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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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레오나드로 다빈치
(1) 작품해설(스케치)
2. 미켈란젤로
(1) 작품해설
3. 르네상스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

본문내용

정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휴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쯤 벗은 옷을 이제 막 올리려고 하고 있다.
<모세상1513-1516년 로마, 빈콜리, 산 피에트로 성당>
시스티나 천정화가 완성되고 얼마있지 않아서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II가 사망했는데, 그때 유언에, 1505년에 계약한 바 있는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II 묘당을 위해 10,000 두카덴(Dukaten)을 남겨 놓았다. 사실 이 묘당을 위해서 계획하고 추진하던 미켈란젤로의 그간의 노력은 그 시스티나 천정 벽화의 고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식은 적이 없었다. 그곳에 안치될 상의 하나로 예정된 것이 바로 이 모세상이다. 머리 위의 뿔과 십계의 石板(석판)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예고자로서의 모세는 그 위엄의 모습을 대리석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여러 예언자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감을 넘어서서, 평생 대리석을 유일한 매체로 삼던 미켈란젤로의 조각가로 서의 본격적인 대결이 그의 응집된 量塊(양괴) 속에서 이 <모세>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의 중앙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품으로 불타는 정열로 거대한 기념비를 시작했는데 시기하던 사람들 때문에 백지화되었다가 몇십년이 지난 후 대폭 축소되어 고령에 접어든 미켈란젤로가 혼열을 기울려 제작했지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분노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힘과 정기가 넘치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이 완성 되었을 때 로마의 유태인들은 샤바트(유태교 안식일 ) 때마다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 한다.
<최후의 심판 1534 41년, 프레스코 1450 x 1300cm> 부분도
세상과 인간의 탄생과 그에 관련된 것들을 거대한 화면에 담아낸 혈기왕성한 37세의 대화가 미켈란젤로는 회갑이 넘어 신이 창조한 세상의 종말을 그리기 위해서 다시 이곳을 찾는다. 1534년부터 7년간에 걸쳐 작업한 이 작품은 391명의 군상이 난무하며 장대한 구도와 복잡한 구성, 그리고 전체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만년의 대작이다. 성경에 예시된 최후의 날의 그리스도 재림과 그 때 행해지는 심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천국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지옥의 공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최후의 날에 부활하는 사람들과 심판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선인과 밀려나는 악인은 당당한 심판간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 천국을 묘사하면서 그 곳에서 만난 인물들을 비평하고 평가하여 오랜 역사를 심판하였듯이 미켈란젤로는 그의 벽화에서 그러한 심판을 하였다.
중앙에 있는 예수는 오른손을 들어 심판을 하고 왼손으로는 주위의 착한 자들을 부르고 있다. 곁에는 인자한 성모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들러싸고 있고, 예수의 발 아래 오른쪽에는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영혼과 육체가 빠져 나간 미켈란젤로의 껍데기를 쥐고 있다. 작가는 덧없는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위치를 그렇게 예언했다. 예수의 오른쪽에 열쇠를 들고 있는 백발의 노인은 성 베드로이고 그 왼쪽은 성 바울이다. 마리아의 왼쪽에는 십자가를 든 성안드레아와 노인 모습의 성 요한이 있다. 글미의 윗부분은 천국에서 만나는 기쁨을 그렸고, 중간 부분에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심판관에게 순교자의 심벌을 각자 보이고 있으며, 하단의 좌측에는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묘사되어 있는가하며 우측은 반대로 천당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는 장면이다. 무거운 죄를 지은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천사들의 부측을 받아야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 작품은 '천지창조'를 그리던 때와는 달리 종교개혁으로 전 기독교계가 몸살을 앓고 있던 때라 당시의 비극적인 시대상과 노년에 접어든 미켈란젤로의 비관적인 인생관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 *
당시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을 장인들과 동일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오면서 당사자들은 그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자신들의 직업을 학예의 수준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예술가들은 새로 개발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단순한 장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14c에비해 15c에 예술가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고 기베르티와 부르넬리스키가 요직을 맡은 후 시간이 흘러 16c에는 예술가들이 대단히 존경받기까지 이른다. 특히 미켈란젤로 등 거의 신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하면서 회화.조각이 학예에 포함된다는 주장이 힘을 더했다. 이에 반박하는 이론들도 아주 많았지만 그 또한 굉장히 피상적으로 단순히 손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멸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전의 회화예술이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들추어내는 일, 유력가,왕족들이 예술가에게 호의를 베푼 일등을 언급할 뿐이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모든 지적인 학문과 예술을 연결시키려했다. 단순히 지위리 향상을 위해서 말이다. 이점에서 레오나르도는 수학과 미술을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수학적 계산인 원근법을 특히 강조하였다. 또 플라톤이 화가를 단순히 무식한 모방자에 불과하다고하자 진정한 화가는 자신이 그리는 모든 영역에대해서 능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예술가들은 이 정도 수준을 벗어나 이제는 시인들과 동등한 위치에까지 서기를 바랬는데 시와 그림의 상상력,창조력은 동등하다고 주장하며 묘사하는 내용도 같다고 보았다. 후에 조각가와 화가중 누가 더 고상한가의 논쟁도 벌어졌는데 결국은 조각가는 작업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고 화가는 지적인 어려움이 있기에 화가가 더 고상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조각가.화가.건축가 모두 지식인으로 인정 받았고 15c말 엽에 화가는 길드 조직을 벗어나 다른 지식인들과 상호 협동하면서 일할 수 있는 개인자격의 자유로운 지식인이 되었다. 그 결과 대중의 반응을 염두에 두는 예술이 시작 되었고 결과적으로 16c 후반부 아카데미의 출현을 불러일으켰다.
  • 가격3,300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05.05.10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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