도서기론 연구」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신기선을 통하여 동도서기론을 살펴봄으로서 스승의 임헌회의 오기다과론, 즉 인간의 오기에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어 이를 기준으로 성범의 구별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뛰어넘은 신기선만의 동도서기론을 형성시켜나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동도서기론의 구조와 그 전개」에서는 신기선의 도기론을 통해 동도서기론의 논리적 구조를 살폈다. 이에 따르면 신기선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도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기의 조화를 동양의 도와 서양의 기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였다. 이 논리의 연원은 도와 기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요소이므로 비록 서법 또는 서기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곧 동도를 서교나 서도로 대체함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이 두 가지는 병행하더라도 결코 모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신기선을 비롯한 동도서기론자들은 도와 기를 어떠한 범위까지 이해하느냐 혹은 수용할 서기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을 뿐 전통도덕이라는 동도를 우선시하는 것은 기본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동도서기론 자체의 오류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동도로 일컬어지는 동양의 도덕과 서기로 일컬어지는 서양의 문물제도가 한 사회 속에서 상호 영향 없이 분리되어 공존할 수는 없다. 설령 공존이 된다 하더라도 그땐 이미 동도와 서기의 성격을 구분하기 어려워져 동도서기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애매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논문은 전체적으로 동도서기론의 진행과정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할 수 있다. 동도서기론 자체에 대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논문의 참고가 불가피했다. 또한 동도서기론이라는 개념이 자체적으로 치밀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떠나지 않았다. 그 구조는 중국의 중체서용론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고, 동도와 서기의 개념 또한 그들 역시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동도서기론의 구체적인 구조와 사상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5.참고문헌
-동도서기론 연구반, 「동도서기론의 연구동향과 과제」,2003.
-권오영, 「동도서기론의 구조와 그 전개」,한국사 시민강좌 7, 일조각, 1990.
-권오영, 「신기선의 동도서기론연구」,청계사학 1, 1984.
- 申箕善의 東道西器論 硏究(『淸溪史學』1,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淸溪史學會, 1984년 6월 30일)
- 金平의 斥邪論과 聯名儒疏(『韓國學報』55, 1989년 6월 10일)
-崔漢綺의 政治觀(『韓國學報』59, 1990년 6월 5일)
- 東道西器論의 構造와 그 展開(『韓國史市民講座』7, 一潮閣, 1990년 8월 20일)
1881년의 嶺南萬人疏(『尹炳奭敎授 華甲紀念 韓國近代史論叢』, 1990년 12월 5일)
-崔漢綺의 西歐制度에 대한 認識(『韓國學報』62, 1991년 3월 15일)
-崔漢綺의 氣說과 宇宙觀(『韓國學報』65, 1991년 12월 15일)
-1870년대 李恒老學派의 斥邪論(『白山朴成壽敎授華甲紀念論叢 韓國獨立運動史의 認識』, 1991년 12월 10일)
-崔漢綺의 師友와 그 家門의 來歷(『韓國學報』68, 1992년 9월 5일)
-兪莘煥의 經學觀과 性理學思想(『淸溪史學』10, 1993년 12월 31일)
-惠岡 崔漢綺의 學問과 思想 硏究(韓國精神文化硏究院 附設 韓國學大學院 歷史學科 博士學位論文, 1994년 8월)
-崔漢綺의 學問觀과 氣學의 性格(『韓國學報』77, 1994년 12월 10일)
-惠岡 崔漢綺의 科學思想(『國史館論叢』63, 國史編纂委員會, 1995년 9월 30일)
-1881년의 京畿斥邪論-鄭胤永의 斥邪論을 中心으로-(『吳世昌敎授華甲紀念韓國近現代史論叢』, 1995년 12월 8일)
-斥邪運動의 연구성과와 과제(『韓國史論』25, 國史編纂委員會, 1995년 12월 30일)
-崔漢綺의 社會思想(『震檀學報』81, 震檀學會, 1996년 6월 30일)
-위정척사운동(『한국근대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97년 2월 28일)
-朝鮮後期  壤趙氏의 官歷과 政治活動(『春川世居氏族 壤趙氏淮陽公派硏究』, 1997년 6월 15일)
-18세기 湖洛論辨의 爭點과 性格(『朝鮮時代의 社會와 思想』朝鮮社會硏究會, 1998년 4월 17일)
-崔漢綺의 生涯와 學問遍歷(『東洋哲學硏究』18, 東洋哲學硏究會, 1998년 6월 2일)
-崔충의 九齋과 儒學思想(『史學志』31, 檀國大學校史學會, 1999년 2월)
-定齋學派의 형성과 위정척사운동(『한국근현대사연구』10, 한국근현대사연구회, 1999년 6월)
-任憲晦와 그 學脈의 사상과 행동(『韓國學報』96, 1999, 9월)
-개화사상의 발전(『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1999년)
-최한기의 삶과 학문편력(『최한기의 철학과 사상』철학과 현실사, 1999년)
-기측체의에 대하여(『문헌과 해석』 2000년 봄호)
-새로 발굴된 자료를 통해본 혜강의 기학(『혜강 최한기』청계, 2000년)
-19세기초 安東儒林의 儒會와 그 活動(『李樹健敎授停年紀念 韓國中世史論叢』, 2000년 8월)
-19세기 安東儒林의 學脈과 思想(『大東文化硏究』38,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0년 6월)
-鶴峯 金誠一과 安東지역의 退溪學脈(『韓國의 哲學』28,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0년 12월)
-崔漢綺의 사회경제적 처지와 현실인식(『韓國學報』101, 2000년 12월)
-退溪의 心性理氣論과 그 사상사적 위치(『退溪學報』109, 2001년 4월)
-18세기 기호학계의 학설논쟁(『전통과 현대』, 2001년 여름호)
-가학의 형성과 계승(『영양 주실마을』, 안동대 안동문화연구소 편, 예문서원, 2001년 12월 24일)
-19세기 江右學者들의 學問動向(『南冥學硏究』11, 2001년 12월 31일)
-朴世和의 사상과 현실인식(『제천의병의 이념적 기반과 전개』(세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학술총서, 이회문화사, 2002년, 공저)
-학봉 김성일의 학문성향과 역사의식(『민족문화』25, 2002년 12월)
-개화파의 현실인식과 개화운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나남출판, 2003년 3월 21일)
-19세기 영남유림의 강회와 학술활동(『조선시대 사회의 모습』, 집문당,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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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2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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