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성들은 차별받는가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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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2. 가족의 이름으로 포장된 차별

3.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4. ‘과거로부터 누적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하여

5. 농담, 칭찬 그리고 성희롱의 차이

6. 발상의 전환: 남녀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일까?

본문내용

년 서울대 모교수의 성희롱 사건을 통해서였다. 이후 봇물처럼 성희롱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은 한 직장내 수십명의 피해 여성과 가해 남성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써, 한국 최초로 성희롱의 책임이 가해자 뿐 아니라 회사에도 있음을 인정하는 선례가 되었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에서도 성희롱은 여성의 조직내 배제와 축출을 가져오는 심각한 위협요소로 환기된 바 있다. 한 여성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여성의 80%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직장 여성들의 다수가 상사나 동료로부터 성적인 농담을 듣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유머를 가장한 "음담패설", 화목을 가장한 "술시중", 관심을 가장한 "성적 접근"을 사양한다. 여성들은 성적 대상이 아닌 직장 동료나 선후배,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에 걸맞는 새로운 화법과 소통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성희롱 즉 공적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화두로 던져진 것은 무엇보다도 공적 영역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성희롱문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못했다. 과거의 남녀관계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가족내부에서 성역할로 분화된 남녀관계, 가족관계를 준비하는 구애관계, 또 가족관계로 들어올 수 없는 '불륜'이 남녀관계를 규정하였다. 오늘날 남녀의 만남의 범위는 훨씬 확대되었다. 다양한 사회조직 속에서 남성과 여성은 협력과 경쟁의 관계로 만나고 있다. 성희롱을 둘러싼 온갖 쟁송들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협력과 경쟁의 언어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다.
물론 한 남자가 한 여성에게 진심과 선의를 갖고 접근하는 것과 성희롱을 분명히 경계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성희롱을 한 사람은 악의가 없었음을 강변하고 피해를 당한 여성은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부분의 성희롱 사건에는 두 개의 기억과 진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정황판단과 상식이라는 것도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것이 양분되었기 때문에 판단과 조정에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성희롱을 둘러싼 판단에서 남녀간의 인식의 골은 아직도 깊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여성들의 경험이 표현되어야고 그것이 평균적인 관념, 합리적인 판단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통념'과 '상식''문화적 관용'이라는 것도 '절반'의 실패와 배제에 기초한 것이라면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박스 3 성희롱의 법적 정의와 종류
성희롱을 법적으로 정의하면,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동 등으로 성적인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 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성희롱은 크게 조건형 성희롱과 환경형 성희롱으로 구분된다. 조건형 성희롱은 성적인 접근을 여성들이 수락하지 않았을 때 채용탈락, 감봉, 승진탈락, 정직, 휴직, 해고 등과 같이 채용 또는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하는 것이다. 환경형 성희롱은 성적인 언어나 행동 등으로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6. 발상의 전환: 남녀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일까?
분명 과거보다 여성들의 삶은 나아졌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권력과 자원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듯이, 여성들이 더 많이 교육을 받고, 사회진출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평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구조화되고 당연시되어왔던 남녀차별의 문화와 관행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제도로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뿐 아니라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등이 모두 이러한 노력의 산물들이다. 이런 조치들은 일차적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여성들에게는 여성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여성부'가 있으니 남성들을 위해서는 '남성부'가 있어야 한다는 불평도 심심찮게 나온다. 과연 여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은 여성들만을 위한 것일까?
외견상 여성들이 평등의 이름하에 얻고자 하는 것은 남자들에게는 상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더 많은 교육을 원하고 직업을 원하고 여가시간을 원한다. 취업문은 좁아져만 가는데 남성들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도 경쟁해야 하고 집안일 때문에 '출세와 성공'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안은 종종 남자가 일하고 여자가 가사와 아이들을 책임지는 오래된 노선에 대한 향수를 낳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평등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남성들에게는 '좋았던 옛날'이 있었을지 모른다. 여성들의 묵종과 희생, 배제된 삶의 반대편에서 향유된 무엇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태생에 의해 반상이 갈라졌던 조선사회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듯이, 어떤 성으로 태어났는가가 운명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사회 역시 우리가 가진 상식과 가치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남성들에게도 아버지가 살아왔던 '강한 남성'의 길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피폐를 감내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가족과의 정서적 관계는 매우 취약했다. 오늘날의 남성들은 그러한 삶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가족과 친밀성을 희생한 위에서 직장과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낡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힘든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여성들이 가족과 고용, 직업, 정치와 경제 모든 영역에서 '차별'의 이름하에 제기하는 모든 것들은 비단 여성이 겪는 불이익과 불편을 개선하고 완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성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공존의 윤리 및 그 제도적 형태에 관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질서가 남녀의 영합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고 또 모두에게 하향평준화를 의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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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07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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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6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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