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버블의 기원 (역사)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금융버블의 기원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거품으로 만들어진 세계: 금융버블의 기원

2. 튤립 - 바보의 고깔모자

3. 1690년대 주식회사 설립 붐

4. 1845년 철도 버블

5. 새 시대의 종말

6. 카우보이 자본주의

7. 가미가제 자본주의

8. 새 패러다임과 신경제

9. 투기, 그 양면의 얼굴

본문내용

료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일을 처리하는 데 미적거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인 1989년 12월 25일 그는 전격적으로 재할인율을 인상시켰다. 물론 이 때의 인상은 이해 5월에 이어 두 번째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나흘 뒤인 12월 29일 닛케이지수는 역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쿄 증시는 갑작스런 폭락으로 붕괴되지 않았다. 대신 고무풍선에서 서서히 빠지는 바람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쿄 증시의 거래량이 버블시기의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지자, 수많은 외국 투자은행들도 도쿄 증시의 회원권을 팔고 철수했다. 미쓰비시의 록펠러센터 등 일본 기업들이 사들였던 수많은 해외 자산들도 헐값에 되팔려 나갔다. 도쿄를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려 했던 일본인들의 꿈은 주가 하락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
버블이 가시자 일본 경제는 바닥 모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붐이 일었던 설비투자도 버블이 가라앉자 과잉투자로 드러나면서 극도로 위축되었다. 일본 정부는 경제와 증시부양을 위해 1998년 11월까지 8조 5000억 엔(6,4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금융정책도 다시 완화되었다. 재할인율이 계속 인하되어 1995년 9월에는 일본 역사상 최저 치인 0,5%까지 떨어졌다. 이 재할인율은 1998년 9월까지 유지되다 다시 0.25%로 인하되었다. 하지만 이런 초 저율의 이자율 정책도 경기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일본 경제가 케인즈가 말한 '유동성 함정'에 빠져든 것이다.
버블이 터진지 9년이 지난 1998년 일본은 경제시스템 붕괴의 벼랑 끝까지 밀려났다. 은행들은 도저히 규모를 파악할 수 없는 부실 채권을 짊어지고 신음하고 있고,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소비자들은 불확실한 앞날을 대비해 허리띠를 과도하게 졸라맸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1998년 9월 일본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규모를 털어 내고도 150조 엔 선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여파로 수많은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도산에 직면했다. 또 일본인들 사이에 주식 혐오증이 광범위하게 퍼져 이자율이 연 0.5%도 되지 않은 요구불 예금에 돈을 맡기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8. 새 패러다임과 신경제
1990년대는 새 패러다임과 신경제라는 개념이 증시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보혁명에 감탄하는 온갖 말들은 1840년대 영국 '철도혁명' 시기에 나왔던 언어들과 비슷하다. 철도와는 달리 인터넷은 많은 자본을 쏟아 부을 필요가 없었지만, 인터넷기업들은 주식을 상장시켜 철도회사 못지 않은 자본을 끌어들였다.
인터넷주식에 대한 투기는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이 나스닥에 상장된 1995년 여름 처음 감지되었다. 1996년 봄까지 상당수의 인터넷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특히 같은 해 4월에 상장된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인 야후는 1995년에 설립된 분기매출이 100만 달러밖에 안 되는 별 볼일 없는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 주식은 상장 첫날 153%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었다. 또 만년적자를 기록했던 텔레비전 제조업체 제니스는 이해 3월 인터넷과 연결할 수 있는 텔레비전을 생산할 것이라고 공시하자 주가는 순식간에 3배로 뛰어 올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에서 인터넷이라는 말만해도 뭔가가 일어난다"고 비꼬았다.
인터넷주에 대한 붐은 1998년에 한층 거세어졌다. 같은 해 말 미국 주요 인터넷기업들의 시가총액은 거대기업의 시가총액과 비슷해졌다. 온라인 증권사인 찰스 스왑의 시가 총액은 오프라인 증권사 메릴린치를 능가했고, 인터넷경매회사인 e-베이도 소더비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AOL도 디즈니사의 시가총액보다 앞섰다. 야후의 시가총액은 연 수익의 800배에 달했고, 매출액의 180배에 달했다. 또 인터넷서점인 아마존닷컴의 주가는 이 회사의 손실 누적에도 불구하고 1998년 한해동안 18배가 뛰었다. 한 펀드매니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터무니없이 고평가된 주식"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마존닷컴의 주식을 사라고 권했다. 인터넷기업의 공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열풍처럼 뜨거웠다. 인터넷 채팅서비스인 더글로브닷컴은 1998년 11월 중순 처음 공모를 실시해, 첫 거래 일에 주식이 866%나 뛰었다. 또한 1999년 1월 15일 마켓워치닷컴이 처음 매매개시 되었는데, 주당 17달러에 공모했던 주식은 이날 97.5달러로 마감되었다. 이에 「하이테크 스트래티지스트」의 편집장인 프레드 학키는 "인터넷 버블이 튤립투기 이후 가장 거센 투기"라고 말했다. 또 1999년 1월 하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도 "인터넷 주의 가치평가는 그림의 떡과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터넷 기업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주식은 한 순간에 종이조각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복권에 취해 있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다. 투기의 원천이면서 그 대상인 것이다. 빌 게이츠는 『미래의 길』에서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골드러시는 투기심리를 일깨워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수만이 돈을 벌게 된다. 우리 뒤엔 손해를 본 대중들의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다. 결국에는 바보처럼 실패한 벤처의 잔해를 뒤돌아 볼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저 회사를 세운 거야?', '무슨 생각을 갖고 저런 짓을 했지?', '저게 바로 투기의 참모습이 아니겠어?'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9. 투기, 그 양면의 얼굴
시장은 합리적이고 주가는 내재가치를 반영하며, 투기꾼은 자신의 부를 최적화하려는 합리적인 시장 참여자라고 주장하는 현대 경제학자들에게 투기의 역사는 아주 지루한 테마일 수 있다. 투기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고정환율제를 붕괴시켜 변동환율제로 전환시켰고, 최근에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관료자본주의를 붕괴시켜 시장자본주의로 변화시켰다. 한편으로 무정부적인 파워로서 투기는 현재 지속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시 사슬을 끊고 정신착란을 일으킨 환자처럼 날뛸 것이다. 마치 진자처럼 경제적 자유와 규제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 가격9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10.02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435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