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제동 오층석탑을 중심으로하여 알아본 백제계고려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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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을 중심으로하여 알아본 백제계고려석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들어가면서

2.홍제동 탑에 대한 개요 ( 직접찍은 사진들 첨부)

3.홍제동 탑의 양식

5.나오며

본문내용

목탑과 가장 흡사하다는 점에 있다. 이 탑은 당시 유행되던 목탑의 각 부 양식을 목재 대신 석재로 바꾸어 충실하게 구현한 것으로, 특히 기단부는 목탑에서와 같이 낮고 작다. 또 탑신부의 중심에 거대한 방형석주 (方形石柱)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석탑의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로서 이러한 방주(方柱)가 지탱하고 있는 것도 목탑의 형식과 같은 점이다.
각 면에는 엔타시스(entasis : 배흘림)를 표시한 장방형 석주를 세우고 그 위에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가설하였으며, 다시 두공(枓)양식을 모방한 3단의 받침이 있어 옥개석(屋蓋石)을 받고 있다. 이것 또한 목조 건물의 가구(架構)를 본받고 있는 것이다. 즉, 목조 가구의 세부까지도 석재로 충실히 모방한 한국 최초의 석탑으로서, 백제에서 석탑이 발생하는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도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 석탑이 목탑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 주고 있다. 좁고 낮은 단층 기단과 각 층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에 보이는 엔타시스의 수법, 얇고 넓은 각 층 옥개석의 형태, 옥개석 각 전각(轉角)에 나타난 반전(反轉), 옥개석 하면의 목조 건물의 두공을 변형시킨 받침수법, 특히 낙수면 네 귀퉁이의 두두룩한 우동(隅棟 : 탑 옥개석의 귀마루) 마루형 등에서 목탑적인 면을 볼 수 있다. 현재 상륜부를 결실한 노반석(露盤石)까지의 석재가 149개나 되는 점도 이 탑이 목조건축의 모방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목조건축은 크게 기단부-몸체부-공포부-처마부-지붕부-기와부-마루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로 석탑의 세부 수법이 목조건축의 이러한 결구 수법을 그대로 옮겨 돌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석탑은 삼국시대 목탑의 가구결구 수법을 모방하여 돌로 만들어졌다. 즉 목탑의 기본적인 구도와 원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부적으로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목재를 석재로 전환시키는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홍제동탑역시 이 양식의 특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③ 탑신괴임및 기단괴임의 특징
'괴임'이란 말은 위의 물건을 좀 바로 놓고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을 말한다.무겁고 큰 물건일수록 이 수평을 잘 유지해야 오랫동안 이상없이 보존할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탑은 수직으로 올라간 구조물이기에 가장 밑에 있는 지대석만 바로 잘 다듬어 놓으면 위의 탑자재들은 절로 수평이 유지될 수 있을텐데, 왜 굳이 이 괴임석을 조각을 하여 놓았을까?
이부분이 바로 탑의 원형이 목조건축물에서 본떠서 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목조건축물은 집을 짓는 토대에서부터 벽면,창문 곳곳에 평방이라 하여 중간중간 수평을 위한 긴 각목을 받친다.특히나 이러한 평방은 2층이상의 목조건축물에서 수없이 사용된다.
5.나오며
홍제동탑은 탑신 밑에 별도의 판석을 삽입한면에서나, 지붕이 두껍고 처마가 네 귀에서 위아래가 모두 곡면으로 들리는 큰 특징을 이야기한다면 고려의 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목조건축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점으로 보면 백제의 영향이 스며들어있는 독특한 탑이다.전체적으로 이 석탑은 안정감 있으면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새김법과 새로이 유행하는 탑신받침의 덧붙임, 그리고 벽 테두리 장식등에서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지는 석탑의 조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탑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이나 표현들은 작았으나,그것을 토대로 고려의,멀리나아가서는 백제의 탑형식에대해서도 다시한번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탑은 현재 용산의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탑은 크기도 크기일뿐더러,부서지거나 이미 노화가 많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꾸 보금자리를 옮기는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새로운 박물관이라 주변환경이나 이것저것 많이 신경쓴 흔적은 보이나, 빗물이나 조류와 곤충의 해 그리고 바람에 의한 훼손에대해서는 굉장히 무방비했다. 더군다나 주변에 관리자나 큐레이터가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박물관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이탑이 어째서 중요한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못한채 지나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리라 생각된다.또한 탑주변에 풀을 잔뜩 심어놨는데, 이것빼고는 탑에 대한 접근을 막는 그 어떤 울타리나 방어막이 없었다. 또한 그 잡초로 보이는 풀이 더 성장하게되면 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다못해 탑의 특징인 비문이나 탑신괴임돌같은것은 따로 설명하는 비석이나 장치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이다.
● 참고문헌
천득염 「백제계석탑연구」전남대학교 출판부, 2000,p
  • 가격1,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5.12.09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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