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과)졸업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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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문과)졸업논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 司馬遷
ⅰ) 사마천은 누구인가?…………………… 1~4
ⅱ)『사기』……………………………… 5~6
ⅲ) 사마천이 본 역사와 인간…………… 7~9

Ⅱ. 班固
ⅰ) 반고는 누구인가? ……………………10~16
ⅱ)『한서』 ………………………………17~19
(ⅰ) 개략
(ⅱ) [한서]의 자료와 구성

Ⅲ.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사마천과 반고
………………20~23

※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저자로서 송대(宋代)의 역사가인 정초(鄭樵: 1104∼1162)가 그러한 비판의 선봉이었다. 정초는 [사기]를 대단히 존숭하여, 자신의 학문적 모범으로 삼았다. 그는 [통지]의 첫머리에서 역사는 어디까지나 단절이 아니라 지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가가 어느 특정 시대의 역사만을 서술하고자 한다면, 의도적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과 자기 스스로를 단절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그는 중국의 역사를 임의대로 각 왕조의 치세들로 나누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그는 단대사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반고를 다음과 같은 언사로 터무니없이 비난하기에 이른다. "사마천이 승천하는 한 마리 용이라면, 반고는 돼지라 하겠다." 비록 정초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마단림(馬端臨)이나 장학성(章學誠) 등도 단대사가 아닌 일반 통사에 대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정초의 [통지]는 대만의 신흥서국(新興書局)에서 1959년에 전9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른바 삼황(三皇) 시대로부터 당(唐)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대를 커버하고 있는 통사(通史)이다. 특히 역대의 문물제도를, 그야말로 백과사전에 버금갈 정도의 범위로 망라하고 있는 20략(略)이 가장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략(略) 부분은 모두 51권인데, 그 중에서 씨족(氏族), 육서(六書), 칠음(七音), 천문(天文), 지리(地理), 도읍(都邑), 예(禮), 시(諡), 기복(器服), 악(樂), 직관(職官), 선거(選擧), 형법(刑法), 식화(食貨), 예문(藝文), 교수, 도보(圖譜), 금석(金石), 재상(災祥), 초목곤충(草木昆蟲) 등의 20권을 통칭하여 특히 20략이라 부른다.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국학입문서요목급기독법'(國學入門書要目及其讀法)([국학연독법삼종](國學硏讀法三種), 臺灣 中華書局, 193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송(宋)의 정초는 역사가로서의 식견과 자질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통지]는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전부를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정수라 할 20략은 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씨족], [육서], [칠음], [교수]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는 이 저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려뽑은 것이 지극히 광범위하다. 논의 또한 경이로울 정도로 신선하고 계발적이다. 비록 부질없이 넓기만 하여 혼잡스런 측면도 없지는 않으나, 옥의 티가 옥의 빛을 가리지는 못하는 법. 결국 확실한 근거도 없이 중언부언하는 자들이 감히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 오늘날에도 여전히 참고할만한 문헌이다. 두우, 마단림과 함께 삼통(三通)이라 불리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통지]는 당(唐)의 두우(杜佑)가 편찬한 [통전](通典), 원(元)의 마단림(馬端臨)이 편찬한 [문헌통고](文獻通考)와 함께, 이른바 삼통(三通)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학문이 넓기는 하지만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요약하지는 못한다'([송사[(宋史))는 단점을 지닌다.
그러나 보다 냉정하게 검토해보면, 단대사야말로 중국사 연구 및 서술에서 보다 유의미하고 타당한 영역을 설정하는데 유용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주(周), 진한(秦漢), 수당(隋唐), 송(宋), 명(明) 등의 주요 왕조 단위의 시대들은, 문화적 및 제도적인 측면에서 자못 독자적이고 고유한 페러다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왕조 단위의 시대 구분은 그것이 적절하게만 이루어진다면, 중국 역사 연구 및 서술에서 유의미한 영역 설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왕조 단위의 시대 구분을 뛰어 넘는 일반 통사의 경우에는, 보다 특수하고 제한적인 연구 주제를 설정했을 때 대단한 장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화폐사(貨幣史)라든가 법제사(法制史)라든가 하는 식의 한정된 주제 영역을 설정할 경우가 그렇다.
요컨대 특정 주제의 시대적 변천상을 추적하여, 그 주제에 대한 통사를 서술할 경우를 말한다. 결국 일반 통사와 단대사는 역사 연구 및 서술에서 그 나름의 장단점을 지니는 바,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버튼 왓슨의 다음과 같은 통찰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대 이후의 거의 모든 역사가들은 [사기]가 아니라 [한서]를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들은 [사기]의 압도적인 스케일에 끌려 다니는 처지가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왓슨의 이 말은, 사마천의 위대성과 반고의 고유한 의의를 동시에 잘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반고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여지없이 역사가의 소명을 타고난 한 인간과 만나게 된다. 반고는 사마천에 비해서 보다 전문적인 역사가였다. 사마천과 반고는 모두 문학가로서의 재질과 상상력을 고도로 갖춘 인물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사마천은 자신의 문학적 재질을 역사에 투영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에 비하여 반고는 문학적 재질을 보다 조심스럽게 간직하면서 역사 서술에서는 자제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사마천의 글은 그 문학적인 가치로도 정평이 높다. [사기]에 종종 등장하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그것에 생기를 더해주는 대화체 형식의 글도 [한서]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반고는 이른바 '역사학적 상상력'이나 '수사적(修辭的) 배려'보다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일차 자료에 훨씬 큰 가치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과 반고를 비교하여 평가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주관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인 것 같다. 아마도 [사기]와 [한서]를 읽는 독자들이 있는 한, 그러한 비교 또는 일종의 논쟁은 학문적인 차원에서든 단순한 호사가적 취미의 차원에서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중국 문명의 위대한 지적 성취들 가운데에서도 역사 서술의 전통, 그중에서도 [사기]와 [한서] 및 그 저자들은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모든 고귀한 것들은 (이루어지기) 힘들 뿐더러, 무척이나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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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5.23
  • 저작시기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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