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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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비에 대한 평가
공명에게 후사를 맡기다
유비는 이릉 전투 후 백제성에 계속 머물면서 원정의 피로를 풀고 있었지만, 이윽고 병으로 쓰러진다. 패전의 심적 고통도 한몫하여, 병은 점점 더 깊어졌다. 유비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깨닿고 촉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남 유선을 황태자로 삼고 공명을 승상에 임명 해 놓은 상태이지만 건국 초기의 신생국가로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비는 장무 3년 2월 공명을 불러 “태자 유선이 보필할 가치가 잇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부디 그를 잘 지켜주시오, 그러나 혹시 그가 보필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되거든 그대가 대신 이 나라를 다스려주시오”라고 말하며 뒷일을 맡겼다. 이에 공명은 “제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성심 성의껏 보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신하로서 절의를 끝까지 지키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유비는 이해 4월 계사일, 63세의 나이로 백제성 영안궁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비가 세상을 떠난 지 한달 후에 태자 유선은 성도에서 즉위하여 제2대 황제가 되었다. 이때 유선의 나이 17세로 어리고 정치에도 서툴렀다. 그래서 유선은 모든 정치의 실권을 공명에게 위임했다.
유선에게 남긴 유서
유비가 유선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병은 처음에 단순한 설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후 합병증이 생겨 이제는 회복을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사람이 쉰살까지만 살아도 단명했다고 할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나는 예순을 넘기지 않았느냐, 이제 나는 한도 없고, 후회도 없느니라.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너희 형제들의 일이구나.
지난번 좨주 사원이 병문안을 왔을 때 “공명께서는 황태자님의 재능과 인덕이 월등히 뛰어나, 그 성장이 놀랄 만큼 빠르다고 감탄하셨습니다.”하고 말하던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도 걱정이 없겠구나. 중요한 것은 노력하는 일이니, 부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마라. 사소한 악행도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며, 아무리 하찮은 선행도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느니라. 현과 덕, 이 두 가지가 사람을 움직이는 법이다. 나는 덕이 부족했느니라. 그러니 이 아비를 닮아서는 안 될 것이야.』
유비에 대한 진수의 평가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선주(유비)는 식면이 넓고 의지가 강했으며, 더욱이 넓은 포용력을 지니고 있어, 뛰어난 인물에게는 기꺼이 허리를 굽혔다. 그야말로 그는 한 고조의 풍모를 갖춘 영웅의 그릇이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나라의 장래와 태자를 보좌하는 일을 제갈량에게 모두 맡겼다. 거기에는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었기에, 고금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군신 관계의 모범이었다.
한편 유비는 조조보다 권모술수가 뛰어나지 못했고 따라서 그의 영토는 협소했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조조의 신하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조조의 도량으로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타산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유비를 꽤 높게 평했다. 역사가 진수는 촉의 파서군 출신으로 아버지 때부터 촉의 관직에 올라있었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나이 24세에 고향 탁현에서 의용군에 가담하여 난세에 뛰어든 뒤, 기회주의자 같은 태도로 군웅들 사이를 전전하며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50년 동안 자신의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살아남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도 고개를 숙이고 뜻이 맞지 않는 상대와도 결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처음부터 너무나 미미한 세력과 전투력에 약했기 때문이다.
청말민국 초기에 이종오는 「후흑학」에서 난세 속에서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후厚(뻔뻔스러움)’과 ‘흑黑(음험함)’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후’의 대표로는 유비를, ‘흑’의 대표로는 조조를 예로 들었다. 즉 유비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뻔뻔스러운 처세술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생존을 가능하게 한 조건
유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것으론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가 뜻이다. 유비는 ‘쇠퇴한 한 황실을 지키는 일’에 뜻을 두었다. 주위의 지지와 기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뜻 덕분이었다. 둘째로 꺾이지 않는 강인함이다. 유비는 생애 전반기는 패전의 연속이었지만 매번 끈질기게 일어섰다. 셋째, 인간적인 매력이다.
덕을 갖춘 인물
유비의 덕은 네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가 겸손이다. 가장 좋은 예로 공명을 ‘삼고초려’의 예로써 군사로 맞아들인 일이다. 둘째가 관용이다. 유비는 부하들에게 관대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기울일 줄 아는 도량이 넓은 인물이었다. 셋째, 인(仁)이다. 좋은 예로 형주에서 조조의 추격을 받았을 때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버리지 않았던 일, 항복한 유장을 깍듯이 대우한 일 등이 있다. 넷째가 신의이다. 유비는 최후까지 ‘한 왕실의 부흥’이라는 뜻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이어지고 주변의 지지를 얻는 이유가 되었다.
느낀 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몇 년전에 읽었었던 이문열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제갈공명은 뛰어난 전술가이자 지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는 추호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유비는 덕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그다지 능력있는 사람도 아닌데 촉의 황제자리까지 가는데 대해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특히나 유비에 관한 전반부를 읽으면서 미쳐 알지 못했던 유비의 비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갈공명과 유비의 성장배경에서부터 촉의 승상과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제갈공명에 대한 환상을 깨고 숨겨진 이면과 또 다른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삼고초려에 관한 이설이 그러하다. 또한 유비의 덕이 촉의 황제자리까지 오르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반부에서 나를 놀라게 했던 유비의 비열함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따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는데 이는 후반부와 유비에 대한 평가를 읽어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 전개를 살펴봄으로써 개개인의 성격과 출신배경, 사상, 인간관계 등이 얽혀 만들어내는 역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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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11.16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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