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옛질그릇 (빛깔고운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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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옛질그릇 (빛깔고운책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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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질그릇은 고려시대의 질그릇과 함께 오랫동안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조선 도자의 도기를 이루는 부분이면서도 조선 도자사에서 거의 언급이 되지 못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분청자와 백자, 옹기의 제작으로만 이어진 듯 잘못 이해되고 있다.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다양한 용도의 질그릇이 광범위하게 쓰였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질그릇은 삼국시대 질그릇이 전통을 이어받아 경질과 연질의 질그릇이 계속 제작되었다. 중기의 질그릇들은 단지, 병 등을 중심으로 하여 계속 제작되었으며, 후기엔느 시유된 흑갈색의 옹기류들과 회청색, 회흑색의 경질, 연질의 질그릇들이 있으며 생활의 용도에 맞추어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무늬는 초기부터 타날 기법에 의해 생긴 새끼줄무늬, 돗자리무늬가 그릇의 몸체에는 물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늬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나 어깨 부분이나 몸체에 몇 줄의 음각선을 두르거나 파선문을 한 줄 또는 세 줄로 두르고 있는 것도 있다.
조선 중 후기에는 질그릇이 대형, 소형으로 만들어져, 유ㅠ약을 바른 옹기루를 대신해서 생활에 긴요하게 쓰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약토를 바른 옹기류가 널리 쓰이면서 도기류가 점차 그 역할을 옹기에 넘겨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옹기는 그릇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토라는 황갈색 유약이 시유된 그릇을 총칭하는 개념인데, 옹기 안에는 독을 포함하여 소래기, 단지, 식초병, 시루, 거름통, 약탕기 등 황갈색의 유약이 시유된 생활용기 등이 있으며 이들은 형태로서의 옹(독)과 구분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ㅈ선 후기의 새로운 사회 변화에 따라 종래의 표면을 약토로 시유한 옹기가 17세기 후반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옹기는 18, 19세기를 거치면서 당시 사회의 요구에 따라 전국을로 급속하게 확산되어 서민들의 생활에 긴요하게 쓰였다.
옹기는 그 특성으로 통기성을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옹기는 예부터 숨쉬는 그릇으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 식품의 가장 큰 특징인 발효 식품은 대뿐 옹기 안에서 발효, 숙성되나. 또 다른 특성은 저장성이다. 옹기 기벽 안의 기공은 내면에서 형성된 불순물을 밀어내는 작용을 하게 되어 내용물이 부패하지 않고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뛰어난 저장성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옹기는 그 종류와 쓰임새에 따라 장항아리, 물항아리, 쌀항아리, 목욕통, 시루, 동이, 청수동이, 소래기, 옴박지, 촛병, 젓동이 등 다양하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8000년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한 그릇의 형태가 이후 모든 질그릇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형태가 결국 조선 후기의 옹기에가지 이어지는 것이다. 색깔에 있어서도 선사시대나 역사시대에 나타난 고요한 분위기를 계속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도하게 흐르는 단순함과 고요함에 대한 추구가 우리 예 질그릇의 전통 속에 나타나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 질그릇들은 질그릇 8000년 역사에서 가장 완성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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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6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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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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