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위한 교육, 교육에 의한 사회- 교육과 사회, 페다고지를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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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를 위한 교육, 교육에 의한 사회- 교육과 사회, 페다고지를 읽고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사람과 사회, 사회와 사람

3. 교육과 사람

5. 결론

본문내용

프레이리, 앞의 책, p. 50 b 2-1) 교육은 출산의 고통과도 같다고 하는데, 프레이리에게는 어쩌면 페다고지를 엮어낸 사실이 출산의 고통과 같지 않았을까. 그의 능력이 역부족이었다는 뜻은 물론 아니며, 그로 하여금 이같은 발상을 하도록 만든 사회가, 그리고 그 발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상황 자체가, 그리고 이 모든 활동에 대한 억압을 스스로 견뎌내려 했던 것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올바른 확신을 가지고 확신대로 행동하는 일은 얼마나 용감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비록 그것이 사회를 전복시키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뒤르껭의 생각에서 비록 지나치게 사회 중심적이라는 점, 모든 주체성을 사회에게 부여하다보니 개인의 주체성을 간과했다는 점 등의 단점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적 맥락에서 볼 때, 그도 프레이리처럼 기존의 지배적인 사조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는 그 이전에 유럽을 휩쓸었던 사변적 교육학을 배제하고, 교육을 경험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른바 교육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 뒤르껭, 김종철“번역판 붙여” 앞의 책, p. 4 t 9-12.
뒤르껭과 프레이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자신들의 입장을 굳건히 지켰던 사람들인 것 같다.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교육 현상 혹은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 하였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뒤르껭은 기존의 역사, 질서, 사회를 옹호하며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 한 반편에 프레이리는 기존의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을 강조했고,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는 것이 교육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본문 소제목으로 정하여 정리하려다 미처 하지 못하고 각주로 대신한다. 나는 뒤르껭이 “미래는 무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뒤르껭,p. 137)는 말을 믿는다. 온고지신도 비슷한 맥락에서 쓸 수 있는 말이다. 비록 지금까지의 질서가 왜곡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절대선은 없기 때문에 새로 생겨난 체제도 분명히 모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디쯤에 이상향을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희망적이나, 현재의 제도를 송두리째 부정하기에만 좋은 것은 아닐까. 절대악은 없다면 현재의 제도가 마냥 바르지 않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다만, 변화를 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뒤르껭과 프레이리의 이야기에서 참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읽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뒤르껭의 책을 먼저 읽은 나는, 읽다 보며 많은 부분에서 수긍하였지만, 학습자의 능력 혹은 의지를 너무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뒤르껭의 책을 읽고나서 프레이리의 책을 읽자, 뒤르껭의 사고가 송두리째 전복되는 데서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뒤르껭의 생각에 온전하게 긍정하지 못했음에도, 프레이리의 생각에 또한 온전하게 긍정할 수 없었던 까닭은 양자 모두가 사회 혹은 교육의 일면만을 부각하여 해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에 여러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전문적인 능력이 그 총체적인 특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일부분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노력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에, 연구자는 사회의 일면에 대한 심오한 자기 해석을 사회 해석의 전부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야말로 ‘삶을 담보로 걸어서’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자유를 획득했던 사람들이다. “자유는 오로지 삶을 담보로 걸어야만 얻을 수 있다.……물론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는 사람도 한 ‘인간’으로서 인정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인정의 진리성을 독자적 자의식으로서 확보할 수는 없다.
- 게오르크 헤겔(프레이리, 앞의 책, p. 45 t 4-7에서 인용)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지닌 자유의 공포를 좀처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마치 자신을 자유의 수호자인 양―때로는 무의식적으로―위장하려 한다. 자신의 의심과 불안을 숨긴 채 냉정과 침착을 가장하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척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사실 자유와 현상유지를 혼동하고 있다. - 프레이리, 앞의 책, p. 45 t 8-14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았다. 자유가 만연해진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방종’이며, 사람들은 방종을 자유인 양 누린다고 생각한다. 보여지는 방종이 보여지지 않은 자유의 자리를 대신하여 있는 사회 안에서 나 역시 나의 방종을 내 자유로 여겨왔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변화를 두려워 하였으며 지금의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을 자유로 여겨왔던가.
아주 오랫동안 ‘나’로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야 나는 나의 숨결을 느끼며,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는 일이, 그리하여 ‘나’로 다시금 살아가는 첫걸음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온전한 내 목소리를 낼 때에야 비로소 내가 사는 사회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리에게 교육을 받은 농민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전까지 말은 내게 무의미했지만, 이제는 말이 내게 이야기하고 내가 말을 이야기할 수 있다.”(프레이리, p.40 b6-7) 나는 그 이전까지 내가 자유롭다고 느낄 만큼 말을 해왔고,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나는 진정 말을 소유했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농민에게 있던 절실한 생각이 정작 나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나의, 추상적인 말들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지는 않았는지. 내 언어는 내 언어가 아니었다. 나는 언어를 가지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제대로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한 것 같다. 내 말에 내 생명을 불어 넣는 일, 다른 사회적 요구나, 다른 사람의 요구가 아니라 참된 나의 글로 만드는 일은 내가 이제부터 나의 삶을 담보로 걸어서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새삼 깨달아진다.
< 기본자료 >
E. 뒤르껭. 이종각 譯. 『敎育과 社會學』. 배영사, 1978.
파울루 프레이리. 남경태 譯. 『페다고지』. 2002.
(본래 1970년 발간,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부터 유통되었음.)
  • 가격2,3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5.09.05
  • 저작시기2005.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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