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초기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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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영화 초기 발달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조선영화의 걸음마(1919~1926)

■ 조선영화의 본격적 전개(1926~1935)

■ 카프 영화운동의 논리와 실천

■ 무성영화 후기의 조선영화산업과 영화작품

■ 무성영화 후기 영화검열, 사건, 산업(1926~1935)

■ 발성영화와 친일영화(1935~1945)

본문내용

제 통폐합 시도(1940.12.10)
1941년 조선총독부는 영화제작업계에도 전시체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영화사를 단일회사로
통폐합할 것을 강요
조선영화배급협회 결성 - 배급회사 강제 통폐합(1941.10.25)
일본의 유럽, 특히 미국에 대한 적대감정은 당연히 일본 내의 영화수입에까지 영향을 미쳐 외화수입은
날이 갈수록 통제, 조선의 영화배급계도 마찬가지
관제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의 발족 - 조선영화제작업자들의 축출(1942.9.19)
조선영화인협회 해산과 영화기획심의회 설치
● 이 시기의 주요한 작품경향
가난 때문에 일어나는 비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등 이전부터의 주제가 계속 이어짐
일본 등지에서 영화공부를 한 신진 감독들의 의해 그 줄거리가 좀더 세련되고 정교해짐
고전의 영화화
춘향전(1936) : 이기세 구성, 이구영 각색, 이명우 연출촬영, 이필우 녹음
발성영화로 보기에는 대단히 미흡한 작품(서광제)
장화홍련전(1936) : 홍개명 연출, 이명우 촬영
홍길동전 후편(1936), 그 후의 이도령(1936) : “춘향전”, “장화홍련전”의 흥행성공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같은 경향의 작품
심청전(1937) : 하와이로 수출,상영
돈-겁탈-복수의 구조로 짜여진 영화
나그네(1937) : 당시 농촌의 빈궁한 모습을 그리는 한편 ‘돈’으로 인한 조선 민중들의 비극을 영상적으로
도 훌륭하게 그린 작품, 조선영화의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 즉 돈-겁탈-복수의 구조를
벗어난 작품은 아님
도생록(1938) : 돈에 얽힌 치정관계를 다룬 작품
성황당(1939) : 겁탈-복수-생이별의 구조, 고질적인 구조의 한 변형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
신인 감독들의 등장
대다수 외국에서 영화수업을 받은 이들에 의해 조선영화의 영화적 표현력이 향상
거의 전면적인 세대교체라고 불러도 좋을 감독들의 세대교체
1940년 이후 본격적인 친일영화의 제작
해방직후 영화제작 모두가 이들에 의해서 주도됨
신인 감독들의 경향
방한준의 경향 : 독특한 작품세계라든가 일관된 연출정신을 발견하기 어려움, 일반적인 세태의 해석,
흥미있는 대중적 제재의 채택
박기채의 경향 : 친일영화를 제외한 2편 “춘풍”, “무정”의 영화완성도와 비록 원작의 한계가 분명했지만
소설을 영화화했던 점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신예 감독
신경균의 경향 : 멜로 드라마의 진전된 형태라는 특성외에는 뚜렷한 특징을 유추하기 어려움
최인규의 경향 : 일제의 지배정책에 부응하는 감독의 한 사람
안철영, 전창근, 이병일, 김영화의 경향 : 이전의 조선영화작품들보다 세련되고, 견실한 구성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상황에 제한되고 스스로의 세계관과 민족관의
한계로 독특한 작품경향은 보여주지 못함
카프 영화 진영 출신의 마지막 감독 - 김유영과 안석영 : 카프 영화 운동과 관련된 인물, 1934년 카프
해소 이후 계속 영화관계 일을 한 사람
● 친일영화와 친일영화인
월하의 맹서(1923)
조선총독부의 저축장려를 위한 정책영화
남편은 경비대로(1931)
조만 국경에 경비대를 보내기 위한 정훈공작용 영화
친일영화작품
소극적으로 일제의 정책을 영화 속에 반영한 작품
- 군용열차 : 전쟁준비에 열심히던 일제가 군용열차를 매개로 하여 애국심을 간접적으로 종용하는 작품
계몽적 성격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선사회의 모순을 은폐한 작품
- 수업료(1940), 청명심(1940), 바다의 빛(1940), 산촌의 여명(1940), 집 없는 천사(1941)등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이 될 석을 강요한 작품
-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1939), 흙에 산다(1942), 거경선(1944), 너와 나(1941)
일제의 전쟁야욕을 부추겨 조선 민중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작품
-승리의 뜰(1940), 지워병(1940), 이제 나도 가련다(1942), 우러르라 창공(1943), 망루의 결사대(1943), 조선해
협(1943), 젊은 모습(1943), 병정님(1944), 태양의 아들들(1944), 사랑과 맹세(1945), 우리들의 전쟁(1945),
피와 땀(1944), 감격의 일기(1945)
시국변화에 따라 변하는 친일영화작품들
일제의 수탈에 의한 현실의 어려움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어용 계몽
영화(“청명심”, “바다의 빛”, “집 없는 천사”)로 시작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에 부응하는 영화(“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 “너와 나”)로 발전
지원병 참가를 부추기는 영화(“승리의 딸”, “지원병”, “우러르라 창공”)로 본색을 드러냄
결국에는 본격적인 전쟁영화(“병정들”, “가미가제의 아들들”)와 전선 후방의 정책적 방침인 황국신민화의
공고화를 획책하는 “사랑과 맹세” , 심지어 국민학교 학생들까지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태양의 아들들” 까지 제작
이러한 작품경향의 변화에 따라 친일영화들 속에서도 전쟁영화, 총후영화, 국민영화, 결전영화등으로
구분
친일영화단체와 친일영화인
조선영화인협회, 영화인 기능심사위원회, 국민총력조선연맹, 황도학회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18편의 확실한 친일영화의 감독으로 안석영 2편, 최인규 5편, 방한준
4편, 신경균 3편, 박기채 2편, 김영화 2편
조선영화동맹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를 주장,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지향했던 조선공산당과 그 외곽 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민주주의민족전선산하단체
카프 활동의 영화인부터 친일영화인까지 총망라한 단체
1947년경 조선영화동맹이 불리해지자 최인규, 박기채, 방한준, 이명우, 김정혁, 김영화등은 우왕좌왕하
다가 일부는 전쟁을 전후로 월북 혹은 납치되어 북행함
친일영화인들의 친일행각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만이 아닌 이전과 이후의 활동, 그들의 가치관과 사회적 지위 등이 면밀하게 검토된 후에 조심스럽게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기에 과학적인 태도와 역사주의에 입각해서 공개하고 평가해야만 한다. 이 부분과 해방 직후 3년 간의 영화역사를 연구해야만 오늘날 한국 영화계의 정치경제적 상황, 작품경향 등을 연구하거나 과학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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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3.25
  • 저작시기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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