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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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친일파 청산에 관한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0. 들어가며

1. 친일파를 위한 변명

2. 친일파 척결이 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상황
2.1. 광복 후 친일파 처리문제에 대한 각 정파의 인식과 태도
2.1.1. 우파들의 인식과 태도
2.1.2. 중간파들의 인식과 태도
2.1.3 좌파들의 인식과 태도
2.2. 건국준비위원회와 친일파 처리문제
2.2.1. 민중의 동태화와 친일파 처리문제
2.2.2. 건준의 리더쉽과 친일파 처리 문제
2.3. 미군정기의 친일파 처리문제에 대한 인식과 논의
2.3.1. 미군정(미국)의 정책과 친일파의 재등장
2.3.2. 민족통일전선에서의 친일파 문제
2.3.2.1. 통일전형형성 시도기(45.8.15~45.12.27)
2.3.2.2. 좌·우 투쟁 및 정립기(45.12.28~46.5.5)
2.3.2.3. 좌·우 합작 시도기(46.5.6~47.7.9)
2.3.2.4. 우익중심 세력재편기(47.7.10~48.5.10)
2.4.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에서의 친일파 처벌법제정
2.4.1. 입법의원의 설치과정
2.4.2. 특별법의 제정과정
2.4.3 특별법안의 변천 내용과 그 성격
2.4.4. 특별법의 귀결
2.5. 정부수립 후의 친일파 처리과정과 그 귀결
2.5.1, 정부수립 직후의 정치사회적 배경
2.5.1.1, 국가기구(정부)의 성격과 내용
2.5.1.2, 제헌국회의 성격과 내용
2.5.2, 반민특위의 성립·활동 및 와해
2.5.2.1, 반민법의 제정기(48.6.1~48.9.22)
2.5.2.2, 반민특위 구성기(1948.9.23~1949.1.4)
2.5.2.3, 반민특위 활동기(1949.1.5~1949.5.17)
2.5.2.4, 반민 특위 와해기(1949.5.17~1949.9.21)
2.6. 전후 프랑스의 반민족적 행위자 처벌과정



3. 친일 기득권 세력의 정착과정
3.1. 이승만 정권의 형성과 일제 친일세력의 충원문제
3.1.1. 건국 이후 정치상황과 친일세력의 동향
3.1.2. 계층적 성격으로 본 이승만정권 정치 엘리트의 친일성
3.1.2.1. 이승정권 정치 엘리트의 집안 배경
3.1.2.2. 이승만정권의 정치 엘리트의 교육 배경
3.2. 초대정권 이후 국내 정치계의 친일행적 인물
3.2.1. 친일파 대통령과 국무총리
3.2.2. 친일 경력의 집권당 대표들
3.2.3. 친일 경력의 야당 대표들
3.2.4. 친일파 출신 각료
3.2.5. 제2공화국의 친일인사
3.2.6. 박정희정권 시대의 친일인사
3.2.7. 5·6공 정권의 친일인사
3.2.8.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씨 부친 이홍규 옹 친일행적 논란
3.3. 거대화된 친일계층의 집단적 반발
3.3.1. 친일명단 발표에 따른 기득권 세력의 반발
3.3.2. 조선일보 방응모 사주의 친일행적과 조선일보
3.3.2.1. 방응모 주요 친일 경력
3.3.2.2. 「조선일보」족벌세습
3.3.3. 동아일보 창립자 인촌 김성수 주요 친일경력
3.3.4. 친일에 대한 사회 주류 세력의 일반 의식

4. 결론

본문내용

어 올랐다.
- 어쨌든 리포트를 쓰기 위해 이성을 찾아가며 분노를 참아가며 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다.
① 친일파 미 척결의 문제는 사회정의의 미실현으로 인해 독재정권, 각종 구습, 빈부격차, 사회 불신 등의 다분히 현재적 문제를 발생시킨 오늘날의 문제이며 또한 미래진행형이 될 문제이다.
②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역사적 과오와 미숙함을 가슴으로 느끼고 분노해, 현재의 물란한 사회정의 실현에 자신들의 이성을 가지고 큰 관심을 쏟아주길 바란다.
- 지금 현재에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들을 몇가지 생각해봤는데 역시 너무나 시간이 지나고 자료들이 미비하며 제일 큰 문제는 그들 친일파들이 지금 사회곳곳에 너무나 큰 세력으로 자라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누가 손대야할지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소박한 바램이라면 정부적 차원에서 거국적으로 친일파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초등학교때부터 친일파에 대한 잘못된 우리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아이들만이라도 다 커서 알게된 사회구조의 모순에 혼란스러워 하며 이 나라를 비관적으로 보는 일이 없도록 사회 정의를 교육에서 깃들여 나가서 서서히 친일세력들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나긴 리포트의 마지막을 현존하는 친일세력들의 위력을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신문 기사 하나로 마치고자 한다.
일제 추종자들 각분야 철옹성
지금 친일세력의 사회적 위상은 휘황찬란하다. 진실을 매장해버린 채, 헛것의 광채가 눈부시다. 그 눈부심이 사람들을 눈멀게 해서 `공과상쇄론'같은 공허한 주장을 가능케 한다. '과'가 없다면 '상쇄'할 일도 없어야 마땅할 것이다. 고려대는 최근 대운동장을 광장으로 개축하고 이달 중에 준공식을 연다. 본관 앞 인촌 김성수의 동상은 광장 중앙도로의 중앙선과 기하학적으로 일직선을 이룬다. 인촌 동상은 대학 캠퍼스의 정신적 정점일뿐 아니라 공간적 중심이다.
고려대는 매년 1학기 개강 직전에 신입생을 상대로 <고려대의 건학이념과 고려대의 역사>라는 주제로 50분짜리 특강을 한다. 인촌은 산업, 언론, 교육 분야의 거룩한 지도자로 소개된다. 그러나 대학은 인촌의 진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문화민족주의자 김성수>(일조각, 1998)이나 <평전 인촌 김성수>(동아일보사, 1991) 등의 전기 속에서도 인촌의 진실은 반쪽만 드러나 있다.
방응모도 마찬가지다. <민족계몽의 초석 방응모>(1998, 지구촌)라는 책에서 그는 독립운동가이며 언론, 산업, 육영 분야의 위대한 선각자로 나타난다. 김성수와 방응모의 진실은 그들이 창업한 막강한 언론의 비호 아래 가려져 있다.
경기도와 화성시는 1989년 홍난파 생가를 복원했다. 99년에는 다시 36억원을 들여 `난파거리'와 `난파기념관'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독립운동단체들은 난파의 친일행적을 들이대며 항의했다. 사업은 4년째 표류하고 있다. 당시 사업을 추진했던 화성시의 한 관계자는 “그의 행적을 학술적으로 정밀 재조사해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서울 미술대 인사위원회는 재임용 대상인 김민수 (37·디자인) 교수에 대해 재임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김 교수는 지난 96년 발표한 논문에서 초창기 서울 미대 교수들 중 장발, 장우성, 노수현의 친일문제를 지적했다. 그 글은 다른 학자의 글을 인용한 두어줄의 각주였다. 김 교수는 98년 재임용에서 탈락되었고, 이번에 다시 탈락되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39)씨는 “미술계에서 친일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모두 당사자와 그 제자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결국은 따돌림을 당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살아있는 친일세력의 위력을 짐작케하는 말이다.
김은호, 심형구는 친일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화폭에 일본화풍을 도입했다. 김은호의 일본색 화풍은 광복 후에도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한국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정만조는 구한말의 친일 유림이다. 그는 1896년 진도에 유배되어 12년을 지냈다. 정만조는 진도에서 <은파유필>을 저술했다. <은파유필>은 진도의 풍광과 민속과 삶의 모습을 아름답고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진도군은 <은파유필> 번역본을 발간했다. 정만조는 진도의 향토문화사에서 광범위하게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또다른 진실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
극우·반공은 반민족행위를 은폐시키는 가장 유효한 방패였다. 모윤숙은 문화예술계의 각종 단체장과 공화당 전국구 의원을 역임했다. 90년 숨질 때까지 모윤숙은 대한민국예술원상과 국민훈장 모란장등의 서훈을 받았다. 친일세력의 힘과 광휘는 역사교과서를 기술하는 사업에까지 미치고 있다. 역사교과서는 친일의 문제를 피해간다. 현재 전국 중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사교과서에는 친일에 관한 대목은 없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반미특위와 관련된 부분만을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간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김육훈 회장은 “이것이 역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친일 인사들은 오늘도 광휘에 가득찬 민족지도자들이며 선각자이다. 그러나 불구의 진실은 마침내 진실이 아닐 것이다. 이들을 추앙하는 여러 시상제도는 문화·예술과 학문분야에서 커다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문학 평론가 임헌영씨는 “친일의 영향력은 그 제자들을 통해 계속 번지고 있다. 그래서 친일청산은 일회성으로 될 일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정인환기자june@hani.co.kr
<참고문헌>
『친일파, 그 인간과 논리』 김삼웅·이헌종·정운현 共編 (1990, 학민사)
『친일파 Ⅲ - 일제하 기득권자들의 좌절과 변절』정운현·김삼웅 편 (1993, 학민사)
『친일파 Ⅱ - 일본 신국가주의의 전개와 친일파의 부활』김삼웅·정운현 共著 (1992, 학민사)
『朝鮮日報 왜?』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 편 (2000, 인물과 사상사)
『조선일보 반민족·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 백서』민간법정추진위원회 (2002, 인물과 사상사)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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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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