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공업화와 일본인의 자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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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 일제시기 공업화의 성격
1) 1910년대
(1) 1910년대 일본의 정세
(2) 1910년대 공업화의 성격
2) 1920년대
(1) 1920년대 일본의 정세
(2) 1920년대 공업화의 성격
(3) 일본인 독점자본 회사
3) 1930년대
(1) 1930년대 일본의 정세- 자본투자처의(시장의) 필요성
(2) 조선총독부의 정책
(3) 1930년대 공업화의 성격
(4) 집중투자지역과 그 규모
(5) 군수 공업화정책과 일본 독점자본의 진출

2. 일본 독점자본의 조선 진출과 경영
- 전기사업과 일본질소콘체른
1) 조선의 전기업과 일본자본
(1) 전기사업의 배경
(2) 전기사업의 본격적 전개
(3) 조선에서의 전력국가관리
2) 일본의 화학공업과 일본질소콘체른
(1) 1930년대 일본의 화학공업과 일본질소콘체른
(2) 1940년대 화학공업의 전환과 직접군수

3. 일제시기 공업화의 영향

맺음말

본문내용

에 일질 흥남공장은 유안결핍 대응생산이라는 특별한 과제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유안보조금은 일본 국내의 어떤 공장보다도 비용이 낮은 흥남유안에게 경영외적인 배려에 따른 정치적 보조금이 되었다.
일질과 군수의 관계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하나는 경금속, 인조석유, 항공연료 등의 사업으로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경금속은 항공기의 기초소재로서 수요가 급증하였다. 일질은 1934년 흥남에서 마그네슘 공장의 건설에 착수하였다. 38년부터 일부 조업을 개시하여 40년대 들어오면서 전국비 8~9%의 생산이 되었으나 완전히 신기술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의 연속으로 좀처럼 시험조업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영적으로 늘 적자였다. 알루미늄 사업으로의 진출은 약간 늦어져 1938년 흥남에서 공장건설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사업화에 실패하였고 제조실적은 보잘 것 없었다.
인조석유의 제조법은 당시 세 종류가 있었지만 일질이 관여한 것은 저온건류법과 직접액화법이었다. 전자는 조선 영안에서 공장건설을 시작하여 1932년 석탄처리 연 10만톤의 공장이 완성되었고 34년에는 증유휘발유를 연간 1만 톤 이상 생산하게 되었지만 그 자체로는 채산이 맞지 않았다. 후자는 1936년 조선 아오지에서 공장 건설에 착수했지만 직접 액화법 자체의 기술적인 완성이 대폭 지체되어 1942,1943년 시점에서 인조석유업으로부터 사실상 철수하였다.
항공연료 이소옥탄 생산은 일질의 군수공업 사례로서 잘 거론되지만 흥남의 사업 중 특히 유명한 이 이소옥탄의 제조도 최후까지 사업적으로는 채산이 맞지 않았다.
1940년대 거액의 신규 투자가 이들 부문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은커녕 모두 결손으로 누적 적자가 커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유형으로서 질산, 헥소겐, 아세틸렌 유도의 각종 유기합성제품의 군납을 들 수 있다. 이 군수품들의 공급에서 일질은 질적양적으로 상당한 역할을 다한 것 같다. 다만 그것들이 일질의 사업 내에서 어느 만큼의 위치를 차지했는가에 관해서는 따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1930년대 일질이 조선에서 사업을 확장한 것은 일질의 자본축적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나아가 그것이 훗날 40년대 일본 전체의 화학공업이 쇠퇴과정에 들어간 시기에서도 일질의 사업과 수익을 지탱하는 기초가 되었다.
3. 일제시기 공업화의 영향
1910,1920년대에는 조선에서 식민지적 공업구조의 성립과 함께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노동자층도 형성되었다. 하지만 식민지적 공업구조하에서 형성된 노동자층은 민족과 계급의 이중적 착취를 받는 열악한 지위와 노동조건을 감수해야했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급격히 높아졌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민족 간의 차별대우로 노동쟁의도 활성화되어 192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의 통계만으로도 총 891건의 쟁의에 조선인 노동자만 7만 3,000명 정도가 참가했다. 1921년 부산의 부두 노동자들이 대규모 연대 파업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해서 곳곳에서 파업투쟁이 일어났고 급기야 전국적인 노동운동 조직이 건설되어 1925년 조선노농총동맹이 1927년에는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분리되었다. 특히 공업이 발달한 도시와 북부지역에서 노동운동은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러한 노동 운동은 많은 공장이 밀집해 있던 원산에서 1929년의 원산총파업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원산총파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된 노동운동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1930년대 일제의 대륙침략과 함께 노동운동은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은 비합법적 조직인 혁명적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지하로 들어가게 되었고 함경도 일대와 공업화된 도시, 북부지역으로 확산되어갔다.
맺음말
이상으로 일제시기 공업화와 일본의 자본투자에 대해 전기사업과 일질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1910년대와 1920년대의 공업이 일제의 농업정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었던 부분이었지만 식민지 공업화와 전시체제로 들어가기 전의 발판으로써는 그 빛을 바랬다. 그리하여 전기사업이 발달하고 전시체제에 맞춰 화학공업이 비약적으로 조선에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일본인의 자본투자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제시기 자본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일본인의 자본은 우리 민족의 자본 성장을 저하시켰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의지와 노력과는 별개로 식민지 자본의 독점 하에 이식자본주의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일본의 필요에 의해 자본이 투자되어 조선의 인력과 자원 등을 수탈하였다. 즉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일제시기의 일본인의 자본투자는 단순히 자본투자의 성격을 넘어 식민지 사업을 구축해나가는 중요한 기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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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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