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교육관(인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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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볼 수 있다.
3. 천거제를 주장하다.
그는 변질된 과거제의 대안으로 천거제를 주장하였다. 허나 이 부분은 단순히 변질된 과거제의 해결책이라는 측면보다는 그와 정조와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 정조는 붕당 정치의 폐단 속에서 <군주권 강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천거제>는 이런 정조의 의도와 딱 맞아떨어졌다.(정약용은 정조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주장했다는 비판이 나왔죠. 정약용은 여우다~!) 당시 정조의 총애는 받고 있으나 과거제로서는 쉽게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던 실학자들은 천거제를 통해 좀 더 많이 중앙 관직에 등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또 다른 세력을 형성했을 것이고 당시 붕당들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며 정조에게 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천거제 주장과 함께 겸직의 폐단을 지적하며 구임, 즉 <전문가 양성>을 주장하였다. 이 것 역시 관료들이 중앙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함으로써 <군주권 강화>라는 의도를 만족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실학의 철학> 한국사상연구회 예문서원 1996
<다산을 찾아서>고승제 중앙일보사 1995
<정약용> 윤사순 고려대학교 1990

키워드

실학,   실학자,   정약용,   교육관,   인재관,   조선
  • 가격600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05.09.14
  • 저작시기2005.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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