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한국사연구 - 식민사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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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시대의 한국사연구 - 식민사학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글

2. 일본제국주의 식민사관의 형성과정
1) 식민지 지배이전의 한국사 연구
2) 식민지 조선으로 확대된 식민사관

3. 식민사관의 논리
1) 타율성론(他律性論)
2) 정체성론(停滯性論)
3) 당파성론(黨派性論)
4) 일선동조론(日鮮同種論)

4. 식민사관의 영향

5. 나오는 글

본문내용

청산하는 문제로 모아지면서 식민사관에 입각한 여러 논리들의 허구성이 공박되었다.
먼저 정체성론을 부정하는 연구에서는 일본학자들이 특히 ‘정체성’을 강조했던 조선후기 사회의 발전적 측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가령 농업부문에서 모내기의 보급, 견종법의 시행 이모작의 확대등 생산력의 발달이 있었으며, 광작(廣作)등 새로운 경영방식이 전개되었고 상업적 농업의 발전, 상업에서의 사상(私商)도고(都賈)의 성장, 전국적인 장시(場市)의 발달 수공업 분야에서의 선대제적 상품생산 등이 이루어졌음이 실증적으로 규명되었다. 조선 후기에 전개되었던 사회변화의 여러 측면을 통해 근대지향적인 면이 조선사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음이 부각되었다.
또한 식민사관을 지탱해온 타율성론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루어졌다. 먼저 반도라는 지정학적 숙명론에 대해서는 인간사회의 내적 발전이라는 법칙을 무시한 논리를 비판하면서, 과거 우리 조상의 활동무대가 반도에만 한정되지 않고 만주까지 포함되었다는 점, 반도의 유리성과 침략을 많이 받았지만 끊임없이 투쟁해왔다는 점 등을 들어 공박하였다.
그리고 한국사의 여명이 한사군등 중국의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사군보다 훨씬 더 앞선 시기에 청동기시대가 존재했음을 밝히고 그를 토대로 한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실체를 부각시킴으로서 실증적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또한 임나일본수설도 일본학자들이 만든 허구적 가설임이 논증되었으며 사대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대 정책과 사대주의는 구분되어야 함이 강조되었다.
당파성에 대서는 어느 민족이나 정파간의 다툼은 있는 것이고 다만 그 다툼의 방법과 양상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 그것을 굳이 한민족만의 특수한 양상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이후 국사학계에서는 조선시기의 붕당을 공론을 중시하는 정치운영의 원리로서 높이 평가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한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식민사관이 극복되고 민족사의 독자성과 그 내재적인 발전과정을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민족의 단점으로 거론되는 의타심시대심이 강하고 자주독립심이 적으며, 당파분열심이 강하고 협동심이 적으며, 체념적이며, 의욕이 적다고 하는 등의 우리 스스로의 지적들이 사실은 식민사관 주도하에 교묘하게 이루어진 일제의 식민교육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역사교과서 문제와 과거청산의 문제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있어 많은 진통을 겪고 있으며 중국 또한 동북공정으로 우리 고대사를 왜곡시키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세의 지배 하에 역사가 난도질당하는 아픔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깊은 교훈을 얻음과 동시에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데 힘써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
이우성 강만길, 《韓國의 歷史認識:韓國史學史論選 下》, (창작과 비평사, 1976)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下》, (창작과 비평사, 1994)
이도상, 《일제의 역사침략 120년》, (景仁文化社,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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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7.05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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