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실학자유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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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은 농민 일반에게 적정한 규모의 토지를 제공해 주어 자영농을 창출한 뒤 그것을 기반으로 군정, 부역체계를 재편하자고 역설했다. 즉 항산을 가진 자영농은 국역에 쉽게 응할 것이고, 예의와 염치를 절로 알게 되어 국사가 다스리지 않아도 저절로 잘 운영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과거제를 폐지하고, 공거제를 시행하자고 주장했는데 그 배경에는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구상이 맞물려 있었다. 즉 각 지방과 도읍에 설치된 각급 학교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을 중앙에 추천하여 실무능력을 배양하게 한 뒤 관리로 임용함으로ㅆ 문벌과 신분에 의해 크게 제약받고 있던 당시 과거제의 폐단을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신분제 개혁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다른 것이어서 노비제의 세습을 폐지하고, 그들에게 인간적인 정당한 대접을 해줌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활력을 키우자고 강조했다. 또 그는 앞의 선구자들과 마찬가지로 농업을 중시하면서도 상공업을 진흥하여 국가와 민생의 부를 확충하고 그를 토대로 사농공상의 사민이 가자의 직분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를 희구했다. 당색이나 개인적 성향으로 볼때도 유형원은 앞의 선구자들에게서 일정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상공업을 중시했던 그의 경세론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반계수록』에 나타난 유형원의 학문과 경세론은 앞의 선구자들에 비해 훨씬 체계적이고 폭이 넓으면서도 전문화된 특징을 보인다.
요컨대 유형원은 17세기 초반 ‘실학의 선구자’들이 남긴 학문적 사상적 영향을 계승하되, 그것을 집대성하고 한층 발전시켜 ‘실학의 창시자’가 된 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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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5.12.03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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